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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골주말농장] 무 빨리 수확 하세요 기온영하로 떨어지면 얼어터지고 썩습니다.'

지난 토요일 아침부터 내린 비로 기온이 내려가서 추워진다는 예보가 있었다. 거리에는 비를 맞고 떨어진 낙엽이 땅바닥에 달라붙어 미끄럽고 나뭇가지들도 거의 벌거숭이가 되었다. 한파라 해도 출퇴근길에 춥지 않도록 옷을 잘 챙겨 입고 가라고 식구들을 다독이는 일 외에는 한파를 위해 다급히 준비를 해야 할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문자가 왔다. 무수골주말농장이다. 빨리 '무'를 수확해야지 한파에 그냥 놔두면 얼고 썩는단다.

우리 동네와 가까운 곳에는 도봉산이 있다. 도봉산은 무수골이라는 곳으로도 오를 수 있다. 무수골은 도봉로 도로에서 쑥 들어와 있는 한적한 동네인데 도심에서 아직 이런 곳이 남아 있나 싶을 정도로 물놀이하기 좋은 계곡과 논밭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그 곳 산자락 주변에 넓은 공간의 주말농장이 있다.

주말농장 무수골 주말농장은 도봉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 주말농장 무수골 주말농장은 도봉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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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주말농장 농사를 시작한 지는 여러 해가 된다. 해마다 약 4평 정도의 땅을 빌려서 푸성귀와 배추, 무 등을 심어왔다. 배추는 모종을 심어도 되지만 무는 반드시 씨로 심어야 한다. 주말농장을 시작한 첫 해에 무씨를 심은 뒤 자란 싹을 쏙아 주면서 옆에다 옮겨심기를 해보았다. 주변에서 "무는 씨를 심어야지 모종으로 옮겨 심으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잘 자란 싹을 그냥 국 끓여 먹기가 아까워 욕심을 부렸더니 정말로 무가 자라지 않았었다.

올 해는 무씨를 두 번이나 심었다. 처음 심었던 것은 비둘기들이 와서 땅을 파헤치고 씨를  쪼아 먹었거나 싹이 난 잎은 듬성듬성 뜯어먹어 버렸다. 두 달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비둘기 피해를 견디고 자란 무는 어른 팔뚝 같은 모양을 땅 위로 쑥 밀어 올리며 잘 자랐다.

무 수확 비둘기와 벌레에 시달렸던 무였지만 잘 자라 주었다. 뽑아 놓고 보니 꽤 큰 것들도 많았다.
▲ 무 수확 비둘기와 벌레에 시달렸던 무였지만 잘 자라 주었다. 뽑아 놓고 보니 꽤 큰 것들도 많았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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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에 밭에 가보니 무를 수확하러온 사람들로 농장 안이 시끌벅적하다. 사람들은 문자를 받고 오기는 했어도 무를 지금 꼭 뽑아야 하냐고 계속 묻는다. 농장에서는 그러면 일단 뽑아서 김장때까지 땅에 묻어 두라고 한다. 하지만 며칠 뒤면 어차피 쓸 무이고, 주말농장은 남의 땅이니 겨울 내내 묻어 둘 수도 없는 문제다.

무를 묻을 만치의 땅을 파는 것도 일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냥 집으로 실어 나른다. 벌써 무나 배추를 뽑은 사람들은 밀차에 가득 실어 나르는데 표정들이 모두 산의 단풍처럼 붉게 물들어 보였다. 한 고랑에 온통 무만을 심은 어떤 아저씨는 무를 나란히 뽑아 놓고는 자루에 담으려 하고 있다. "무를 많이 심으셨네요?"하니 "네, 여섯 집이 나누어 먹으려고요"한다. 주말농장에는 아는 이웃끼리 혹은 자매나 형제끼리 작은 땅이지만 서로 품앗이로 키우는 재미와 나누는 재미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편과 함께 무를 쑥쑥 뽑는데 느낌이 꽤나 괜찮다. 작은 면적에 배추도 심고 무도 심고했으니 많은 것은 아니지만 더러 어른 팔뚝만한 것들이 뽑혀져 나올 때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김장을 하려면 적어도 2주는 지나야 한다. 그래도 일반적인 김장보다는 일찍 하는 셈이다. 무수골은 산과 가까워서 밤이면 기온이 주택가보다 더 내려간다. 그래서 주말농장에서는 11월 중순이 채 못 되어 서리 내리기 전부터 수확을 서두르게 한다. 농장주인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올 해 벌써 두 번이나 서리가 내렸다고 한다.

