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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을 따려고 농원 풀을 깎는데 '노을'이가 교회를 다녀오다 불쑥 나타나 말참견을 하며 치근덕거립니다.

"아저씨, 딸기 따러가요."
"너 혼자 가렴, 아저씬 매실 농원 풀도 깎아야 하고 감자밭 풀도 매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단다."
"혼자는 무서워서 못가요, 딸기밭엔 뱀이 많다던데요."
"그럼, 저 아래 '석이'오빠하고 같이 가렴."
"석이 오빠하고 다니면 다른 애들이 놀려대요."
'참, 안됐구나, 그래도 난 바빠서 갈 수가 없단다, 딱한 노릇이지만 다음에 가도록하자.'
"아저씨, 아저씨만 믿고 왔는데…."

금세 노을이 큰 눈망울에선 섭섭함이 쏟아질듯 이슬방울이 그렁그렁 맺혀옵니다.

 뱀딸기는 다섯개의 꽃잎에 오돌도톨한 모습으로 붉게 익어가고 있다.
 뱀딸기는 다섯개의 꽃잎에 오돌도톨한 모습으로 붉게 익어가고 있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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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 논둑, 풀숲가를 다녀보았으나 아직 산딸기가 익기는 멀었고 좀 축축하고 그늘진 음습한 곳에 뱀 딸기가 한창입니다.

산딸기는 장미과 덩굴식물로 열매는 붉으며 붉게 익어갑니다. 사매(蛇苺)등 많은 이름을 갖고 있으나, 가락지나물과 자세를 낮추고 땅을 엉기며 살아가는 '땅 딸기'란 이름을 좋아합니다. 양지꽃과 비슷한 노란색 꽃이 피며 딸기 열매는 다섯 개의 꽃받침 조각 위에 도톨도톨한 돌기모양으로 빨갛게 익어갑니다. 감기 천식은 물론 후두암등 각종 항암작용에 많은 효험이 있다 전해오고 있습니다.

 땅딸기라고 부르며 비린내와 풀냄새가 난다.
 땅딸기라고 부르며 비린내와 풀냄새가 난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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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뱀 딸기는 뱀만 먹나 봐요?"
"축축한 그늘을 더 좋아하니까 뱀이 나올 가능성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조상들이 붙여 논 이름이란다. 하나 먹어보련?"
"아이 비려, 풀냄새가 나요."

선홍색 빛깔로 강렬한 유혹을 하는 겉 돌기모양에 비해 맛은 달지도 시지도 않고 무덤덤합니다. 풀냄새와 비린내가 납니다. 더구나 뱀이 먹는다니 어쩐지 먹기가 찜찜합니다. 딸기 속엔 씨가 많아 도루묵 알을 씹듯 오도독 소리가 유별납니다.

 뱀딸기는 맛보다 감기천식과 항암치료에 효험이 크다 전해오고 있다.
 뱀딸기는 맛보다 감기천식과 항암치료에 효험이 크다 전해오고 있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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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딸기를 따 노을이의 팔찌나 만들어 주려고 꿰어갈 무렵 어디선가 '쉭 이익' 짧은 휘파람소리가 들려옵니다. 뱀 얘기를 해서일까,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자 갑자기 꽃뱀이 나타나 풀숲을 타고 쉭쉭 달려 도망을 갑니다.

"아, 아저씨 저기요, 꽃뱀이 막 달려가요."
"어디, 달려와, 달려가?"
"저기 안 보여요? 막 도망가고 있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이의 뱀딸기 천연목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이의 뱀딸기 천연목걸이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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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난 뱀은 유혈목으로, 경상도에선 '너풀대기'라고도 부르는 독 없는 종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뱀은 언제 보아도 징그럽고 혐오스럽습니다. 늘 대하는 일이지만 볼 때마다 섬뜩하고 께름칙해 기분이 영 아닙니다. 오죽하면 창세기엔 '죽음을 전달하는 사탄의 상징'으로 비유되었을까 싶습니다.

 '그래, 나는 악마사탄의 원조이다.'
 '그래, 나는 악마사탄의 원조이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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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바탕에 붉은 점, 알록달록한 빛깔에서 여름더위를 싹 씻겨 내릴 듯 관능적 욕구와 원시적 생명력이 넘쳐납니다. 혀를 널름거리며 쏜살같이 달아나는 광경에서 숨이 막혀오는 신비력과 풀냄새 물씬 풍겨나는 시원함을 맛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교회를 다녀오던 노을이의 손엔 성경책이 아직 들려있습니다. 놀란 가슴도 달랠 겸, 둘이서 목련나무 그늘에 앉아 창세기에 뱀이 '여자'를 꼬드기는 장면을 펼쳐놓고 한 구절씩 돌아가며 읽어봅니다.

 꽃뱀, 징그럽고 혐오스럽다가도 풀숲을 헤치고 달려가는 모습에서 싱싱한 원초적 생명감을 느낄 수 있다.
 꽃뱀, 징그럽고 혐오스럽다가도 풀숲을 헤치고 달려가는 모습에서 싱싱한 원초적 생명감을 느낄 수 있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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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부터 시작해 내가 먼저 읽고, 노을이가 계속 읽어나갑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

창세기 삼장을 계속 읽다보니 어느새 화악산 너머로 새빨간 노을 한 점 뱀 꼬리처럼 사위어가고 있습니다. 노을이도 긴장이 풀렸는지 긴 하품을 하며 졸린 모습으로 몸을 기대옵니다. 노을이가 오래도록 세상 유혹을 물리치고 오늘처럼 아름다운 꽃뱀추억으로 남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상류'를 방문하면 시골과 고향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고향과 전원생활을 꿈꾸고 계시나요. 지난 4월에 윤희경 기자(011-9158-8658)가 펴낸 새콤달콤한 포토에세이 '그리운 것들은 산 밑에 있다'를 한 번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뱀딸기#꽃뱀#목걸이#유혈목#땅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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