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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한때 열정을 쏟은 만큼 세상이 바뀔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세상을 향해 외치기도 했고, 아스팔트도 많이 깼고, 지랄 같은 지랄탄도 많이 맞았습니다. 원래 제 피부가 심은하보다 좋다고 할 정도였는데 이 개떡 같은 시대가 제 피부를 확 앗아갔습니다. 진짜냐구요? 뭐 어짜피 확인될 일도 아닌데 약간의 과장법? 허용됩니다. 

 

어쨌든 세상이 바뀌기는 했습니다. 언론에서 대통령을 완전 깔아뭉개도 다음날 잡혀갔다는 소식이 전혀 없는 걸로 보면 세상이 많이 바뀌기는 했습니다. 제 어릴적 아버지께서 술만 드시면 엄마가 안절부절 못하고 아버지 입을 막으려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폭압의 시대에 희생당한 사람이 어디 민주열사뿐이겠습니까. 그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삶이 고된 민중들이야말로 더 큰 희생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지금은 또 달라졌습니다. 내 건강권을 지키겠다고 촛불을 들어도 굴비 엮 듯 잡아넣는 정권 아래서 살고 있습니다. 원래 폭압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의례 그러려니 할텐데 자유를 맛본 뒤의 폭압이라 온 몸에서 뽀글뽀글 올라오는 연기를 어찌하나 싶습니다. 

 

오늘 스님께 질문하신 분은 비정규직이 차별 받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은 사람입니다. 인사관리 팀장이라는 자리에 있으니 더 괴롭겠다 싶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한번 들어보시죠. 

 

-저는 직장에서 인사 관리 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만 해도 30명 중에 정규직은 다섯 명 정도고 나머지는 비정규직인 계약직 직원들입니다. 정규직과 계약직은 급여나 대우 등 모든 면에서 차별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계약직 직원들을 대하는 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일을 시켜도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고요. 얼마 후 재계약 시기가 오면 그들 중 일부는 직장을 떠나야 할지 모릅니다. 계약을 종료하고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제가 해야 하는데,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야 할까요.

 

"직장을 그만둘 것이 아니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주어진 일을 무조건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똑같이 일하고도 차별받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물론 마음이 편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현 사회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갑자기 일시에 개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내게 주어진 임무가 그것이라면, 회사의 방침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 될 것입니다. 그러고도 사람들의 원망을 피할 수 없을 때는 원망을 듣지 않으려고 도망가지 말고 기꺼이 원망을 들으십시오. 미안한 마음으로 원망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나 남은 일을 미리 두려워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구를 자르고 누구를 안 자를지 벌써부터 걱정할 에너지가 있으면, 차라리 한 명이라도 덜 자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작업 능률을 높이든지, 함께 일하는 직원 중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재계약을 할 수 있게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게 더 낫겠지요. 그렇게 걱정할 시간이 있다면 말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불평등하지만 평등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보'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불평등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능한 한 평등해지도록 노력해야 하겠지요. 그것이 '진보'일 터이고요. 그러나 현실의 불평등 또한 인정을 해야 합니다. 현실의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고 평등만을 주장하면 그것은 '이상(理想)'이 돼 버립니다. 그러면 현실에 발을 못 붙이게 됩니다. 반대로 현실의 불평등만 인정하고 미래의 평등을 지향하는 노력 없이 현실에 안주하게 되면 인생은, 세상은 진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 두 발은 비록 불평등한 현실일지라도 늘 그곳을 딛고 있어야 하고, 내가 나아가야 할 저 목표는 평등의 세계를 향해야 합니다. 나는 이 불평등한 현실에서 한 발 한 발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꿈이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현실 속에서 꿈을 실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이 쓰레기를 버리더라도 나만이라도 줍는다는 태도가 세상을 바꾼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포자기하는 편이지요. 나 혼자 잘한다고 되나, 세상이 그런 걸 어떻게 하나, 그러면서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갑니다. 세상이 어떻든 나만은 똑바로 살아야 되겠다는 태도가 매우 필요합니다. 한 명이든 두 명이든 100을 다는 못 고치더라도 1만큼이라도 세상을 고치자, 세상 사람이 다 쓰레기를 버리더라도 나만이라도 버리지 않는다, 남이 버린 쓰레기를 나만이라도 줍는다, 이런 식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게 되면 혼자가 두 명이 되고 세 명이 되고 다섯 명이 되고, 언젠가 세상의 물결은 바뀌게 됩니다. 

 

현재 주어진 조건은 우선 받아들이고,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해 비정규직이 없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내가 어떤 과정을 조금씩 밟아나갈까를 연구를 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남녀 사이에도 월급 차이가 있었지요? 그렇다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잖아요. 꾸준히 노력해서 지금 남녀의 월급 차이가 많이 줄었죠? 그런 것처럼 정규직, 비정규직 간에 월급 차이가 있다면 지금 당장 뜯어고칠 수 없다고 외면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를 과제로 삼고 꾸준히 연구해야 한다는 얘기지요. 

 

불평등을 당장 해소할 수는 없어도 당연히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불평등한 것이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학벌에 의한 불평등, 남녀 간의 불평등, 인종이나 나라 간의 불평등…. 비정규직과 정규직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사람 사이에도 임금의 불평등이 있지요?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일은 똑같이 하고 월급은 적게 받아도 된다는 근거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러한 불평등을 당장 해소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되겠지요."

 

2주전에 신촌에 나갈 일이 있어 오랫만에 엄청 복잡거리는 그 밤거리를 걷는데 반갑게도 이런 친구를 만났습니다. 

 

나를 일깨워주는 이 친구. 현실의 불평등만 인정하고 미래의 평등을 지향하는 노력 없이 현실에 안주한다면 세상은 진보하지 않는다는 스님말씀을 몸으로 깨워주는 친구. 

 

저는 어느 순간 '세상은 원래 불평등해'라고 되내면서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진짜 현실이 불평등하면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던 그때의 마음은 무엇이었고, 지금 자포자기하듯 받아들이고 있는 마음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선거에 관한 기사를 보다 섬뜻한 포스터를 본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6월 2일 투표하지마. 그들이 웃을 거야.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원망도 하지마. 

 

하지만 우리는 절대 그들이 웃도록 할 수 없는 6월 2일.

4대강 생명들의 울음소리에 더이상 귀막을 수 없는 6월 2일.

민주화에 흘렸던 그 피와 눈물을 내 안락함과 바꿀 수 없는 6월 2일.

여러분은 내 자식에게 자기 의사 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시대를 꼭 물려주고 싶으신가요?

우리 모두 '포기'라는 술병, 6월 2일에 원래 주인에게 꼭 돌려줍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6.2선거#법륜스님#지방선거#투표#즉문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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