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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일. 세 명의 환경운동가들이 지상 27m 뜨거운 콘크리트 상판 위에서 보낸 날이다.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경기도 여주군 이포보 공사현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이들은 지난 8월31일 보에서 내려와 여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2일 밤 석방됐다.  

 

이들의 농성은 끝났지만 이포보 농성은 그 기간이 길었던 만큼이나 다양한 숫자로 기록을 남겼다. 우선 7월 22일, 이날은 농성을 시작한 날이지만 농성을 끝낸 날이기도 하다. 농성자들이 철수한 8월 31일은 음력 7월 22일이었던 것. 이들이 보 위에 있는 동안 두 번의 보름이 지났고, 다음 보름은 추석이다.

 

<오마이뉴스>는 이밖에 다양한 기록을 통해 지난 41일 간의 '이포바벨탑' 농성을 돌아보고자 한다.

 

[기록 ①] 7000 : 4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기록은 '7000:5'이다. '5'는 농성장을 찾은 여당 국회의원과 정부 관련부서의 고위관계자의 수이고 '7000'여 명은 농성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현장을 지지 방문한 시민들의 수다. 정부와 여당의 방문자 수는 농성자들을 직접 만나거나 지원상황실을 방문한 인사들만 집계됐다.

 

두 숫자의 현격한 차이는 이번 농성의 결과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5'은 정부와 여당의 소통의지를, '7000' 이번 농성을 통해 모아진 4대강 사업 반대 여론을 상징한다. 정부와 여당이 '4대강 공사 중단', '국회 검증기구 구성', '정부 여론수렴기구 구성' 등 농성자들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했지만 이들이 농성을 끝내 수 있었던 것은 '7000'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농성장에는 평일에도 보통 100여 명이 지지 방문했고 주말에는 300~500여 명씩 찾아왔다. 현장을 방문한 시민들은 환경단체 회원들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학계, 노동계, 종교계, 문화계, 대학생단체를 비롯해 어느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시민들까지 다양했다. 현장을 방문한 단체와 시민들의 이름은 50여 장의 방명노트를 가득 채웠다.

 

휴가철을 맞아 피서지를 오가는 길에 가족단위로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 한의사 부부는 휴가를 떠난 길에 농성자들이 더위로 인해 탈진상태라는 보도를 접하고 직접 약을 지어 오기도 했다. 어린 학생들은 노래공연으로 농성자들을 위로했고 대학생들은 신명나는 풍물로 응원했다. 시민들은 현장을 방문해 글과 그림을 남긴 작은 현수막은 농성상황실이 차려진 장승공원의 한쪽 면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정작 농성자들이 소통하길 원한 여당의 인사가 농성장을 찾아온 것은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이정선, 신영수 의원의 방문이 유일하다. 당시 언론은 보궐선거가 끝난 직후인 7월 29일 원 총장이 농성장을 방문한 것에 대해 보궐선거 이후 국정운영의 소통을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 의중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로 여당인사의 방문은 더 이상 없었다.

 

이포보 농성을 외면한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원 총장의 방문과 같은 날 심명필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본부 본부장도 농성장을 시찰했지만 실무협의를 담당하고 있는 상황실을 방문하지 않았다. 차윤정 부본부장이 상황실을 찾았지만 상황실 활동가들과는 접촉없이 당시 현장에 있던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떠났다. 그리고 이후로 한 달여간 농성이 지속됐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기록 ②] 161과 1974

 

농성자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점거농성'이라 하지 말고 '현장액션'이라고 보도해 달라고 기자에게 줄기차게 요구했다. '4대강 사업 중단, 유쾌한 현장액션'이 그들의 모토였고 그들에게 농성은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알리는 하나의 캠페인이었다. 농성자들은 자신들의 몸을 대형 보에 갔다대고 4대강 공사가 보가 아닌 댐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농성자들은 어두운 새벽 보 위로 올라가기 전 트위터(사용자끼리 단문 메시지를 주고 받는 인터넷 서비스) 계정을 개설했다. 농성자 가운데 한 명인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개설한 이 트위터(@yumdolsoi) 계정은 농성기간 동안 농성장의 소식과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농성자들은 트위터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가지고 올라갔지만 이를 충전하려고 준비했던 태양열 충전기가 고장났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이들이 가지고 올라간 모든 통신장비의 충전이 불가능했다.

