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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덴마크는 독일과 육로로 연결되어 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덴마크 수도인 코펜하겐에 "하켄크로이츠"를 꽃을 수 있는 입장이었던 독일은 소련이 자주 써먹었던 방법인 협박을 덴마크 정부에 들이댔다. 덴마크 주재 독일 대사를 통해 독일군이 덴마크 국경을 넘었다는 것과 이것은 덴마크 치즈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독일의 우정어린 결정이었다는 말도 안되는 괴변을 정중한 외교용어로 친절하게 설명을 한 다음, 덴마크 정부에 현명한 선택을 촉구하였다. 여기에서 현명한 선택이라 함은 당연히 덴마크의 무조건 항복을 의미하였다.

독일 대사의 선전포고 겸 항복요구를 통보받은 덴마크 외무장관 뭉크 박사는 즉시 국왕과 함께 대책을 숙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낼 수 있는 묘안은 딱히 없었다. 정중하게 침략군을 맞아들이던가, 아니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계란을 굴러오는 거대바위로 던질 것인가 하는 오직 두 가지 방안 외에는 없었다. 후자의 경우처럼 계란이 되어야 할 덴마크군의 전력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었다. 2만여명이 채 되지 않는 덴마크군이 잔뜩 물이 오른 게르만 전사들을 과연 당해낼 수 있을까?

 덴마크에 진주하고 있는 독일군을 표현하고 있는 우표
 덴마크에 진주하고 있는 독일군을 표현하고 있는 우표
ⓒ 김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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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정부가 제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생각을 해 봐도 저항은 부질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결국 독일의 우정어린 충고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덴마크는 점령군을 정중히 맞아들이게 되었고 덴마크군 역시 정중한 자세로 무장해제 당하는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소련의 협박에 너무나 쉽게 자국의 운명을 넘겨줘버린 발트 3국처럼, 덴마크 역시 자신들의 결정이 약소국의 현명한 선택이라고 자위하고 있던 그 시기 이웃나라인 노르웨이는 용감한 바이킹의 후예답게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월간공군



#덴마크#독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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