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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5월 과천의 한 아파트 베란다에 걸린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펼침막.
 작년 5월 과천의 한 아파트 베란다에 걸린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펼침막.
ⓒ 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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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당에서 남쪽으로 가려면 큰 고개를 넘어야 한다. 고개를 넘으면 인구 7만의 미니 도시 과천이 있다. 그곳에선 매주 수요일 저녁 촛불이 켜진다.

Daum(다음) 카페 '과천 촛불 시민 모임 - 남태령 너머' 사람들에게 촛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1년 전 이맘때 '우리 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라는 펼침막을 집집마다 내걸어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던 동네답게 촛불의 심지는 굵고 길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과천 중앙공원에선 아직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수요일이었던 3월 25일 저녁 7시 30분 과천 중앙공원 분수대 앞에 '일제고사가 뭐 길래'란 펼침막이 걸렸다. 일군의 사람들이 촛불을 켜서 종이컵에 담아 주변을 수놓았다. 일주일 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움을 표시하고 식순이랄 것도 없는 간략한 행사를 마친 후 이내 주위로 흩어졌다. 그들 손에는 일제고사 반대 전단지가 한 묶음씩 들려 있었다.

지나가는 과천 시민들에게 이러한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전단지를 건네주며 일제고사 반대 이유를 설명하는 그들은 소위 전문적인 운동권이 아니다. 직장인, 주부들이어서 그런지 그 모습도 사뭇 달랐다.

이사 온 이웃에게 첫인사를 하는 약간의 설렘으로 다가서서는, 또 약간의 진지함으로 조심스레 전단지를 건넨다. 행여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 '일'을 잠시 멈추고 신변잡기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눈치 주는 사람이 없다.

으레 부딪히게 되는 적의를 가진 사람들을 대면해도 실망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러려니 하면서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보세요"라고 살갑게 인사한다. 소위 '운동'에는 아마추어이지만, 여간한 내공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진정한 프로일 수도 있다.

"그냥 '쿨'하게 하는 거죠."

카페 운영자 김태진(43)씨는 개의치 않았다. 하긴 이슈가 있을 때는 더 많이 모이고, 평온할 때는 심지어 6~7명 정도로 참석현황도 들쭉날쭉이다. 한 시간 남짓 전단지를 돌리고 나면 펼침막을 접고 단골 호프집으로 향한다. 이 뒤풀이 호프집은 치킨 맛도 맛이지만, 과천 시내에서 처음으로 광우병 펼침막을 내건 용감한 가게인 탓에 아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곳이다. 정치와 시사적인 주제에서부터 아이 문제까지, 수요일 이곳은 시끌벅적하다.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과천 촛불. 지난 3월 4일, 용산 참사 책임자 처벌을 위한 수요 촛불이 켜졌다.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과천 촛불. 지난 3월 4일, 용산 참사 책임자 처벌을 위한 수요 촛불이 켜졌다.
ⓒ 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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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시작된 촛불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뿐만 아니라 반대쪽 스펙트럼에 선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전가의 보도로 여기던 조직은 애초에 없었으며, 집회 참가들에게 '희생'의 엄숙함은 찾기 힘들었음에도,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의 지적대로  '천수만 새 떼' 같이 거대한 무리를 형성할 수 있었던 그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9년에도 과천의 촛불이 '추억의 촛불'·'마음속의 촛불' 아닌 실체로서 분명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1년 전 누군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히트 친' 펼침막에 대한 의무감 또는 자부심이 깔려있겠지만 이제 그 부분은 미약하다.

실제 펼침막도 많이 사라졌다. 아직도 고집스럽게 걸고 있는 집도 있지만. 현재 과천에서 촛불을 켜는 사람들은 가볍다. '쿨'하다. '남태령너머' 카페 회원이 아닌 사람도 많다. 정당의 당원이나 시민단체의 회원이 아닌 평범한 시민의 자격으로 참가한다. 1년 전 청계광장과 서울시청 앞에 모였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더욱이 이곳은 관악산과 청계산에 둘러싸여 시내 끝에서 끝까지 가는데 자전거로 15분이면 충분할 만큼 작은 동네이고 주거공간도 밀집되어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서울의 촛불집회에서 만난 사람들을 과천 시내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빈도는 아주 높다. 수도권임에도 아날로그적인 만남이 자연히 형성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비약일까.

