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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들의 대한민국> 저자(우석훈)는 한국이 경제이성으로 경제학적 분석으로 제단되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이것으로 객관적으로 설명 안되는 것이 한국이라고 진단한다. 

 

좌파 우파, 진보와 보수의 관점에서 벗어나 건설미학과 생태미학의 관점으로 바라본 한국은 이렇게 나뉜다.

 

새만금, 대운하, 뉴타운사업 아름답습니까?

 

새만금 방조제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의 예를 들며 우리 사회 대립되는 두 가지 시선의 이렇게 구분한다.

 

첫번째 시선 "장관, 자랑스러움, 뿌듯함, 국운의 융성"

vs.

두번째 시선 "안타까움, 안쓰러움, 생물의 죽음, 아픔"

 

저자는 이어 한반도 대운하와 같은 정책이 존재하고 진

행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경제이성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역설한다. 경제이성이 끝까지 작동하면 '막연한 기대'나 '개발에 대한 꿈같은 환상' 혹은 떡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하는 판단들은 대폭 줄어든다.

 

뉴타운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땅값, 집값이 올라도 집이 없는 50퍼센트에게는 경제적으로 아무런 이익이 없고, 뉴타운이 결정되더라도 그 당시에 결정을 한 사람들 가운데 10퍼센트만이 원래 동네에서 살 수 있다는 명백한 현실은 그들의 마음을 바꾸는데 전혀 작용하지 못한다. 경제이성을 넘어선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주거공간의 선호도를 외국인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인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건축은 공존이 주는 아름다움과 공존 속에서 발생하는 생태적/경제적 효율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럴 때 나타나는 도시의 형태는 부자들을 보호하는 '요새형' 건물이 줄 지어 서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강남, 분당에 살기 원하지만 외국 주재원들은 광화문이나 종로쪽에 살기 원한다. 가장 문화적인 곳에 있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p188).

 

비정규직을 강화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비합리적 다수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제도에 대한 경제이성보다 특정 정당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비합리적이고 종교적인 그 무엇이 작동하는 것이다(p70).

 

한나라당에 대한 투표가 비정규직을 강화하고, 뉴타운 사업이 수많은 철거민을 발생시키고 용산참사를 불러왔듯이, 대운하 사업 혹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생태재앙'을 불러올 것임을 불 보듯 뻔하다.

 

'건설미학'의 작동

 

이것은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인들에게는 경제이성이나 상식만큼 미학이라는 범주가 중요하게 작동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움직인 힘은 경제이성이 아니라 경제적 욕구였고, 상식이라기 보다는 전도된 주장들이었으며, 이 모든 것을 거대한 힘으로 휩쓸어갔던 것은 대중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흥이었다라고 할 수 있다(p82).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생태미학' 감동지수를 지역사회 속에서 높여가야 함을 역설한다.

 

지속가능성, 공동체, 자치, 소통, 다원성의 화두를 지향하면서 해 낼 수 있는 일이다. 결코 우월적 계몽주의, 선험적 패권주의, 근엄성으로는 어려운 일이다(어제도 대통령님께서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기보다는 우매한 백성들을 열심히 가르치셨다).

 

'생태미학' 곡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살린다

 

저자는 '생태미학'의 마케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마케팅은 소비사회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고리가 되기 때문에 이에 주목한다(p215).

 

대통령이 대운하 추진을 안하겠다고 하면서, '4대강 살리기'는 적극 해나가겠다고 한다. 22조 정도 드는 사업으로 땅사고, 땅파고, 뭔가 짓겠다는 거다. 그러는 동안 국민혈세로 땅 사놨던 사람들 재테크 성공! 말 그대로 강(江)부자 성공시대다.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고 뭔가 지으면서, 뭇 생명들은 다 죽어갈 텐데 말이다.

 

그래서 '4대강 살리기'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제발 좀 '그대로 흐르게 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애들 밥값이라도 좀 챙겨주라고 한다. 얼마전 초등생 급식예산이 삭감된 것에 빗댄 말이다.

 

어째든 우리는 뭔가 부수고, 다시 짓고 하는 것이 아름답게 느키는 '직선'이 되기 보다 자연을 지키고, 너와 나 뭇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도록 고민하고, 생태적 가치관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심을 기르고, 대화하며 조정해가는 능력을 기르고(누구처럼 이렇게 할테니 입 닥치고 나를 믿고 따르라! 하지 않고), 잘못을 성찰하고 돌이킬 수 있는 용기를 기르는 '곡선'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 이 시절에 '곡선'들의 아름다운 연대와 목소리가 필요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수동 마을신문 www.welife.org 에도 실렸습니다. 


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08)


#생태미학#건설미학#직선들의 대한민국#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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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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