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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6월 3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습니다. '경제 살리기'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벌써부터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미숙한 국정운영과 오만한 자세 때문에 경제정책은 방향감을 잃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느 곳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전문가들의 진단을 통해 'MB경제' 100일을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쇠고기 정국이 한창이다. 취임 100일을 즈음하여 치러진 6·4 재보궐 선거는 한나라당이 경북 청도지역 이외의 모든 지역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끝났다. 압도적인 지지로 대선 승리를 만끽하던 작년 12월로부터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 이명박 정부는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신뢰의 상실'이다. 쇠고기 정국이 불붙은 것은 '도대체 현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걷잡을 수 없기 커졌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는 심각한 신뢰 위기의 상황에 처했었다. 특히 광운대 동영상 사건은 상당한 신뢰의 위기를 초래했음 직하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당시 이명박 대선 후보를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경제 회생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저 밥만 먹여 준다면' 신뢰 측면의 '약간의 결격사유'는 흔쾌하게 눈감아 주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에게 경제가 중요하다. 집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유지하는 유일한 끈이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경제 하나만큼은 살렸다'는 평가가 이 정부가 바라는 유일한 포상일 수밖에 없다.

 

이명박 경제가 죽을 쑤고 있는 이유

 

그런데 그 중요한 경제가 죽을 쑤고 있다. '747 공약'이 하늘을 날기도 전에 차가운 활주로 바닥에 곤두박질 친 것은 이미 먼 옛날 얘기가 되어 버렸다. 물론 대외 여건이 좋지 않다.  그러나 그것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경제 원리에 따른 일상적 관리도 되지 않고 있고, 법규범이 요구하는 경제규칙도 휴지가 되어 버리기 일쑤다. 정책이 철학과 다투고, 정책이 경제원리와 다투고, 정책이 법치와 다투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정책팀 내부는 서로가 서로와 다투고 있다.

 

가장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살펴보자. 정부 정책은 명문으로 규정된 법규범을 준수해야 한다. 물론 법규범을 개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개정이 있기 전까지는 존재하는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 그것이 법치이고, 그것이 시장이 바라는 예측가능성이다.

 

그러나 이 정부의 정책은 법규범과 충돌하고 있다. 통화정책을 둘러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간의 갈등이 그런 예다. 통화정책은 한국은행의 고유권한이다. 그리고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이라는 단일한 통화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야 한다. 

 

물론 다른 정부정책과 조화를 모색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가안정을 저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만 그러하다. 정부정책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물가안정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정부 정책과의 조화를 모색하지 말고 물가안정에 힘써야 한다.

 

법 규범과 충돌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이것이 법규범이다.(구체적인 출전은 한국은행법 제1조부터 제6조를 살펴보시면 된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기획재정부의 고위 정책담당자들은 한국은행의 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에 관한 결정을 하기 이전에 이미 '바람직한 금리정책의 방향'을 노골적으로 공표하곤 한다. 

 

물론 경제가 어려우니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경기부양책을 통화당국에 요구하기 위해서는 물가안정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현재 물가는 안정되고 있는가?

 

소가 웃을 노릇이다. 4월 물가상승율이 4%를 넘더니, 5월 물가는 4.9%까지 올랐다. 생필품 52개 품목의 물가인 소위 'MB물가'는 5% 넘게 상승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는 3년 평균 3%이고, 만약을 위해 상하에 0.5%p의 여유 구간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금리인하를 한국은행에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국은행법을 어기라고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경제 원리를 어기는 정책도 도처에 널려 있다. 환율정책을 생각해 보자. 기획재정부는 취임 초기 원화의 평가절하를 용인하는 듯한 시그널을 여러 차례 시장에 내보냈다.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사실상의 이유였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단견이다. 

 

원화의 평가절하는 가뜩이나 상승하는 원유가의 파괴력을 치명적으로 증가시켰다.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넘고 경유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추월하면서 경제 전체가 마비 일보 직전까지 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구매력 역시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원화의 절하는 교역조건을 악화시켜 우리나라 국민의 실질 GNI를 하락시킨다. 쉽게 말해서 물건을 열심히 만들어서 팔지만 헐값에 팔기 때문에 정작 돈을 버는 것은 별것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물건 생산량을 나타내는 GDP 증가율은 아직도 양수(+)이지만 구매력을 나타내는 GNI 증가율은 이미 음수(-)로 돌아섰다. 소득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이 죽을 쑤는데 총수요가 살아날 리 없고 총수요가 사경을 헤매는데 경기가 부양될 수 없다. 그런데 도대체 이것이 어찌하여 경기부양책이란 말인가?

 

경제팀 내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불협화음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이 법과 충돌하고 경제원리를 어기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현실의 정책이 겉으로 표방하는 그들의 경제철학과 충돌하고 있고, 또 현재의 경제팀 내에서 끊임없이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소위 경제적 자유주의와 시장지상주의를 경제철학을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의 경제정책은 이런 철학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철저한 관치로 일관하고 있다. 대표적 예가 생필품 52개로 구성된 'MB 물가지수'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와 시장지상주의를 표방하면서 이것의 상승률을 어떻게 '특별히', '따로',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일부 품목의 물가를 따로 관리한다는 것은 과거 70년대와 80년대에 수없이 해 보았던 것이고 화려하게 실패했던 정책이다.

 

자장면값을 통제하면 단무지가 줄어들고, 연탄값을 통제하면 연탄배달료가 슬그머니 올랐던 '그때 그 시절'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모든 정부는 실패할 수 있다.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는 이런 잘못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잘못을 시정하는 나름대로 방식을 터득해 왔다. 그것이 견제와 균형이다. 경제정책의 경우 견제와 균형 또는 정책 간의 조화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이런 조정기능을 이미 내재화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내에 경제정책 조정기능을 존속시키고 청와대에 경제수석실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설익은 정책이 튀어나오는 이유는 이런 시스템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제 구실을 못하는 이유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시스템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스템을 복원하여 정책의 세련미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을 교체하는 것이다. 시스템을 존중하고 법규범을 존중하고 경제 원리를 존중하고 나름대로 경제철학을 가진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기준을 들이댈 때 이명박 정부의 경제팀 중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하는 점이다. 거의 없다. 그래서 100일을 맞는 국민은 우울한 것이다.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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