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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정치권 영입 대상 인사로 거론됐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근 정치권 진출 제안을 많이 받는 모양이다. 하지만 더 이상 박 상임이사에게 정치 참여 의사를 타진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잘못하면 '정치인 박원순'은 고사하고 '시민운동가 박원순'마저 잃을 수도 있을 듯하다.

 

박 상임이사는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성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2010연대' 출범 기념 '풀뿌리민주주의 희망찾기' 연속 좌담회 첫 번째 대담자로 나와 정치권 진출 제안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해외로 도망갈까도 생각했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크다고 밝혔다.

 

"나는 늘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찾아 후미진 곳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곳에 햇빛이 들어오는 등 너무 부각돼 부담이 된다. 정치는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많은 시민들의 꿈과 소망을 담아낼 수 있는 정치인이 나오길 바란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정치인이 바로 나라고 하면 동의하기 어렵다. 나는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 그런데 자꾸 나보고 정치를 하라고 하니 힘들어서 해외로 도망갈까도 생각했다."

 

함세웅 신부, 최병모 변호사, 주종환 교수 등이 대표로 참여한 '2010연대'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 연대와 후보단일화, 그리고 길게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위한 모임이다.

 

이런 모임의 출범식에 앞서 열린 좌담회이다 보니 "박 상임이사, 당신이 직접 후보로 나가보는 건 어떤가"라는 질문은 당연히 나왔다. 그것도 여러 차례. 그 때문에 한 방청객은 "박 상임이사가 그동안 수차례 '정치는 안 한다'고 밝혔으니 이제 더 이상 묻지 말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어쨌든 이날도 박 상임이사는 "동네 이장은 출마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다른 건 싫다"고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이날 '풀뿌리민주주의 희망찾기' 좌담회는 변영주 영화감독의 사회로 시민 패널 4명이 박 변호사에게 질의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좌담회는 <오마이TV>, <하니TV>, <프레시안TV> 등을 통해 인터넷 생중계됐다. 누리꾼들은 댓글과 트위터를 통해 박 상임이사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박 상임이사는 한국 시민운동의 '대부'로서 그동안 풀뿌리 시민운동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등이 그의 손을 거쳐 태어나고 성장했다. 그런 만큼 박 상임이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에 밀착된 풀뿌리 시민운동과 활동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아파트 동 대표 선거, 부녀회, 학교 운영위원회 등이 잘되지 않은 채 지방선거가 잘될 리 없다"며 "큰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토양이 좋아야 하듯 중앙 정치가 잘되려면 결국 지역에 기초를 둔 풀뿌리 민주주의가 잘 운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내년 지방선거를 7개월여 앞둔 현 시점에서 진보개혁 진영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최근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희망과 대안'이라는 모임까지 출범시킨 박 상임이사에게는 어떤 묘책이 있을까.

 

박 상임이사는 먼저 방법론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각 지역에는 인성과 지성을 갖춘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분들이 주민들에게 부각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며 "정당공천이 아닌 '국민공천'의 이름으로 이들을 내세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새로운 제안을 했다.

 

이어 박 상임이사는 평소 지론대로 광역단체가 아닌 기초지방자치 선거에서는 정당 공천을 배제하자고 제안했다.

 

"정당이 공천제를 통해 지자체 후보들까지 지명하기 때문에 이를 통과하지 못하는 좋은 후보들이 많다. 정당 공천은 지자체에서는 배제돼야 한다. 사실 정당이 공천권은 행사하면서 정작 책임은 지지 않는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천을 한 뒤 지자체에 해주는 게 없다."

 

어쨌든 박 상임이사는 "현명한 국민이라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일색인 지방정부를 적어도 55대 45 정도까지는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며 "결국 '연대'만큼 중요한 화두는 없고, 유사한 고민을 하는 많은 세력이 힘을 합치면 내년의 지방선거도 희망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낙관론을 폈다. 

 

이렇게 지역 풀뿌리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박 상임이사는 과연 자신의 지역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을까? 세 아이의 엄마라고 밝힌 시민패널은 "아파트 활동의 중요성까지 이야기했는데, 실제로 당신은 거주지에서 활동을 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박 상임이사는 "너무 아픈 질문인데, 1년에 3개월을 해외에서 보내고 집안 살림도 거의 보살피지 못해 실제로 동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하고 싶다"며 "우리의 생협 운동은 실제 먹을거리 운동에 머물러 있는데, 육아 등 할 수 있는 일이 무척 많다"고 덧붙였다.

 

또 박 상임이사는 최근 국가정보원이 제기한 소송에 대한 심경을 밝히며 "분노와 절망으로 날을 보내는 건 결국 저들의 의도에 내가 따라가는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사회를 퇴행시킨 것은 안타깝고 분노할 일이지만, 한편으로 지금은 지난 10년의 진보정권을 곱씹어 보고 정말 새로운 정부를 다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고 밝혔다.

 

즉 이명박 정부의 시기를 진보 진영이 성찰할 계기로 삼자는 게 '낙관주의자' 박원순의 제안이다. 그렇다면 박 상임이사는 이명박 정부의 퇴행을 예측했을까?

 

박 상임이사는 "솔직히 이명박 정부가 이 정도까지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펼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며 "결국 시민들의 의식이 균형 잡히지 않으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지난 10~20년 동안 해온 운동의 한계를 자각하고 좀 더 새로운 본질적인 운동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박 상임이사는 사람들의 의식 전환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강조했다.

 

"잘 먹고 잘사는 게 우리들 꿈의 전부인가. 이건 정말 너무 천박한 비전이 아닌가.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품격 있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의 MBA에 가면 기업의 사회공헌이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과목도 배운다. 그런데 우리나라 MBA는 자기 혼자 잘 먹고사는 것만 가르친다. 우리가 균형 잡힌 선진사회가 되려면 사람들의 왜곡된 가치관부터 바꾸는 게 중요하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은 전경련 회장이나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들이 내걸 공약이 아닌가."

 

박 상임이사는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낙천낙선운동을 이끌며 큰 성과를 남겼다. 전국적으로 낙천낙선 대상자에 오른 인물들 중 70%가 낙선을 했고, 서울에서는 90% 이상이 떨어졌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열리는 2010년 지방선거. 박 상임이사는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언제든 변화가 찾아온다"면서도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별로 없다"고 토로했다. 박 상임이사가 강조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힘은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까.


#박원순#2010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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