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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참고서를 사주면서 문득 초등학교시절 전과 한 권만 있으면 한 학기 공부가 넉넉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고3, 고1, 초등학교 5학년 세 자녀를 둔 가장,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가 사회시간에 배웠다며 "아빠는 애국자"라고 했다. 세 자녀를 두었다는 것만으로도 애국자가 되는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간지에 참고서 값이 많이 올랐다는 기사를 보다가 새 학기 시작하고 아이들 참고서 값으로 얼마나 지출되었는지 계산을 해보니 20만 원 정도가 지갑에서 나갔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3 딸내미가 10여만 원, 나머지 두 아이가 10만 원 정도이다. 거기에다가 학원에서 사용하는 교재비와 참고서까지 합하면 3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교과서? 그것 가지고 공부 안 해"

 고등학생용 교과서 및 참고서. 요즘은 참고서가 교과서를 대체한다.
 고등학생용 교과서 및 참고서. 요즘은 참고서가 교과서를 대체한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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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는 학교에서 교과담당 교사가 지정해 주는 것이 있고, 학원에서 지정해 주는 것이 있단다. 운좋게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면 하나면 되지만 다른 경우는 각각 구입해야 한단다.

고3 딸과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본다.

"새학기에 참고서 얼마치 샀니?"
"한 10만 원, 선생님들이 지정해 준 참고서가 있어요. 그리고 학원에서 지정해 준 것이 있고. 또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따로 사야지. 아빠 형편봐서 다 안샀어."
"그럼 교과서는 뭐하냐?"
"교과서? 그것 가지고 공부 안 해. 주번 아이들이 교과서 버리느라고 애먹는다니까."
"뭐? 교과서 대금도 냈을거 아냐?"
"근데, 누가 교과서 가지고 공부해? 고1,2는 안 그래도 고3은 그래."

"그럼 참고서만 가지고 공부한단 말야?"
"그럼, 언제 교과서와 참고서 다 공부 해? 담당 선생님이 지정해준 참고서로 공부한다니까."

충격이었다.

참고서가 교과서가 된 현실, 사교육비도 모자라 참고서, 교복에 이르기까지 아이 하나 키워낸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니 아이가 셋이면 자동적으로 애국자가 되는 것이구나 싶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참고서와 교과서만 가지고 되느냐는 것이다. 교과서와 참고서 외의 독서도 필요하다보니 내가 보고 싶은 책을 구입하는 것을 미루더라도 아이들이 읽어야할 만한 책들을 구입하게 된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할 때에는 1만원 이하의 책이라도 몇 번을 고민한 끝에 구입을 하게 된다. 그렇게 아끼던 책값이라도 아이들이 공부에 필요하다고 참고서를 산다고 하면 가격은 묻지도 못한다. 가격이 비싸다고 안 사줄 수도 없는 일이니까.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 내가 읽고 싶은 책 두어 권, 참고서 등을 구입하러 서점나들이를 한 번 하면 20만 원이 깨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서점 나들이가 겁나는 현실이다.

공교육에 분노하면서도 안주하는 나, 부끄럽다

 신학기가 되면 참고서로 인한 지출 때문에 세 아이를 둔 가장은 허리가 휜다
 신학기가 되면 참고서로 인한 지출 때문에 세 아이를 둔 가장은 허리가 휜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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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경쟁구도에서 벗어나게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면서도,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어쩔 수 없이 끌려가며 살아가는 것은 내 욕심 때문일 것이다.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훗날 아이들에게 원망을 들으면 어쩔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기도 하다. 참으로 복합적인 문제들이 들어 있어 공교육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그 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의 교복값만 해도 28만 원이었다. 물론 하복은 또 구입을 해야 한다. 게다가 1/4분기 수업료와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 대금 58만여 원, 고3  딸아이의 것 44만여 원이니 참고서값까지 포함하면 새 학기가 시작되고나서 150여만 원이 이런저런 기초비용(?)으로 들어간 것이다. 거기에 세 자녀의 학원비까지 포함하면 이 땅에서 학부모로 산다는 것 자체가 저주받은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대학생 자녀를 둔 가장보다 나는 행복한 가장일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위로를 한다.

과연 교육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는 나라인가 싶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성적으로 서열을 매기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고, 교육감이라는 사람은 교육자로서의 기본적인 덕목도 갖추지 않고,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고, 절망적인 기분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흙탕물 안에서 안절부절하는 나에 대해서도 화가 나면서,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부끄럽다.

주변 아이들이 교과서를 버리느라고 애를 먹는다더니 고3인 딸내미가 주번이었나보다. 아이들이 버린 새 교과서를 5층에서부터 재활용품장으로 나르다 손에 쥐가 났단다. 정말, 이 나라 교육은 여러 사람 힘들게 한다.


#참고서#교과서#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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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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