 

결국 외부와 교신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 이들에게 무전기가 지급됐고 이를 통해 한동안 트위터에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공사 측은 무전기를 가지고 트위터를 한다는 이유로 무전기 베터리 공급을 거부했다.

 

다시 한 번 밖으로 말을 전할 수 없게 된 농성자들은 과거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에 버금가는 기치를 발휘했다. 자가발전 휴대전등을 개조해 휴대폰을 충전시킨 것. 스마트폰을 충전 시킬 용량은 안됐지만 1시간 정도 손잡이를 돌려 충전을 시키면 10분 정도 통화가 가능했다. 그리고 염 처장의 트위터에 다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염 처장과 농성상황실은 41일 동안 이 트위터 계정을 통해 161개의 멘션(단문 메시지)를 남겼고 그 메시지를 받는 팔로워 숫자는 1974명으로 늘어났다.

 

"아침부터 찢어진 대형현수막을 끌어올려서 꿰맸습니다. 한밤의 비바람에 파손이 컸습니다만 강을 생각하며 말끔히 고쳤습니다. 닳고 헤진 현수막을 보며 시간도 저들의 편인가 의심하다가 새로운 운동의 동력이겠거니 하며 힘을 냅니다. 비소식이 있던데 감기 조심하십시오." - 8월 24일 농성 34일째 염형철 처장의 트위터(@yumdolsoi)

 

[기록 ③] 5~7회

 

5~7. 공중파 방송 3사가 41일 동안 이포보 농성 소식을 전한 횟수다. 다른 뉴스에 단지 언급만 된 횟수는 제외했다. 

 

방송 3사는 7월 22일 일제히 이포보와 경남 함안보에서 진행된 환경운동가들의 4대강 공사현장 점거 농성을 보도했다.

 

농성 첫날 농성자들의 소식을 가장 많이 전달한 것은 SBS였다. SBS는 22일 하루 동안 3차례 보도를 통해 농성돌입을 알렸고, MBC가 2회, KBS가 1회 방송으로 소식을 전했다. MBC와 KBS는 단신뉴스로 처리했고, SBS만 주요뉴스로 한 꼭지가 편성했다.

 

그러나 41일 동안 계속된 농성에 대한 후속보도는 방송3사 모두 많지 않았다. MBC는 찬성측 주민과 환경단체의 충돌을 한 차례 보도했고, SBS는 법원이 농성자들에게 퇴거를 명령하고 강제이행금을 부과한 소식을 전했다.

 

KBS는 네 차례 후속보도가 있었는데, 두 번은 다른 방송사와 마찬가지로 농성장 인근에서 벌어진 4대강 사업 찬반집회와 법원의 판결에 대한 내용이었다. 다른 하나는 4대강 사업의 핵심인 대형 보 건설에 대한 논란을 농성장 주변에서 취재한 것이었다. 이포보를 '댐'이라고 주장하는 환경단체와 이들의 활동에 불만을 가진 지역 주민들의 모습을 담았다. 다른 하나는 농성상황실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무단으로 매립해 벌금을 받은 소식이었다.

 

박창재 농성 상황실장은 이에 대해 "농성이 41일이라는 장기간 진행됐지만 방송보도가 없다시피 할 정도로 부족했다"며 "방송이 된 내용도 농성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달이 안됐고 주민들과 충돌하는 것만 보도됐다"고 불만을 토했다.

 

이포보 농성을 보도하는 것에 인색했던 것은 방송 3사만은 아니었다. 41일 동안 다양한 사건이 벌어졌지만 이포보 농성과 관련해 언론에 가장 많이 보도된 것은 '음식물쓰레기 무단 매립' 사건이었다. 환경단체로서 변명에 여지가 없는 실책이었고 농성과 관련한 소식을 전혀 전하지 않던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이 사건을 기사화했다. 그리고 다른 기사는 없었다.

