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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이 세운 후백제의 수도였고, 조선 왕조 전주 이씨의 발상지인 전주. 그곳을 천년고도의 고장으로 느끼게 하는 가장 큰 힘이자,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전주 한옥마을>을 지난 토요일(16일)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그곳에서 2001년 중앙의 특별교육과정으로 만나 인연을 맺은 제37기 연우회 회원들과 함께 전주의 맛과 멋에 흠뻑 취하며,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옥 생활체험관에서 조선시대 옛 양반 가옥의 생활문화를 직접 체험하기도 하고, '혼불'의 작가 최명희 문학관을 방문하여, 작가의 문학세계와 작가 정신을 한껏 호흡하기도 하고, 한국천주교 최초 순교자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세워졌다는 전동성당에서 종교의 엄숙함과 경건함으로 삶의 옷깃을 새롭게 가다듬기도 했다.

 

또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영정)을 모셔놓은 경기전에서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귀동냥하기도 하고, 예향전주의 풍류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한옥 가옥 촌을 둘러보면서, 옛 선조들의 숨결을 생생히 가슴에 담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동기생들과 밤이 새도록 정담을 나누기도 했다.

 

현대와 조화를 꿈꾸는 옛 양반가옥의 생활문화 '전주 한옥마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과 풍남동에 자리하고 있는 전주 한옥마을. 광주에서 승용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찾아가는 길은 쉽다. 전주 IC를 나와 좌회전해서 도로를
따라 직선으로 가다보면 군데군데 이정표가 길 안내를 한다. 시청방면으로 20여분 달리면, 전주의 상징 한옥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는 700여 채의 한옥들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큰 한옥마을이라고 한다. 처마의 곡선이 물결치듯 흐르는 한옥마을에는 전주 전통문화센터, 전주 한옥생활체험관, 전주 전통 술 박물관, 전주공예품전시관 및 명품관, 경기전, 전주향교, 전동성당, 최명희 문학관, 풍남문, 오목대 등이 이웃하고 있다.

 

 

을사조약(1905년)이후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전주 주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 천변이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군가도(全群街道)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 되었고, 1911년 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 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 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의 중심대로는 크게 경기전 길과 은행길이 있다. 경기전 길은 오목대와 경기전 전동성당 등을 지난다. 이 길을 가로지르는 은행 길엔 지난해 조성된 작은 실개천이 이어져 마을의 운치를 더한다. 실개천의 맑은 물과 아기자기한 조경, 팔각정과 한옥 건물에 꾸며진 주변의 특색 있는 카페들이 특히 눈길을 끈다.
 
문화관광해설사 김광숙씨는 "600년 된 보호수 은행나무가 방문객들을 두 팔 벌려 반기는  이곳 은행 길에선 주말이면 공예품 벼룩시장이 열린다"며" "이곳에서는 한옥마을 내 공방들이 내놓은 아기자기한 다양한 공예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김치전, 부각, 떡 등 간식을 즐길 수 있고, 전통 공연도 함께 펼쳐져 신나는 난장을 이룬다"고 말했다.
 
한옥마을에서 '혼불 최명희'를 만나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혼불 최명희' 문학관. 문학관은 최명희 길 뒤편에 아담한 기와집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있는 위치하고 있는 문학관은 전주시에서 건설하여 2006. 4. 25일 개관, 민간전문가에게 위탁, 운영하고 있다.
 
문학관은 아담한 마당을 가진 작은 규모의 공원형태로 꾸며져 있다. 전체 평수는 509평. 본 건물은 지하 1층과 지상 1층이며, 각각 80평과 60평이다. 주 전시관 <독락재(獨樂齋)>는 1층에 있다. 지하는 문학 강연장 및 기획상설전시장으로 활용되며, <비시동락지실(非時同樂之室)>이라 이름 지었다. 전시관 <독락재(獨樂齋)>에는 최명희 작가의 삶과 문학에 대한 안내와 선생의 친필원고, 문방오우, 훈장, 사인책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체통, 완산동물원 등 작가의 작품을 한 줄 한 줄 읽고 읽노라니, 곧 마음이 동한다. 최명희 선생은 생전 '아름다운 조각품을 볼 때, 그 아름다운 조각품이 태어나기 위해 떨어져나간 돌이나 쇠의 아름답고 숭고한 희생을 우러르며 가슴 아파했고,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운 동백꽃만큼 그 둥치에 낀 이끼의 생명력을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최명희 문학관은 선생의 이러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시민과 함께 연구하고 학습하며 감동을 주고받는 도시형 시민밀착형 문학관으로 만들어졌다, '사당'처럼 적막한 곳이 아니라 문학 강연 , 토론회 , 세미나 , 문학기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서 뜀박질하는 문학생산의 중심으로 우뚝 서고자 건립되었다고 이곳 관계자는 말했다.
 
