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가수 전인권
 가수 전인권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멀리서 전인권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터벅터벅 걸어왔다. 이미 인터뷰 약속시간보다 30분이 더 흐른 뒤였다. 약속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게, 그리고 설사 얼마쯤 늦는다고 해서 미안해 하지 않는 게 '전인권다운 것'이라는 선입견이 무색하게 그는 먼저 사과부터 했다.

"미안해요. 제가 자다가 일어나서 나오는 바람에…. 요즘 밤에 잠을 잘 못자서요."

그러고 보니 마땅히 쓰고 있어야할 선글라스가 없다. 급하게 외출 준비를 하면서 미처 찾지 못해 그냥 왔다고 했다. 잠이 덜 깬 듯한 눈이 그대로 드러나서인지 그는 몹시도 지쳐 보였다.

-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신경성 병(대상포진)이 있어요. 한번 아프면 작업 못하고 쉬어야 해요. 병원에도 가야 하고. 요즘은 불면증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편이에요. 집에 있다가 답답하면 나와서 걷기도 하고. 운동도 매일 해야하는데…."

- 오늘이 20일이니까 공연까지 열흘이 채 안 남았네요. 준비는 잘 되어가나요?
"사실 요즘 들어 많이 못하고 있어요. 좀 쉬는 기간이었죠. 하지만 팬들이 와서 보시면 콘서트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할 자신은 있어요. 그동안 준비해왔고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있어서 잘될 거예요."

출소 후 첫 단독 공연 "무대에서 함성 들을 때 가수인 것 깨달아"

 가수 전인권
 가수 전인권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2009년은 전인권이 1979년 강인원 등과 함께 <따로 또 같이> 1집을 발표한 지 만 30년이 되는 해다. 그는 올 가을 새 음반을 선보이기로 했고 오는 29일부터 31일까지는 홍대 V홀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 이 공연에는 장기하와 얼굴들, 황보령(스맥소프트), 보드카 레인, 이장혁, YB 등 후배 가수들이 자발적으로 게스트로 참여하기로 했다.

- 단독 공연은 2006년 이후 처음인데 어떤 계기로 준비하게 됐나요?
"그냥, 공연할 때가 됐으니까 하는 거예요. 제가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무대 올라가서 관객들이 '와~'라고 함성을 지를 때 내가 가수인 것을 깨달아요. 그런데서 삶의 의미를 느끼니까 하는 거죠."

- 작년 가을에 출소하면서 '세상을 뒤집을 음반을 내겠다'고 했는데 음반 작업은 얼마나 진척이 됐나요?
"감옥에 있으면서 40곡 정도 만들었어요. 그 중에 20곡 정도를 음반에 담을까 해요. '세상을 뒤집겠다'고 한 것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정말 잘 만들었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어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렇게 느껴져요. 7월 아니면 9월 정도에 내려고 하는데 지금은 편곡 작업을 하고 있어요."

- 어떤 노래들인지 미리 좀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 장르는 록인데 좀 부드러운 것들도 있어요. 나도 눈치가 보이고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래봐야 '사랑한 후에' 같은 정도지만. 그리고 지금 우리가 너무 가난하고 춥잖아요. 추울 땐 이불을 같이 둘러쓰고 앉아 있으면 분위기가 좋아지죠. 그런 재미로라도 살자, 여럿이 함께 별을 보면서, 이런 노래들이에요. 근데 그거 아세요. 요즘 밤하늘에 별이 없어요. 청주 교도소 있을 때도 그랬고 서울에 와서 하늘을 봐도 별이 없어요.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갑자기 밤하늘에 별이 없는 것을 몹시도 서운해 하던 전인권은 교도소에서 만든 노래 '나는 광대다'의 몇 소절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또 저기로~ 난 네가 필요해~"

"정신세계 없는 음악은 서커스"

 가수 전인권
 가수 전인권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그런데 록음악이 예전 같지 않아요. 요즘 곡들은 대부분 리듬이 강조된 댄스 음악뿐인데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요즘엔 가수들이 없어요. 있다고 생각하세요? 김종서도 쇼 프로에만 나가잖아요. 저도 방송국 가면 무지 웃긴 거 아시죠? 그래도 저는 안 가요. 가수는 노래를 해야 가수고 기분이 좋아지죠. 요즘 댄스 음악들은 섹스를 유발해요. 일본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요. 음악이라는 것은 뮤지션의 정신세계와 합쳐졌을 때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는데 정신세계가 없으면 서커스 밖에 안되죠."

