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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김장 끝내셨나요? 저희 집은 지난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에 걸쳐 김장을 했습니다.

밭에서 거둬들인 싱싱한 김장거리를 다듬어 국산 천일염으로 배추는 고무대야에 나눠 절여놓고, 통통한 무는 수세미로 빡빡 씻어내서는 저녁을 먹고 채칼로 썰어냈습니다.

 

김칫소에 들어갈 무채는 아버지께서 혼자 다 썰어내셨는데, 아버지는 "무채는 말이지 길게 썰면 안되겠더라! 짧게 썰어야 절인 배추에 잘 들어가!!"라며 매해 무채를 썰며 터득한 노하우를 쪽파를 다듬고 생강을 갈아낸 어머니께 전해주셨습니다. 한참동안 무를 채썰어 고무대야에 담아놓았는데, 그 빛깔이 탐스런 배의 속살처럼 보였습니다. 무채를 몇가닥 집어 먹어봤는데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김치소에 들어갈 구해온 갓을 썰고 양념을 어머니께서 만드는 사이 아랫층에 내려가 절인 배추가 잘 있나 살펴보고 올라왔습니다. 소금에 절인 배추를 다시 한 번 뒤집어 차곡차곡 고무대야에 담아 놓은 모습이, 마치 꽃봉오리가 만발한 듯 보였습니다. 이 절인 배추는 하룻밤을 보낸 뒤 건져내어 물에 씻어 김치소에 버무리기만 하면 김장은 끝이 나게 됩니다.  

 

 

 

절인 배추를 보고 올라오니, 어머니는 가장 큰 고무대야(어렸을 적 동생과 저의 욕조이자 수영장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던)에 무채와 갓, 고춧가루, 생강, 마늘, 새우젖 등을 한데 넣고 버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김치소를 만들고 나서야 밤늦게 어머니는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드셨습니다.

 

예전만큼 김치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이드신 어머니의 김장하기는 점점 힘겹게 보였습니다. 이것저것 도와드리긴 했지만, 늘 그렇듯이 제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어머니께서 죄다 하시니 그리 큰 도움은 되지 못한 듯 싶습니다. 다음날 김치소 넣는 것도 제가 도와드리지 못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다행히 아래층 천막사 아주머니와 제수씨가 와서 김치소 넣는 것을 거들어 무사히 김장을 마치긴 했습니다. 그렇게 김장을 끝낸 뒤, 김장하기 전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산 가장 싸다는 새 김치냉장고와 오랫동안 써온 낡은 김치냉장고에 각각 김장김치를 채운 김치통을 넣어두니 어머니는 그제야 "야! 김장 다 했다!"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저녁에는 돼지고기를 삶아 김장김치와 함께 가족들이 먹을 수 있게 내놓으셨습니다. 김장도 끝내고 겨울채비를 모두 마친 오늘(19일)은 방앗간에서 쌀가루를 빻아와 시루떡을 쪄서는 한해 농사 잘 지었다는 고사도 지내셨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새봄이 오기전까지 잠시 쉴 수 있는 꿀맛같은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 예전에 꽃농사(후리지아 재배)를 할 때는 겨울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했었다.  


#김장#어머니#아버지#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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