최명희 문학관은 <인간 최명희>,<작가 최명희>, <영원한 최명희>의 세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작가와 그의 작품들은 독자들과 후배 문학인들의 마음속에 남아 면면히 숨쉬고 있다. 회고적이거나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생동감이 넘치는 소담스러운 이야기 공간이며, 문학인들의 창작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인연이 그런 것이란다. 억지로는 안 되어/아무리 애가 타도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아무리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 해도 달아날 수/없고 잉. 지금 너 한 테로 도 누가 먼 길 오고/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고/주저 앉겄지. 물 한 모금 달라고."(최명희의 '혼불'중에서)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 나의 넋이 찍히는 그 무늬를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말에는 정령이 붙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된다고도 하지요. 생각해보면 저는 소설이라는 이야기 속에 말의 씨를 뿌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씨를 뿌려야 할까, 그것은 항상 매혹과 고통으로 저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기 때문에 저는 제가 오랜 세월 써오고 있는 소설 '혼불' 에다가 시대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쭉정이가 아니라 진정한 불빛 같은 알맹이를 담고 있는 말의 씨를 삼고 싶었습니다."(1998년, 8회 호암상 수상소감 중에서)
 
'혼'은 얼, 정신이다. '한국 혼을 일깨우는 문학사 기념비'로 평가되는 '혼불'은 작가가 17년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5부로 완성한 대하소설이다. '혼불'은 억눌린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꺼진 '혼불'을 환하게 지펴 올리는 작품으로 우리 한국인들이 면면히 가꾸어 온 세시 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의 민속학, 인류학적 기록들을 상세하게 구성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최명희 작가는 1947년 전주시 화원동(현, 풍남동)에서 출생,  전주한옥마을과 완산동, 다가동, 금암동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풍남초, 전주사범 병설중, 기전여고,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72∼81년 전주 기전여고와 서울 보성여고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혼불'(제1부)이 당선되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88∼1995년 월간 《신동아》에 '혼불'제2∼5부를 연재했으며, 1996년 12월 제1∼5부를 전10권으로 묶어 완간하였다.
 

'혼불'은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한 유서 깊은 가문 '매안 이씨' 문중에서 무너져가는 종가(宗家)를 지키는 종부(宗婦) 3대와,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마을 '거멍굴'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전통적 삶의 방식을 지켜나간 양반사회의 기품, 평민과 천민의 고난과 애환이 생생하게 묘사하였으며, 소설의 무대를 만주로 넓혀 그곳 조선 사람들의 비극적 삶과 강탈당한 민족혼의 회복을 염원하는 모습 등을 담았다.

 

또한 호남지방의 혼례와 상례의식, 정월대보름 등의 전래풍속을 세밀하게 그리고, 남원지역의 방언을 풍부하게 구사하여 민속학·국어학·역사학·판소리 분야 학자들의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1997년 전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사회 각계의 인사들이 모여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제11회 단재문학상(1997), 제15회 여성동아대상(1998), 호암상 예술상(1998) 등을 수상하였다.

 

대하소설 '혼불'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몌별(袂別)》 《만종(晩鐘)》 《정옥이》 《주소》 등의 단편도 썼지만, '혼불'에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다른 작품을 쓰지 않았다. 1998년 난소암으로 사망하였다. <전주시민의 장>으로 장례 후 모교인 전북대학교 부지 건지산 중턱에 안장됐다.

 

조선시대 양반가를 복원한 '한옥생활체험관'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은 한옥은 지역과 기후에 맞게 난방을 위한 온돌과 냉방을 위한 마루가 균형 있게 결합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 양반가를 복원한 전주 한옥생활체험관은 전주시에서 건설하여  2001. 11월 개관, (사)전통문화사랑모임에 위탁을 주어 운영하고 있다.

 

방 9개와 샤워실, 식당, 화장실, 대청마루, 체험장 등을 갖추고 있다. 요금은 2인 1실 기준 방 크기와 화장실 유무에 따라 6만원에서 12만원(특실)까지 있다. 집은 옛날 양반집 ㄷ자형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어 있다.

 

우리 일행들은 이곳에서 하루 밤 묵으면서, 옛 양반 가옥의 생활문화를 직접 체험했다. 선비방, 규수방, 사랑채, 안채, 대청 등 현대 가옥에서는 거의 부르지 않는 추억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이름들. 그리고 한지와 목재로 꾸며진 방과 옛 가구들로 만들어진 단합, 궤짝, 교자상, 대나무 옷걸이, 한지 문과 장판, 목재로 만들어진 시렁 등의 방안 풍경. 그리고 아궁이에 장작불 때어 구들장으로 연결하는 온돌방, 은그릇과 은수저 등 모두가 옛 사람들의 정겨운 생활문화 그대로이다.  

 

오랜만에 해후한 동기생들과 맛깔스러운 전주 한식으로 식사하고, 밤새도록 동동주 등 술 한잔 앞에 놓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자녀 교육 문제, 노후 문제, 모임 운영 문제 토론 등 으로 풍성한 이야기 꽃 피우며, 삶의 정보 공유하고, 친목 다지는 귀중한 시간을 가진 것도 한옥체험에서 맛본 큰 수확이었다.