- 좋아하는 후배 가수 있나요?
"황보령이요. 황보령은 자기 주관이 있고 진지해요. 음악도 괜찮고 나름 심각하죠. 음악이 주는 메시지도 있어요. 그래서 황보령 공연할 때 제가 게스트로 간 거죠."

그러고 나서 전인권은 모 가수를 언급하며 싫은 소리를 내뱉다가 돌연 "이건 쓰지 마세요"라며 '전인권답지 않은' 오프더레코드(보도하지 않는 조건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를 요청했다. 세상이 뭐라 해도 거침없이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혹은 할 것 같은 그의 이미지와 오프더레코드는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 사람들은 전인권을 생각할 때 세상과 불화하는 이미지를 떠올려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보는지는 보는 사람 맘이에요. 듣는 것도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느냐가 중요하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요. 그냥 자유롭게 살고 싶을 뿐이에요. 사람들 마음을 울리는 곡 하나 만드는 게 하늘에 별 따기 보다 어려워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 그럼 스스로 생각하는 전인권은 어떤 사람인가요?
"한가지에만 지독하게 열중하는 사람이죠. 곡 작업하는 것 말고 즐거운 게 어떤 건지 잘 몰라요. 그리고 제가 보수적이에요.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 자유와 질서는 잘 어울리지 않는데요?
"질서를 지켜야 자유가 생겨요.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무의미한 행동이 되고 말아요."

- 대마초 문제는요?
"대마초는 음악을 잘하고 싶어서 한 거예요. 그런데도 자기 나라 가수를 1년씩이나 감옥에 가두는 나라가 어디 있나요? 재판 받을 때 제가 판사에게 '내 인생을 재판해 달라'고 했는데 '피고의 인생을 재판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군요.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가혹했어요."

"드렁큰타이거의 노래에도 제가 나와요"

 가수 전인권
 가수 전인권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사실 전인권의 '질서론'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2005년 그가 직접 쓴 <걱정말아요 그대>에는 전인권의 이런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그는 겉보기에 아무런 규범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 가고 싶은 대로 발걸음을 옮길 것 같지만 음악을 위해서만큼은 철저하게 지킬 것은 지켰다. 음악을 하기 위해 전인권은 술도 마시지 않는다.

"술을 먹으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아져서 기분이 좋은데 깨고 나면 너무 허무해져요. 일하기도 싫어져 버려요. 그래서 술은 안 마셔요."

- 요즘 행복한 일이 있다면요?
"얼마 전에 제주도에 갔는데 중고등학생 몇 명이 나를 보고 달려들면서 '돌고 돌고 돌고', '사랑한 후에'를 부르더라고. 내 나이가 쉰여섯살인데 그 꼬마들이 어떻게 알고 그 노래를 부르는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드렁큰타이거 노래에도 제가 나오잖아요. '행진, 전인권의 자유(열정) 누구도 막지 못해'. 내가 복이 많지."

- 답이 뻔한 질문인 것 같은데요, 음악은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
"계속 할 거예요. 노래가 안 되면 연주라도 해야죠.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공연하고 음반 내고, 계속 할 거예요."

가족과 재이별 "사랑은 안 해"

 가수 전인권이 20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삼청각 다소니에서 한 오마이뉴스 인터뷰 도중 "두 달 전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살고 있다'며 심경을 토로한 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가수 전인권이 20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삼청각 다소니에서 한 오마이뉴스 인터뷰 도중 "두 달 전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살고 있다'며 심경을 토로한 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2시간여의 인터뷰가 끝나고 전인권은 밥이나 먹자며 손을 잡아끌었다. 그가 자주 찾는다는 삼청동의 한 칼국수집에서 그는 설탕을 듬뿍 넣은 팥죽을 먹었고 난 칼국수를 먹었다. 재결합한 가족과 얼마 전 다시 이별했다는 그를 보면서 그가 쓴 노래 가사 한 구절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나는 사랑하고 싶다, 영원한 숙제지만,
사랑이 진리라면, 난 탐구하겠다"

그래서 불쑥 물었다.

-외로우실 것 같아요. 사랑하고 싶지는 않으세요?
"외롭죠, 무지 외로워요. 그래도 사랑은 안해요."

피곤한 기색으로 힘 없는 대답을 남기고 그는 뒤돌아섰다. 전인권과 밴드 <들국화>의 음악을 키워낸 삼청동의 언덕을 오르는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전인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