미국산 쇠고기에서 인조잔디로 옮겨간 촛불

과천의 '수요 촛불'은 서울의 촛불과 비슷한 시기에 결성되었다. 한 시간 반 남짓 거리의 서울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어려운 사람들끼리 모여 "동네에서라도 촛불을 들자!"라며 시작했다. 광우병 펼침막이 걸리기 이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 시작했고, 매스컴에 펼침막이 보도되면서 수요 촛불은 과천을 밝혔다. 중앙공원에서 정부종합청사까지 거리는 300m 정도. 거기까지 이어진 촛불의 행진은 자못 장관을 이뤘다.

서울의 촛불이 시들어가는 여름에도 과천은 건재할 수 있었다. 때마침 과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겠다는 이슈가 불거진 것. 촛불의 동력이 그대로 전이되었다. 아니 더 많은 불이 밝혀졌다. 학부모의 반대 운동에 시민단체, 진보정당 등이 결합하면서 천막농성과 퍼포먼스 등 인조잔디 반대 운동이 조직적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이 운동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학교장과 과천시청의 힘을 꺾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과천 촛불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는다. 눈에 띄게 동력이 떨어졌다.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치렀던 것이어서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필요했다. 그만두자는 축과 계속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되었다. 카페 운영자 김태진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 촛불의 시작이 강제가 아닌 만큼 '해산하자 말자'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었어요.  사람들이 안 나오면 자연스럽게 꺼지겠지만, 만약 여기서 공식적으로 접는다면 나오고 싶은 단 한 사람의 소중한 공간을 우리가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잖아요. 비록 '미국산 쇠고기와 인조잔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더욱 잊어서는 안 된다'라며 '소박하게라도 진행하자'는 의견을 냈죠."

과천 촛불은 여전히 '쿨'하게 간다

 작년 여름, 과천 중앙공원에서 인조잔디 반대 전시회 및 촛불 집회가 열렸다.
 작년 여름, 과천 중앙공원에서 인조잔디 반대 전시회 및 촛불 집회가 열렸다.
ⓒ 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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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촛불의 적이다. 그 첫 번째 어둠은 광우병 쇠고기였고 이후 대운하, 한미 FTA 등으로 촛불은 어둠의 동굴로 계속 들어갔다. 과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조잔디 외에 일제고사 반대, 용산참사 책임자 처벌 등 빛이 필요한 곳은 많았다.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예상한다.

그러나 이제 촛불을 켜는 사람들은 지나친 기대도 지나친 비관도 하지 않는다. 아니 원래 촛불은 그렇게 소박함에서 출발했음을 다시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의 강요도 아니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개체가 모였던 그것.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를 빗대어 촛불의 성과가 허망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적어도 과천을 똑 떼어보면 그렇지 않다. 먼저 인조잔디는 순차적으로 지역 내 학교에 깔려던 계획이 전면 철회되었다. 이미 예산이 반영된 사업이라 첫 학교는 깔 수밖에 없지만, 이에 반대하는 지역의 여론을 확인한 교육청과 시청은 이후 인조잔디의 '인'자도 꺼내지 않고 있다.

최근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이명박 교육 반대"를 모토로 내걸어 당선된 김상곤 후보의 과천 지지율은 도내 44개 시군구 선거 단위 중 3번째로 높았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강세지역이었다. 실로 놀라운 결과다. 이것을 '수요 촛불'의 힘만으로 해석하기에는 과하지만 그 자리에 촛불이 항상 켜져 있음은 과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뛰어 넘는 명징한 성과가 하나 있다. 남태령 너머 촛불을 켜는 사람들에게 촛불은 이벤트가 아니고 일상이라는 사실. 그것은 언젠가 방아쇠의 역할을 의미하는 무시무시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미리 상정하지 않는다. 등대가 그렇듯이 반가운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그렇게 가다보면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는가. 과천 촛불은 그래서 '쿨'하게 간다.

참, 날이 풀리면서 '수요 촛불'은 동영상 상영 등 좀 더 아기자기하고 다채로운 무대가 펼쳐진단다. 과천 촛불의 진화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작년 5월 과천 시내 전역엔 광우병 쇠고기 반대 펼침막이 걸렸다. 그리고 과천에선 아직도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작년 5월 과천 시내 전역엔 광우병 쇠고기 반대 펼침막이 걸렸다. 그리고 과천에선 아직도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 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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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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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는 질서보다 우선한다"는 홍세화님의 글을 좋아하는 회사원입니다. "모근 국민이 기자"라는 오마이뉴스의 모토에 공감하면서도 글을 쓴다는 것, 더구나 남에게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음을 알기에 기자로 등록하기가 망설여집니다. 되도록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신변잡기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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