 

안태석 집사는 "이곳은 한국의 전통가옥, 숙박체험 및 전통생활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전통 혼례식장, 회갑연, 칠순잔치, 돌잔치 등의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며 "아이들이 한옥마을과 전라북도 농촌마을의 전통과 현재를 체험할 수 있도록 1박 2일 프로그램과 옴니버스 문화탐방으로 마련한 '전통문화캠프', 다례, 매듭, 공예, 한지공예, 전통예절, 향음 주례, 전통음식, 판소리 등의 '단기 전통문화 체험', 그리고 각종 강좌와 다양한 이벤트를 수시로 기획,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용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 외국인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며 "요즈음은 사전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을 사용하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한옥마을에는 볼거리가 많다. 전주전통술박물관, 전주전통문화센터, 동학혁명기념관, 최명희 생가터. 전주공예품전시관, 풍남문, 객사, 오목대, 이목대, 한벽당, 전주향교 등등. 그러나 한옥마을에 오면 꼭 빼놓지 않고 가보야 할 곳이 있다. 한국 천주교 순교 일번지 '전주 전동성당'과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고 있는 '경기전'이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 성당으로, 풍남문 밖 성지에 세워진 소박하고 아담한 느낌을 주는 전동성당은 명동성당 내부설계를 맡았던 포와넬 신부가 설계하여 1914년에 완공된 비잔틴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이곳은 마치 파리의 노트르담 같은 느낌을 준다. 전도연과 박신양이 출연한 영화 '약속'의 마지막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 되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마침 미사 중이었다. 이곳은 관광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지만, 미사 중 일 때에는 성당 안 출입이 금지된다. 개별적으로 들어가 조용히 미사광경을 구경하니, 정말 명동 성당 내부의 모습 그대로이다. 분위기 역시 경건함과 엄숙함이 가득 배여 있다.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태종 10년(1410년)에 창건하였다. 태조 어진을 모신 곳을 어용전, 태조진전 등으로 명명하던 것을 1442년(세종24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1614년에 중건했다. 1872년 태조 어진을 새롭게 모사하여 봉안하면서(태조영정 보물 931호) 경기전의 전반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섬세한 조각과 우물천정 단청 등의 의장이 화려한 편으로 다른 유교 건축과 차별화된 권위성을 볼 수 있다. 구조 부재들의 이음과 맞춤이 정확하며 견고하고 조선 중기의 전통 건축 기법이 잘 전수된 안정된 구조와 부재의 조형 비례는 건축적 품위를 돋보여준다. 

 

경기전에는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시조비 경주 김씨의 위패가 봉안된 조경묘와 예종대왕 태실비 및 전주사고가 있다. 주변경관이 잘 보존돼 있어 TV 역사드라마 '용의 눈물' '명성왕후'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특히 계급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경기전 앞을 지나갈 때에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뜻으로 경의를 표하라는 하마비 앞에서는 누구나 발을 멈춘다. 하마비는 한쌍의 해태 기단위에 좌대와 비신의 형상을 가지고 있으며, 재질은 석조로 광해군6년(1614년)에 세워졌고 철종7년(1856년)에 증각된 것으로 경기전 정문 앞에 위치해 있다.

 

경기전 정전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져 있고, 우측편 회랑에는 세종, 정조, 고종의 영정이 , 좌측편 회랑에는 영조, 철종, 순종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어진들 중 태조의 어진은 모사품이라고 한다.

 

 

한옥마을에는 지금도 약 4,2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 마을은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10년부터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성안에 퍼져 가는 것을 반대하여 전주의 중산층들이 의도적으로 한옥을 짓고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세월과 함게 전주의 중심지로 그, 명성을 유지하다가, 1977년도에 이르러 전주시의 확장과 더불어 한옥을 비롯한 전통적인 생활문화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었다.

 

동양문화로 대표되는 경기전, 전주향교,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식 양식의 전동성당 등의 동서양 문화의 건축물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상당이 이채롭지만, 이마저 세월이 흐르니, 묘하게 한옥마을과 어울어져 한옥마을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족들과 함께 다시 방문하여 한옥마을의 맛과 멋을 가득 담아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한옥마을 홈페이지와 관광자료를 참조했습니다.

한옥생활체험관 예약
-인터넷(www.jjhanok.com), 전화(063-287-6300)

최명희 문학관
-전화(063-284-570)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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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인 공무원으로서, 또 문학을 사랑하는 시인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또 다른 삶의 즐거움으로 알고 사는 청소년선도위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이웃을 위한 사랑나눔과 아름다운 일들을 찾아 알리고 싶어 기자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우리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한 일, 시정소식, 미담사례, 자원봉사 활동, 체험사례 등 밝고 가치있는 기사들을 취재하여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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