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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김대중 잠언집 <배움>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이런 성질의 표지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화려하진 않지만 어떤 의미가 담겨있어 우리들로 하여금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그림들이 실려 있는 표지를 무척 좋아한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사막에 새겨져있는 그렇다고 일정한 방향으로 새겨져있지도 않고 이리저리 어지러이 흩어져있는 수많은 발자국들. 그것들 사이에 올바른 길을 가리키고 있는 발자국은 어떤 발자국인지 탐색해나가고 있는 한 작은 존재.

 

그런 작은 존재가 바로 우리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지러운 발자국 속의 하나의 발자국인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자국도 찍혀있을 테고 그 발자국이 가진 방향과 성격이 어떤 것인지 이 책은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이 책은 생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썼던 저서들 가운데서 <옥중서신>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내가 사랑한 여성> <김대중 자서전> <이경규에서 스필버그까지>의 책 속에 담겨있는 문장들 중에서 이 책을 엮어낸 최성 국회의원의 마음을 움직였던 구절들을 한데 엮어낸 책이라고 책의 서문에서 밝혀놓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갑판위의 생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상상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나를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생각해보았다.

 

삶에서의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고기잡이배에 승선하여 하루 종일 그물망을 설치해놓고 기다리는 과정. 그물망에 걸려있는 생선들을 하나하나 분리해내는 고된 노동의 과정.

 

그런 기다림과 노동의 과정을 생략한 채, 그저 갑판 위에서 배와 등을 드러내면서 펄떡이고 있는 생선들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심정이 바로 내가 이 잠언집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삶의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사회인들에게 산지에서 생산된 신선한 생선과 같은 싱싱함을 제공해줄 것만 같은 책 <배움>. 이 책 한권을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할 때마다 들고 다니면서 비늘을 제거하고 뼈를 발라서 손질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 책을 손질하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금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절반이 가지고 있을 편견은 뒤로 하고 말이다. 

 

논어의 위령공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군자는 말을 듣고 사람을 들어 쓰지 않으며, 사람을 보고 말을 버리지 않는다."

 

"더불어 말할 만한데도 더불어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을 것이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도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을 것이다. 지혜로운 이는 사람을 잃지도 아니하고 말을 잃지도 아니한다."

 

분명히 이 잠언집은 우리에게 필요한 '더불어 말할 만'한 내용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하는 이념들 사이의 논쟁 때문에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면서 말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그가 남겨놓은 중요한 가르침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누가 되었건 간에 그 사람도 말도 잃지 않을 것이다'라는 논어의 가르침을 되새겨서 지혜로운 우리들은 우리를 갈라놓는 편 가르기는 일단 제쳐두고, 그가 경험한 80인생에서의 깨달음을 하나하나 기록해놓은 그 문장들을 곱씹어보자.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떻게'라는 의미에 집중했다는 그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인생, 아내와 가족, 관계는 무엇이었는지에 관해서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이 <배움>의 생선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회로 먹을 것인지, 매운탕으로 해먹을 것인지, 구이로 해먹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보면 어떨까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다산책방(2007)


#김대중 잠언집 배움#김대중#최성#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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