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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선원 여주 신륵사에 문을 연 여강선원 전경.
▲ 여강선원 여주 신륵사에 문을 연 여강선원 전경.
ⓒ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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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처럼 사는 집 여강선원(如江禪院). 잔잔히 흐르는 남한강변에 집을 지으며 수경스님은 "여강선원은 멈추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4대강 파괴를 반성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문을 연다"고 했다. 오늘도 여강선원은 4대강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이 반성할 수 있도록, 길이 끊겨 멈춰버린 물길이 다시 흘러갈 수 있도록 그곳에 문을 열어두었다. 지난 4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의 여강선원 동행취재로 얻은 '희로애락'을 여강선원으로 띄운다.

[희(喜)] 수리부엉이 발견하고 단독기사를 쓰다

기자에게서 가장 기쁜 일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연 '특종'이 아닐까. 나에게 그런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부처울 습지에서 멸종위기종 2급 수리부엉이를 최초로 발견한 것이다.

물론, 내 눈에 먼저 뜨인 것은 아니다. 부엉이는 낮에 잠을 자고 밤에 깨어 있는 야행성 새라는 것밖에 기본 지식이 없는 내게 수리부엉이를 찾기란 부처울 습지에서 새 알을 찾기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수리부엉이를 찾기 위해 4대강사업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4대강저지범대위)측을 따라나선 지 3일만인 4월 29일 드디어 4대강저지범대위 측의 도움으로 수리부엉이를 내 눈앞에서 확인했다. 수리부엉이를 발견하고 신나하는 내게 옆에 있던 황민혁 녹색연합 간사는 "장지혜 기자 대박 났네"라며 한껏 치켜세워줬다.

그동안 여강선원 사무실을 빌려서 기사 쓰고, 4대강저지범대위 회식자리에 껴서 삼겹살 얻어먹으면서 '밥값'도 못해서 어쩌나 얼마나 '속앓이'를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수리부엉이를 발견하고 '단독'으로 기사도 쓰니 기자로서 밥값은 한 것 같아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 듯했다. 뛸 듯 기뻤다. 오버라고 해도 할 수 없다. 난 정말 그랬다.

[노(怒)] 날씨의 혹독한 신고식

여강선원에 처음 도착한 지난 4월 26일은 화창한 봄날이었다. 여강선원 입구에 들어서자 강변을 끼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꽃비를 내리고 있었다. 덩달아 3주간의 수습기자 생활에서 온 긴장도 함께 풀리는 듯했다. 그렇게 5일간의 여강선원 동행취재는 남한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공기 좋은 곳에서의 봄 소풍처럼 시작됐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남한강은 내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에 앞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게 했다. 바로 날씨가 문제였던 것. 오전 7시 기상해 8시부터 온종일 강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모니터링을 하는데 강풍을 동반한 비는 애꿎게도 내리 내렸다.

서울에 있었으면 절대 맞아서는 안 된다는 산성비가 내린 날, 100년 중 최고기온이 가장 낮았다는 4월 28일. 한 쪽에는 카메라를, 다른 한 쪽에는 수첩을 들고 새 알을 찾기 위해 부처울 습지를 헤맸던 바로 그날이었다.

우산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길이 아닌 곳을 걸어가고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곳을 올라야만 했다. 행여나 젖은 바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을까 겁먹을 틈도 없이, 이곳저곳을 익숙한 듯 찾아다니는 4대강저지범대위 관계자들의 속도를 따라가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온종일 맞은 비에 몸은 으슬으슬했고 푸념은 점차 '화'로 변했다. '왜 여기까지 와서 생고생을 해야 하나'라며 날 이곳에 보낸 선배를 원망했고 5월이 코앞인데도 강풍에 비를 퍼붓는 하늘이 미웠다.

[애(哀)] 멈출 수 없는 싸움 '수경스님'

수경스님 여강선원 선원장 수경스님이 방문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수경스님 여강선원 선원장 수경스님이 방문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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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일보다 즐거웠던 일이 많았던 5일간의 여강선원 생활이었다. 다만 안타까웠던 것은 여강선원의 '선원장' 수경스님(화계사 주지)의 건강이었다. 수경스님은 계속된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로 상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야만 했다. 부축을 받아야만 수월하게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말이 좋아 절이지 여강선원은 컨테이너로 지어진 건물이다. 수경스님은 그런 곳에서 생활하며 새집증후군을 앓아 가끔씩 온 몸이 간지러운 듯 고통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보다 못한 누군가 뜨거운 물에 땀을 빼야 한다고 걱정이라도 하면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간혹 여강선원을 찾아오는 이들이 수경스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면 스님은 "내가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은 '내 일'이기 때문이지 그 누구 때문도 아니"라며 "그러니 나를 찾아온 당신에게 고맙단 말은 하지 않겠네 '당신 일'이기도 하니까"라고 말했다.

수경스님은 공사가 중단될 예정이었던 6, 7월에는 잠시 여강선원을 비우고 화계사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속도를 내고 있는 공사가 중단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여름 내내 여강선원을 지키기로 마음을 바꿨단다.

여강선원에서의 마지막 날, 모처럼 시간을 내 신륵사 앞 남한강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올랐다. 지저귀는 새소리보다 준설현장의 포크레인 소리가 더 큰 남한강변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몇몇 방문객들은 신륵사 정자까지 올랐다가 예전 경치만 못하다며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포크레인 소리보다 새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날, 남한강변의 경치를 감상하게 위해 신륵사 앞 정자를 찾는 방문객이 많아지는 날까지 무더운 여름 동안 여강선원에서 수경스님의 외로운 싸움은 계속 되겠지.

[락(樂)] 5평 남짓한 여강선원에 피는 '웃음꽃'

쭈구리 찾는 모습 4대강저지범대위 관계자들이 공사현장서 인부들의 안전모를 착용하고 쭈구리를 찾고 있다.
▲ 쭈구리 찾는 모습 4대강저지범대위 관계자들이 공사현장서 인부들의 안전모를 착용하고 쭈구리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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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평 남짓한 여강선원에서 생태지평, 녹색연합, 불교환경연대,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등 약 10여명으로 꾸려진 4대강저지범대위는 4대강 사업을 막겠다는 하나의 목표로 한 달 넘게 동고동락하고 있다.

신륵사에서 내려다보이는 4대강 공사현장에 흙탕물이 흘러들어가고 있으면 오리배를 타고 들어가 탁수검사를 해야 하고 공사장 인부들의 눈에 뜨이지 않고 공사현장에 잠입하기 위해 안전모를 쓰는 등 위장도 불사른다.

힘든 하루하루지만 그래도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음꽃을 피운다. 명호 생태지평 팀장은 "가끔 선관위가 여강선원에 와서 선거법 운운할 때를 빼고 힘든 점은 없다"며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여강선원의 웃음꽃은 뒤풀이 때 만개한다. 재치 있는 입담을 과시하는 황민혁 녹색연합 간사와 여강선원의 명가수 이선화 녹색연합 활동가 등이 분위기 메이커다. 이선화 활동가는 "체력적으로 지칠 때도 있지만 여강선원에서 함께 일하는 활동가들과의 매일이 즐겁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여강선원에 처음 도착해 짐을 풀었을 때의 서먹함 보다 떠날 때의 서운함이 더 큰 것을 보면 '강처럼사는 집' 사람들과의 생활은 나에게도 '즐거움'이었다. 함께여서 웃을 수 있는 강처럼 사는 집 사람들. 다시 여강선원을 찾았을 때 이곳 사람들의 보다 환한 웃음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4대강#여강선원#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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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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