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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동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무소속 후보가 3명이나 당선됐다. 속초 고성 양양의 송훈석, 강릉의 최욱철, 동해삼척의 최연희 후보가 그 주인공이다. 필자는 강릉과 동해 삼척 선거현장에서 민심의 변화를 체험했다.

 

영동지역에서 다른 지역은 한나라당 후보가 정치 신인인데 반해 강릉은 현역 의원이자, 강원도당위원장인 심재엽 후보가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 지역에서 낙마를 했다. 18명의 시의원중 17명이 한나라당 소속으로 선거운동 최일선에서 뛰었지만 민심을 잡지 못했다.

 

총선 현장에서 겪은 일들을 여기에 털어놓는다.

 

[장면1]  성명서 내기로 한 지역 원로들

 

선거초반 전직 모 시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거가 이래서는 안 된다. 지역을 위해 아무런 일도 안하고 공약도 하나 안 지키고, 전셋집 얻어놓고 살지도 않고 이제 와서 또 표를 달라고 한다. 한나라당이 강릉 사람들을 우습게 안다. 나도 한나라당 좋아하지만 이건 아니다. 지역의 원로들이 성명서를 내기로 했으니 좀 와라."

 

모처에서 몇 차례의 모임을 가진 이들이 성명서 문안을 작성하고 누구 누구를 참여시킬지 논의를 벌였다. 하지만 선거 기간에는 각자 생각이 다른 법, 일이 주춤거렸다. 방법상의 차이는 드러났지만 현 의원은 안된다는데만 의견이 모아졌다.

 

[장면2] "왜 남을 후비 파노, 지 할 말만 하면 되지"

 

4월1일 강릉 시내 모처에서 무소속 최욱철 후보를 지지하는 모임이 열렸다. 전직 시 도의회 의장과 단체장들 30여명이 모여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자체 여론조사 결과 5%가 부족하단다.

 

"그동안 제가 부족한게 많았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도와 주시면 정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최 후보가 인사를 하고 떠나자 각자 최선을 다하자고 의견을 모은다. 다음날부터 선모씨는 성산 왕산 지역, 심모씨는 강동 옥계를 누비고 다닌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심재엽 의원은 아니다. 최욱철은… 글쎄, 당선되면 한나라당 들어간데?."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동해 삼척 선거구의 최연희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성추행이란 말이 꼬리를 달고 다녔다. 다른 후보자들이 토론회나 연설을 할 때마다 그 말을 붙였기 때문이다. 최연희 후보는 "제가 어려울때 5만명이나 서명을 해주셨다. 이는 나를 제거하기 위한 정치음모"라고 받아쳤다. 도계장터에서 한 후보자가 최 후보자를 비난하자 듣고 있던 생선장수 할머니가 말했다.

 

"왜 남을 후비 파노. 지 할 말만 하면 되지"

 

[장면3] "의원님 죄송해요. 옷만 이래요?"

 

북평장터에서 유세를 마친 최연희 후보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섰다. 마침 그곳에는 상대방 후보의 선거운동원 둘이 식사를 막 끝내던 참이다. 상대 후보 운동원이지만 최연희 후보가 그들을 향해 "고생 많지요. 하루만 더 고생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최연희 후보는 잠시 후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만 숙이고 있던 운동원 중 한명을 향해 "내가 (자네) 얼굴 안다"고 하자 그 운동원은 "의원님 죄송해요. 옷만 이래요. 마음은 아시죠?"라고 말했다.

 

[장면4] "이제는 당 보고 무조건 안찍는다"

 

선거 취재가 아무리 급해도 즐긴 건 즐겨야 하는 법. 기차를 타고 묵호역에 내려서 북평장터까지 택시를 탔다. 외지 사람인척 말투도 슬쩍 바꾸고 "여기는 누가 될 것 같습니까?"라고 말을 붙였다.

 

"우리는 그런 말 하면 안돼요."

 

단호한 거절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말을 슬쩍하면 입이 열리는 법.

 

"최연희 의원이 되겠지요?"

"한나라당이 실수를 했다. 사람을 알아야 찍지. 정인억 후보가 초등학교 중학교 동문이다. 선배들이 거기 가서 선거운동 한다. 그런데 그 사람 잘 모른다. 이제는 당 보고 무조건 안찍는다."

 

[그리고] 친구야 미안하다

 

필자의 친구가 강릉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를 했다. 거리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친구를 몇 번이나 지나쳤다. 차를 세워두고 잠시라도 옆에 서 있어 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모든 것을 떠나 인간적인 도리를 해야 하는데 부끄러웠다.

 

선거 초반에는 아는 사람들 찾아다니며 '친구가 나왔다'고 한 표 찍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친구 선거운동하면 한나라당 심재엽 후보 당선시키는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 어쩐다. 고등학교 동긴데. 기표소에 들어가서도 고민 많이 했다.


#최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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