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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으로 유명한 '안흥'

 감자꽃이 핀 안흥 산골
 감자꽃이 핀 안흥 산골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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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셔요?  오늘 슈퍼에 갔더니 안흥찐빵이 눈에 띄기에 한 상자 사다가 아이들과 함께 쪄 먹으면서 고국 강원도 안흥찐빵 마을에 사시는 선생님 얘기 많이 했어요. …"

미국 워싱턴 근교 락빌(Rockville)에 사는 한 제자가 보낸 메일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안흥은 면소재지로 주민이 삼천 명 정도의 자그마한 고장이다. 하지만 이 고장 명물 '찐빵'으로 그 이름이 전국은 물론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나에게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에 산다면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사실 나는 이 고장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굳이 그 인연을 억지로 갖다 붙이면 고교 다닐 때 집안형편상 학교를 휴학한 뒤 생계로 어머니와 함께 서울 계동 중앙학교 들머리 남의 처마 밑에서 찐빵을 만들어 판 적이 있었다. 또 한 번은 7~8년 전 내 인생의 스승인 김석관 씨 내외와 남설악 오색단풍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분들이 안흥찐빵 얘기를 하면서 굳이 안흥에 들러 가자고 하여, 이 고장에 와 찐빵 몇 상자를 사간 적이 있었다.

 갓 쪄 나온 안흥찐빵
 갓 쪄 나온 안흥찐빵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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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이 고장에 살아보니까 '안흥(安興)'은 지명 그대로 편안하고 흥겨운 고장이었다. 울창한 삼림 속에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산골 마을이었다. 이곳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알맞다는 해발 500여 미터로 산수가 아주 빼어나다. 또한 이 고장에는 먹을거리도 매우 풍성하여, 안흥찐빵을 비롯하여 더덕, 한우, 옥수수, 오미자, 고랭지배추 등의 맛이 아주 빼어났다.

안흥은 백두대간 줄기인 매화산, 백덕산, 사자산 등 아름다운 산봉우리가 사방 병풍처럼 둘러쳐진 분지로, 아늑하기 그지없는 천혜의 자연경관이다. 아직도 깊은 산 계곡에는 멧돼지와 고라니가 뛰놀고, 금강초롱꽃과 원추리가 지천으로 방긋이 미소 짓는 천연 동식물의 보금자리였다.

  내 집에서 바라본 안흥 장터마을
 내 집에서 바라본 안흥 장터마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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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연 따라 안흥을 떠나다

예로부터 안흥은 평창, 대화와 더불어 중부 영서의 이름난 장터로,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서울과 강릉을 잇는 버스들이 이곳에서 잠시 쉬어갔다. 그래서 안흥 장터 마을은 수많은 길손들이 요기를 하고 가는 길목으로 그 무렵 이곳 밥집들은 하루에 쌀 한 가마니 이상 밥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영동고속도로가 이곳을 비켜가자 급격히 쇠락해버린 고장이지만, 아직도 인심이 좋고, 맛깔스런 음식은 그때의 명맥을 잇고 있다. 최근에는 '안흥찐방'이 '국민의 찐빵'으로 사랑받아 다시 지난날의 영화를 되찾고자 주민들이 정성을 쏟고 있다.

 우리 마을(말무더미) 오솔길
 우리 마을(말무더미) 오솔길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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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4년 3월 학교에서 뒤늦게 퇴임식을 가진 뒤, 이삿짐을 꾸려 전재고개를 넘어 안흥에 왔다. 그때는 이 고장 풍토에 적응하면서 살 수가 있을지 몹시 불안했다. 솔직히 유배 가는 심정으로 속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마을 이웃들이 친절하게 살펴줘 마치 내 고향 같은 편안한 마음으로 이 고장에서 잘 살았다. 틈틈이 이 고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산수를 카메라에 담고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면서 꽤 많은 글도 썼고 여러 권의 책도 펴냈다. 짧은 인생에 6년 가까이 이 고장에서 살았다면 내 전생에 분명 이 고장과 인연이 있는 성 싶다.

하지만 또 다른 인연에 따라 내일 아침 우리 부부는 전재 고개를 넘어 이 고장을 떠날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이 고장에서 보고 느낀 아름다운 풍경들을 계속 글로서 그릴 것이다.

안녕, 안흥이여!

 어느 날 산책길에서
 어느 날 산책길에서
ⓒ 유수(민족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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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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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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