 

[기록 ④] 4곳 6번

 

 

농성이 길었던 만큼 이를 옆에서 지원한 상황실의 살림은 상당했다. 매일 상황실을 방문하는 시민들을 위한 물품부터 천막, 발전기, 테이블 등 짐이 한 트럭이었다.

 

상황실의 활동가들은 이런 짐을 들고 4곳의 숙소를 돌며 6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 농성 초반에는 상황실에서 24시간 상주할 수 있어 이동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것은 주민들이 북과 징을 치며 몰려오기 전까지만 가능했다.

 

환경단체는 공사현장 인근 공원에 집회신고를 내고 상황실을 차렸지만 주민들은 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야간 시간을 노렸다. 주민들은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밤샘 집회를 하겠다며 공원에 집회신고를 냈고, 이로 인해 상황실 활동가들은 매일 밤 한 짐을 지고 이사를 다녀야 했다.

 

주민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환경단체의 숙소까지 찾아와 "외지인은 물러가라"며 큰 소리를 냈다. 결국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마찰은 농성기간 내내 계속됐다. 그 충돌은 몇 번의 폭력사건으로 번지기도 했다.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은 주민이 휘두른 각목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현장을 지지 방문한 시민의 차량 유리가 파손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환경단체의 집회가 있을 때마다 맞불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 공무원인 면장이 각 마을 이장들을 통해 주민들을 동원한 정황이 포착돼 관제데모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기록 ⑤] 8월 10일

 

 

농성 돌입 21일째. 8월 10일은 농성자 가운데 한 명인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의 생일이었다.

 

이날 농성장을 찾은 시민들은 멀리 떨어진 박 위원장의 생일을 축하하며 노래를 불렀고 해가 진 후 상황실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는 간단한 생일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박 위원장의 부인 이재현씨가 함께 있었다.

 

이씨는 종종 농성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상황실을 찾아 농성장을 볼 수 있게 설치해 놓은 망원경을 한참 들여다보곤 했다. 남편이 농성하는 것에 대해 심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특별한 말이 없었다. 그녀는 "여기 밖에는 (남편을) 볼 수 있는 곳이 없으니까…"라며 말을 흘렸다.

 

41일간 농성을 하며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아픔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염형철 처장의 부인과 두 딸은 농성장을 방문 할 때마다 눈물을 쏟았다. 두 딸은 멀리 떨어진 이포보를 향해 "아빠 사랑해"라고 외쳤지만 염 처장은 대답은 잘 들리지 않았다. 두 팔을 머리위로 올려 하트를 만든 모습이 망원경으로 흐릿하게 보일뿐이었다.

 

"아내와 딸들이 또 찾아왔습니다. "아빠 사랑해"를 외치고 한없이 손을 흔드는 모습에 코끝이 찡합니다. 떨어져있으니 더 그립고 다정해집니다. 하지만 4대강생명들을 위해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난다면 시간이 흘러 아이들에게 더 부끄럽고 미안할 것 같습니다." - 8월 4일 농성 14일째 염형철 처장의 트위터(@yumdolsoi)

 

세 명의 농성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장동빈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장 국장은 남쪽 바닷가에 사는 부모님께도 농성을 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보에 올랐다.

 

[기록 ⑥] 9000만원

 

지난달 20일 여주지방법원은 농성자들에 대해 시공사 측에서 낸 공사장퇴거 및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퇴거하지 않을 경우 1인당 하루에 300만 원씩 공사업체에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농성자들이 공사장퇴거를 이행한 것은 31일. 그동안 이들에게 쌓인 강제이행금은 1명 당 3000만 원씩 총 9000만 원이다.

 

농성자들은 법원에 판결에 대해 이의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문제는 환경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농성자들이 강제 이행금을 지불할 만한 재산이 없다는 것이다. 농성자 가운데 장동빈 국장은 월세 방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두 사람도 자가가 아닌 전세로 살고 있고 부양가족까지 있어 여유가 없다.

 

현재 이들의 농성을 지지하며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보내준 후원금 총 6300여만 원 가운데 3500만 원 가량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단체 한 관계자는 "이의신청이 수용되지 않으면 지불각서를 작성하고 이행금 납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4대강#이포보#이명박#4대강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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