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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8위 금호그룹이 지난해 12월30일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사태로 가게 된 직접적 계기는 대우건설 매각 실패에 따른 유동성 위기이다. 하지만 이 유동성 위기의 배후에는 재벌총수 1인의 '황제경영'이 자리하고 있다.

 

금호그룹이 2006년 11월 대우건설 인수에 들인 돈은 주당 2만6천원씩 6조4225억원이다. 이 인수자금의 절반이 넘는 3조5천억원은 대우건설 주식 39.6%를 담보로 내놓고 국내외 금융기관에 빌린 '빚'이었다. 금호그룹은 빚을 얻기 위해 이른바 '재무적 투자자'로 불리는 국내외 금융기관(미래에셋. 메리린치 등)에 매력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3년 뒤인 올해 12월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주당 3만1500원을 밑돌 경우 금융기관이 보유한 대우건설 주식을 같은 값에 되사준다는 '풋백옵션'을 제시한 것이다. 빚쟁이들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거래였다. 금호그룹으로서는 대우건설의 주당 가치를 3만1500원 이상으로 유지하는 게 경영의 최우선 순위에 놓여야 했다.

 

그러나 금호그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되레 대우건설의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영 행태를 보였다. 대우건설의 당기순이익 대비 현금 배당률은 30%가 넘었다. 동종업계 최고였다. 2007년 2월 1696억원(배당률 38.6%), 2008년 2월 1620억원(배당률 32%), 2009년 2월 814억원(32.3%) 등 4100억원이 넘는 현금 자산이 금호산업과 국내외 금융기관에 흘러갔다. 이뿐이 아니다. 금호그룹은 2008년 3월에는 무려 4조1천억에 이르는 자금을 들여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컨소시엄의 주인수자로 대우건설을 참여시켰다. 2007년 7월 대우빌딩 매각대금 9000여억원으로 대우건설 자사주를 사들여 주가를 2만9천원 대까지 끌어올린 것을 무색하게 하는 결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금호그룹은 풋백옵션으로 4조원이 넘는 돈을 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이것이 금호그룹 워크아웃 사태의 처음과 끝이다. 이 처음과 끝을 낳은 장본인은 바로, 금호그룹 회장이자 금호석유화학, 금호타이어, 대우건설, 대한통운, 아시아나항공 등 5개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겸임했던 박삼구씨다. 그런 그가 금호그룹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언급하고 있는 게 금호그룹 계열사에 대한 자신의 지분을 담보로 내놓겠다는 것 정도다. 그나마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의 박 회장의 지분은 사재로 내놓을지조차 불투명한 실정이다.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21일 금호석유화학 이사회를 열어 금호산업이 갖고 있던 아시아나항공 주식 33.5% 가운데 12.7%를 주당 4275억원에 금호석유화학에 팔아, '금호석유화학→이사아나항공→대한통운'으로 이어지는 금호그룹 경영권 행사구조를 마련하는 민첩함을 보였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잃을 경우를 대비해 금호석유화학을 매개로 한 자신의 경영권을 챙기겠다는 계산에서였다.

 

이런 박 회장에게 금호그룹 채권단은 면죄부를 줬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박 회장 일가의 경영권을 최소 3년에서 5년까지 인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마치 2009년 WBC 야구경기에서 김인식 감독이 이승엽 선수에 보인 것과 같은 신뢰를, 채권단이 박 회장에게 보인 꼴이다. 하루 전, 이 나라의 대통령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단독 사면'이라는 은전을 베푼 데서 영감이라도 얻었던 모양이다. 3년 전까지 경영정상화를 이루지 못하면 담보로 잡은 박 회장 일가의 주식을 처분해 경영권을 뺏는다는 게 채권단의 설명이지만, 이는 금호그룹 사태의 원인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금호그룹 사태는 외부 경영환경의 어쩔 수 없는 악화로 인해 빚어진 게 아니다. 총수인 박 회장의 무모한 대우건설 인수, 인수한 대우건설의 기업가치 극대화보다는 또 다른 외형 확장을 위한 대한통운 인수 등 일련의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의사결정이 낳은 산물이다.

 

그렇기에 위기를 낳은 장본인의 경영권을 유보하고 새로운 경영자를 앉히는 게 순리다. 그래야 워크아웃에 들어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회생 가능성도 훨씬 더 높아진다. 자구계획 마련과 실천 과정에서 노사 간에 빚어질 수 있는 갈등의 비용을 최소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갈등의 비용을 극대화시키는 선택을 했다. 그룹을 위기에 몰아넣은 장본인이 두 회사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은, '적반하장'에 가깝다. 그 장본인이 또 다시 정리해고와 같은 것을 내세운다면, 지난해 7월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정리해고를 통보했던 '비례'(非禮)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엔 상식이 허락하지 않는다. 밥 먹듯이 경제범죄를 저지른 이 나라 대통령의 '법치' 발언을 아무도 믿지 않듯이, 박 회장 일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이 여기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저 노동조합은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조기졸업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변수'일 뿐이다. 회사 정상화와 워크아웃 조기졸업을 위해선 금호타이어 노동자와 노조의 '생산성 협조' 등이 필수적임에도, 이미 큰 판은 노조의 흔쾌한 협조를 얻어낼 수 없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앞으로 대부분의 언론이 보일 태도는 어떨까? 아마도, 정리해고 등 회사의 구조조정 요구에 대해 금호타이어 노조가 반발할 경우, 회사 정상화의 발목을 잡는 '강성노조'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납세자에게 끼친 손해에 책임지고 물어나야 할 박 회장 일가는 시야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고 금호타이어 회생의 걸림돌로 노조가 비난받는, 뒤집힌 현실이 다시 펼쳐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덧붙이는 글 | 조준상 기자는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입니다. 이 기사는 ilabor.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금호그룹#금호타이어#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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