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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바로 아래 있으면 좀 덥고, 수북한 잎을 자랑하는 나무 아래 있으면 얼추 시원했던 오후. 햇빛을 받아 해맑은 보이던 거리를 한없이 걷다 문득 너른 터 한 곳을 찾았다. 내가 찾은 곳은 인천 시청 앞에 있는 '미래 광장'.

이 곳은 예전에 말 그대로 아스팔트 공터였다. 그랬던 이 곳이 어느 순간 분수, 원형나무의자 원형무대 등등 여러 시설을 갖춘 공간으로 바뀌었다. 돈 꽤 들었겠다 싶은 게 마냥 좋아라할 수는 없었지만, 예전 아스팔트 대형 공터보다는 나았다. 쉴 수 있는 곳, 놀 수 있는 곳을 구분해 놓은 것만큼은 괜찮다 싶었다.

이 곳을 찾게 된 이유는 너른 터에서 각자 제 할 일을 하는 사람들 풍경을 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점이나 도서관 같은 한정된 공간이 아닌, 그야말로 탁 트인 광장이라는 공간에서 독서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남녀 각각 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천시청 '미래 광장' 이 곳은 예전에 아스팔트로 덮힌 넓은 공터였는데 지금은 썩 괜찮은 쉼터.
▲ 인천시청 '미래 광장' 이 곳은 예전에 아스팔트로 덮힌 넓은 공터였는데 지금은 썩 괜찮은 쉼터.
ⓒ 민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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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남자 편안한 웃음으로 상대방도 편안하게 해 주었던 분입니다.
▲ 책 읽는 남자 편안한 웃음으로 상대방도 편안하게 해 주었던 분입니다.
ⓒ 민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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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성의 독서 풍경

"안녕하세요! 광장 같은 열린 공간에서 독서하는 풍경을 담으러 나왔습니다. 잠시 인터뷰 좀 해주시겠습니까?"
"아, 네. 그러시죠."

"평소 책은 많이 읽으세요?"
"아니요, 별로요. 한 달에 한 2권 정도는 읽는 것 같네요."

"서점이나 도서관 중 어느 쪽을 더 많이 이용하세요?"
"서점을 좀 찾는 편이죠. 영풍이나 교보 뭐 그런 곳이죠."

"주로 어떤 분야 책을 읽으시나요?"
"전 재테크 관련 책을 좀 보는 편이에요. 현실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죠. 건강에 관련된 것도 좀 보고요."

"지금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책을 읽고 계시는데 그 묘미가 있다면?"
"이렇게 탁 트인 곳은 우선 집중해서 책 읽기 좋아요.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다닌다 해도(광장이라서 공간도 넓고) 어짜피 내 책에만 집중하니까 의외로 (도서관 같은 곳보다) 더 좋기도 해요."

책 읽는 여자 태교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던 어느 아기 어머니.
▲ 책 읽는 여자 태교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던 어느 아기 어머니.
ⓒ 민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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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기 엄마의 독서 풍경

"안녕하세요! 독서하는 풍경을 담으러 나왔습니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 네. 전 그냥 혼자 태교에 관한 책 읽는 건데..."

"그러시군요. 주로 어떤 책을 읽으세요?"
"지금 읽는 (태교, 육아에 관한) 책 뭐 그런 거고, 시대 분위기 때문이랄까 재테크 책도 좀 보고요.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 읽을 때하고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책 볼 때는 어떻게 다른가요?"
"무엇보다 이런 탁 트인 곳에서는 의외로 집중해서 책을 읽게 되요. 내 것에 집중하니까요. 사람들은 알아서 자기 길 가는 거고요. 그런 거죠."

인천시청 '미래 광장' 광장 끝에서 시청 방향으로 찍었다.
▲ 인천시청 '미래 광장' 광장 끝에서 시청 방향으로 찍었다.
ⓒ 민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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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말 그대로 탁 트인 공간이므로 각자 알아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책 읽는 풍경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와는 사뭇 달랐다. 서점에선 이 책, 저 책 훓어보며 장터 거닐 듯하고, 도서관에서는 책에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이런 너른 터에서는 책은 책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편안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알아간다. 때론 여러가지를 두루 생각하고 때론 생각한 것을 주루룩 남몰래 흘려보내기도 하면서.

흔히 사방이 철저하게 막힌 곳이 자기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탁 트인 공간은 그것대로 이름 모를 사람들 틈에서 자기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다. 날은 더워지고 그만큼 밖으로 나가기가 망설여지는 때에, 시간 나는 대로 가볍게 읽을 만한 책 한 권 들고 가까운 너른 터를 찾아가면 좋겠다.

읽어도 읽어도 집중하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을 때, 집 앞 놀이터나 공터에 나가 제 멋대로 흐르는 공기를 마시며 책을 읽어보라. 복잡한 생각은 어느덧 스르르 풀리고, 멍한 머리 속은 어느덧 나무 향기인지 책 향기인지 모를 세상 사람들 향기에 취해있을지 모른다.

아 참, 그분들은 이곳에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었을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문득 '책 읽는 사람들'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엷은 웃음을 조금 머금고 돌아왔지요.



#독서#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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