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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창고인 저의 서재입니다. 저의 서재
▲ 책 창고인 저의 서재입니다. 저의 서재
ⓒ 박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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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서재 서재
▲ 저의 서재 서재
ⓒ 박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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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찾는 도서 커뮤니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시물 중의 하나가 '책장 사진'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심리는 모두 비슷한데, 자신이 책을 아끼는 만큼 다른 사람의 책꽂이에는 어떤 책이 자리잡고 있는지 굉장히 궁금해 하고 재미있어 한다.

그것은 마치 주부들이 아파트 모델 하우스 구경을 좋아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의 도서 목록에서 자신이 소장하고 읽은 책이라도 발견하면, 자신의 책을 보는 안목이 녹록치 않다고 자위하기도 하고, 좀 더 긍정적으로는 새로운 좋은 책을 발견하는 신세계를 개척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책장 사진을 올리려는 사람도 댓글로 '허세가 쩐다'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 무서워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장이나, 두툼한 양장이 즐비한 다른 사람의 책장을 보면 '허세'라고 치부하는 사람이 많으니 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은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그래서 작가나 대학교수는 책으로 둘러 쌓여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직업군이 아니면서 책을 제법 많이 소장한 사람은 책장을 보면서 뿌듯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허세 이론'에 대한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경우가 많다.

책 수집가가 무서워하는 것은 '허세'라고 치부받는 것 말고도 '돈도 많다'라는 비아냥거림이다.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주 독자층인 대학생들이 값비싼 양장본을 사거나 한꺼번에 여러 권 사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은 결단을 필요로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비싸다. 비싼  양장본이나 산더미처럼 쌓인 남의 서재를 보면 그렇게 생각이 들 만도 하다. 장서가는 아니지만 (장서가는 일반적으로 3천권 이상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이삿짐센터의 아저씨가 '최근 3년 동안 가 본 가정집 중에서 책이 가장 많다'고 말할 정도의 책을 가진 나의 경우는 어떨까?

물론 나는 책의 가장 큰 기능이 '장식'에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수긍을 하는 입장이다.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할 때 내 서재를 바라보면 어느 정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내 서재의 많은 책 중에서는 내 손에 읽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다른 식구가 라면 냄비 받침대의 용도로 사용될 확률이 높은 것이 있다. 그러니 나도 내 책을 단지 지식욕의 충족이라든지 학문적인 필요로만 이용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면 나의 경우 단지 책을 '허세'의 용도로 삼는 것일까? 결론을 말하자면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물론 내 서재에는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도 많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의 '허세'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책에는 소설을 비롯한 '읽기용'이 있는 반면 사전을  비롯한 '참고용' 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내 서재에 있는 '민족생활어 사전'이나 총 9권으로 이뤄진 국한문혼용인 '한국문화사대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참고용 책은 단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필요한 가끔의 경우를 위해서 내 서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 교수도 아니면서 책을 방안 가득히 쌓아두는 것이 '돈 자랑'이라는 주장에 대한 변명을 한다면 책을 많이 사는 것이 그렇게 사치스러운 취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남자가 집안을 말아먹는다는 대표적인 취미인 자동차, 오디오, 낚시(나는 낚시 장비가 그렇게 비쌀 수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와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이 '일반인 수준에서 책을 많이 사는' 것은 경제적인 취미생활에 분류할 수 있다.

대학생이라면 모를까, 직장인이라면 술이나 담뱃값을 조금만 절약해도 '풍족한' 독서생활을 누릴 수 있다. 결코 '돈 자랑'일 수가 없는 취미생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당장 읽지는 않더라도 미리 책을 사두거나, 한꺼번에 좋은 책을 사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작 다른 곳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책을 깊이 좋아하고 베스트셀러 위주의 독서를 한다는 것은 결국 '절판'과의 처절한 싸움으로 요약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가의  고전 소설집이 나온 지 겨우 수년 만에 절판되고, 모 인문 관련 총서는 완간도 되기 전에 먼저 출간한 목록의 일부가 절판되는 다소 놀라운 경우가 '놀라운 일이 아닌 일'이 되는 것이 우리 출판계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독서계의 다른  문제점은 각종 도서에 대한 서평이나 커뮤니티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느끼게 되는 것이 '좋은 책을 추천받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사진만 해도 그렇다. 모 사진 사이트에 사진에 대한 각종 궁금한 것을 게시판에 올리면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댓글이 수두룩 달린다. 소위 말하는 재야 고수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사진이 보편적인 취미생활로 자리 잡은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독서의 역사를 가늠한다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가장 오래된 취미생활 중의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지도해 줄 '고수'는 귀하디 귀하고 꾸준히 정기적으로 도서 관련 공신력 있고 깊이 있는 정보에 대한 게시물을 포스팅하는 '고수'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어쩐 일인지 독서나 책에 대한 고수는 온라인에 모습을 여간해서 드러내지 않는다. 어렵사리 좋은 책을 알게 되더라도 또 다른 난관을 만나게 되니 그게 바로 '절판'이다. 인문서의 경우 절판이 되는 시기가 굉장히 짧고, 장르문학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출판사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독서 시장이 좁으니 안 팔리는 책을 찍어낼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바로 이점 때문에 독서가들이 당장 읽지는 않더라도 좋은 책을 미리 사두는 행위가 정당성을 얻는다. 그렇지 못하고 절판된 뒤에야 그 책을 알게 되고 그 책을 꼭 읽고 싶은 독자들은 각종 헌책방 게시판에 '책을 애타게 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그 책을 소장한 사람의 동정심에 호소를 하든가, '가격은 상관없이 삽니다'라는 제목으로 진정한 '돈의 위력'을 동원하든가, 출판사에 직접 찾아가서 재고 유무를 내 눈으로 확인하는 대담성을 보이든가, 수많은 오프라인 서점에 일일이 전화를 해보는 '무지막지함'을 보이든가, 그도 저도 아니면 출판사에 '복간을 하든가 아니면 나한테 판권을 팔아라'라는 결투를 신청하든가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희귀본을 하나하나 수집하는 것은 묘한 스릴과 재미를 선사해 주는 하나의 게임이 될 수도 있지만 보고 싶은 책을 못 보는 절박함은 보고 싶은 애인을 못 보는 절박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런 악몽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독서가는 좋은 책을 미리 구해두는 것이다. 당장 읽지도 않을 책을 미리 사두는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좋은 책을 가까이 두면 당장은 읽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읽게 된다는 독서계의 격언이 그것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별다른 이유 없이 관심이 안가고 읽고 싶지 않은 작가나 장르가 있기 마련인데 이런 경향은 일시적일 수 있고 독서에 대한 취향은 항상 변한다고 믿는다.

독서에 대한 취향은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과 정보와 마찰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독서 취향은 변할 수 있고 어렸을 적에는 어렵게만 느껴지던 책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살아가면서 관심사가 늘어가고, 독서에 대한 내공이 쌓이면 그 책을 살 당시에는 어렵고 지겹고 단지 명성만 대단하다고 느꼈던 책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시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경제적인 여건이 된다면, 책을 둘 공간이 여유가 있다면, 좋은 책은 미리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책수집가들은 어느 정도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데 일정부분 기여를 한다고 본다. 헌책방의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책수집가에 의해서 발견되고, 그의 서재에 고이 모셔지며, 또 그 책의 가치나 내용이 굳이 학문적으로 이용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책수집가들의 책수집이 오로지 '개인적인 탐욕'이라고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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