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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공지영씨가 21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글쓰기의 힘, 공지영과의 문학 데이트'를 주제로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을 하고 있다.
 소설가 공지영씨가 21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글쓰기의 힘, 공지영과의 문학 데이트'를 주제로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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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21일)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의 열두 번째 순서인 '글쓰기의 힘, 공지영작가와 함께 하는 문학데이트'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듣는 강연이기도 했지만, 그 동안 비교적 많이 접해 익숙한 경제학자나 정치인이 아닌 '작가'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이를 만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기대가 컸다.

회사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는 저녁식사의 유혹도 뿌리치고 집에서 미리 싸온 고구마로 간단하게 허기를 채웠다. 워낙에 길치인 탓에 혹시라도 초행길에 늦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공지영 작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지도 검색 서비스로 버스노선을 찾아 미리 출력해 두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런 치밀한 준비 덕에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었다. 모두들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여느 강연과는 달리 앞자리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강단 정면, 앞에서 세 번째쯤에 자리를 잡았다.

예정된 저녁 7시 30분이 되자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공지영 작가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야, 공지영 작가다', 속으로 외쳤다. 대학교 1학년 때 소설 <고등어>의 뒷표지에 실린, 승용차 운전석에 앉은 채로 찍은 푸른색의 사진을 접한 것이 처음이었으니 그로부터 16년 만이다. 당당하게 문을 밀고 들어온 오연호 대표기자와 달리 마치 전학생이 교실에 들어서듯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뒤따라와서는 문 바로 옆 의자에 숨듯이 앉기까지 내 눈에 비친 공지영 작가의 첫인상을 옮겨보자면, 작가는 생각보다 짙은 화장에 생각보다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공지영은 왜 7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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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호 대표기자와 작가가 간단히 몇 가지의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은 뒤 강연이 시작되었다. 작가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갖게 된 자신의 '상처'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갔다.

글쓰기를 그만두고 빵집이나 스파게티집을 열고 싶을 정도로 주변의 시선과 말들이 큰 상처가 되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고 2005년 출간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쓰기 전 거의 7년 동안을 글을 쓰지 않고 지낸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화려하게 등단해 늘 주목을 받아온 작가가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20년 세월의 3분의 1 동안을 글쓰기를 포기한 채 지냈다는 사실만큼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작가가 그 상처를 이겨낸 힘은 물론 '글쓰기'였다. 여기서부터가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다. 어느 단편소설 청탁을 계기로 7년 만에 다시 원고지를 마주했지만 작가는 한 달이 지나도록 단 두 문장을 이어갈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난 7년간 펜을 휘두르는 화려한 '기술'이 무뎌진 탓이 아니라 글쓰기를 가능케 한, 또는 거꾸로 글쓰기를 통해 가능했던 뚜렷하고도 명징한 작가의 '의식과 시선'이 녹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딱딱하던 바게트빵이 물에 녹아 형체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결국 공지영 작가조차 13년간의 쉼없는 글쓰기와 7년의 공백을 거친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가 글을 쓰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나 역시 글쓰기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었던 셈이다. 만일 끊임없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펜의 초식을 익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상과 사람을 정확히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한 '작가의 시선과 의식'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전한 글쓰기의 또 하나의 힘은 바로 '치유의 힘'이었다. 글로 표현된 나와 나의 의식을 통해 비로소 '객관화된 나'를 마주할 수 있게 되고, 그로부터 연민과 반성 사랑과 포용이라는 '치유'의 과정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었다. 작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쓰기 전 어느 수녀의 도움으로 읽게 된, 다섯 사형수들이 남기고 간 두터운 자서전들을 보면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지영이 말하는 글 잘 쓰는 법

작가가 어느 자리에 가던 사람들이 끈질기게 묻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글쓰기를 잘 하는 법', 또는 '작가가 되는 법'일 터다. 이에 대해 작가는 매일 읽고 또 매일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물론 모든 작가들의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지영 작가가 말한 매일 쓰는 것의 의미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작가에 따르면 글의 주제를 정하고 플롯을 구성하는 일, 즉 한편의 소설을 사람에 비유하면 뼈대를 세우고 근육을 붙이는 일에 해당하는 여기까지의 과정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정작 어려운 일은 여기에 피부와 머리카락, 속눈썹을 만들어 붙이는 '세부 묘사'다.

따라서 매일 글을 쓰는 행위의 의미는 한편의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그 무수한 배경과 감정들을 훌륭하게 묘사하는 데 있는 것이다. 작가는 고 기형도 시인의 <짧은 여행의 기록>이라는 산문집을 추천해주었다(찾아보니 안타깝게도 절판되었다).

1시간여의 강연 뒤에는 또 1시간 정도의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작가는 지극히 평범한 질문들을 챙기고는 지나치게 훌륭한 답변들을 내놓으며 짧은 강연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다른 이의 삶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이라던 작가의 말로 나름대로 유쾌했던 질의 응답 시간에 대한 소개를 대신하겠다.

새로운 도전은 늘 새로운 기회을 낳는다는 것이 내가 별로 길지 않은 인생에서 얻은 값진 교훈 가운데 하나다. 열심히 글을 써보겠노라고 다짐한 뒤로 공지영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만나게 된 것도 이런 내 믿음에 힘을 싣는다.

좋은 자리 마련해 준 <오마이뉴스> 관계자들과 또 <오마이뉴스>독자들이라는 결코 편치도 만만치도 않았을 이들과의 만남을 기꺼이 받아들인 공지영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10만인클럽이 소개하는 열세 번째 인물은 과연 누구일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개인블로그tooday.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공지영#십만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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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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