무 무청을 싹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꼭지까지 싹둑 자른 무다.
▲ 무 무청을 싹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꼭지까지 싹둑 자른 무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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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를 뽑은 뒤에 무 손질에 들어갔다. 일전에 어디에서 들은 것도 같아서 무청이 달려 있는 곳을 남기지 않고 칼로 싹둑 베었다. 무청이 남아 있으면 그곳에서 싹이 나고 싹이 나면서 무의 영양분을 빨아내므로 무가 바람이 든다고 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몇 개를 자르고 있는데, 무를 뽑아 놓고 옮길 요량으로 식구들을 기다리고 있던 내 또래로 보이는 아줌마가 다가온다.

"무청을 그렇게 잘라서 저장하는 거예요?" 그 아줌마도 몰라서 묻는 것이다. "글쎄요?"

주말농장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학생이면서 모두가 선생이다. 서로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농작물을 키우는 방법들이 중구난방이다. 또 자기의 방법이 반드시 옳다고 하다가도 옆에서 '난 어렸을 때부터 농부였다'고 하는 사람이 나서면 슬그머니 자기의 의견을 접고 그대로 따르기도 한다. 비록 농작물을 잘 키운 옆 밭의 이웃들이 있더라도 대부분이 초보들이라서 서로 묻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한 해는 이렇게도 해보고 또 한해는 저렇게도 해보는데 삼사 년이 되는 지금도 귀가 얇아서 이랬다저랬다 한다.

"저 쪽에 있는 아저씨는 어떻게 할지를 몰라 그냥 무청이 달린 채로 자루에 담더만."
"물어보니까 무청을 남겨야 한다고 하던데....그래서 나도 남기고 잘랐어요." 칼로 무청을 싹둑 자르고 있는 나를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한다. "그래요? 예전에 누군가가 이렇게 하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서 싹을 모조리 싹뚝 자르고 있는데요?"하니 "농장 관리아저씨가 무청을 남기라고 하던데요?"한다. 할 수 없이 무청을 싹둑 자른 무와 무청을 남긴 무 두 개를 들고, 농장주인 아주머니한테 물으러 갔다.

무 농장 아주머니의 조언대로 무청을 남기고 손질한 무다
▲ 무 농장 아주머니의 조언대로 무청을 남기고 손질한 무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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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는 무국 끓여 먹고", 무청을 싹둑 자른 무다. 무청이 조금 남겨진 무를 보고는 이 무는 저장하면 되겠네, 무청을 조금 많이 남겨도 돼, 그리고 저장하려면 무청이 있는 쪽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하신다. 옆에 있던 아줌마가 "거 봐요"한다. 괜히 머쓱해져서는 싹둑 잘린 무와 그렇지 않은 무를 번갈아 보면서 "에이, 김장 금방 할 건데 뭐..." 말꼬리를 내린다.

뜯어낸 무청을 정리하고 있자니 우리 밭을 지나던 어떤 아주머니가 "무청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생으로 말리면 금방 누렇게 떡잎이 져서 못 쓰겠더라고요. 삶아서 말리니까 부피도 줄고 보관하기도 편하고, 먹을 때 한 번 더 삶으니 연해서 좋던데요." 또 다시 정보교환이 오고간다.

이렇게 수확해온 무는 김장을 하고, 큰 집에도 조금 나누어 주고, 무말랭이도 하고, 오랜 저장은 못하지만 나름 저장을 해서 긴 겨울반찬은 못 되어도 겨울나기 반찬거리가 될 것이다. 몇 년을 주말농장에서 무를 수확했어도 그리 많은 양이 아니었기에 무가 바람 들기 전에 먹었다. 이번에는 조금 많은 양이기도 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얻고 싶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를 각각 신문지에 싸서 상자에 넣고 얼지 않도록 보관하는 수밖에는 없다.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저장방법이 각각이다. 흙과 멀게 있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저장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아직도 궁금증이 다 풀어진 것은 아니다.


#주말농장#무 저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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