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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 25일은 성탄절이다. '크리스마스'라고도 한다. 어린 시절 성탄절만 오면 신이 났었다. 교회에 가면 과자와 선물이 푸짐하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산동네에 있어서 부자 교회에서 선물 보따리를 들고 찾아 오기도 했다. 거리마다 흥겨운 캐럴이 울려 퍼지고 교회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란 노래를 부르며 잔치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12월 25일. 하지만 작년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무거운 감정이 올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공장점거, 오래된 이야기

구정문 촛불 1인 시위 정규직 복직을 주장하며 촛불 시위를 하고 있다.
▲ 구정문 촛불 1인 시위 정규직 복직을 주장하며 촛불 시위를 하고 있다.
ⓒ 노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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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초 현대차 울산공장 하청업체에 들어가 일한 지 10여 년 다 되어 가던 지난 2010년 3월 중순 말. 나는 말 그대로 정리해고 당했다. 하루 아침에 직장 잃은 가장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너무 억울했지만 어느 곳에도 하소연 못해 보고 물러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노동자 신세였다. 6개월 고용보험 타먹으며 다른 직장 알아봤지만 허사였다. 나이 많다고 안 써주고, 가진 기술 없다고 써주지 않았다. 그러다 한가닥 희망이 생기는 정보를 접했다.

지난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차 사내 하청 불법파견 판결이 났다는 것이다. 나는 기대에 부풀었다. '대법원 판결까지 났으니까 현대차 사쪽도 어쩔수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겠지'하는 단순한 생각만으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결합했다. 하루하루 날품을 팔며 저녁엔 야간조 출근 시간에 맞춰 촛불을 드는 시위를 계속했다. 그렇게 해서 12월 22일 자로 대법원이 불법파견 판결 내린 지 5개월이 지났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지난 2004년 만들어진 후 6년 동안 명맥만 유지해왔다. 600여 명의 노조원이 있었는데 7월 22일 대법원 불법파견 판결 후 2개월 사이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현대차 울산공장에는 80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으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6000여 명에 이른다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 11월 4일 194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서류를 모아 금속노조 변호인단을 통해 집단 소송을 냈다. 불법파견에 대한 정규직화와 체불임금 요구가 주요 내용이다. 그렇게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시작됐다. 비정규직 노조는 법정 소송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사측과 단체교섭을 시도했다. 하지만 사쪽은 교섭을 거부하고 현대차 울산공장 근교에 있는 시트공장의 한 하청업체를 폐업시켜 버렸다. 그 업체는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가 많았다.

결국 11월 15일 비정규직 노조는 1공장 점거 파업에 돌입했다. 바로 시트공장 하청업체를 폐업시킨 날이었다. 그리고 1000여명의 노조원과 함께 25일간 1공장 점거 파업을 계속했다. 요구사항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에 현대차가 나서라는 것이었다. 결국 교섭한다는 약속을 받고 25일 만인 12월 9일 오후 3시 30분경 점거를 풀고 내려왔다.

크리스마스 전 출석요구서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

 경찰에서 출석요구서를 받은 노조원들이 모였다.
 경찰에서 출석요구서를 받은 노조원들이 모였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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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사측, 금속노조, 현자노조, 현자 비정규직 노조가 함께하는 협상 자리가 마련됐다. 12월 21일 3차 협상 자리를 가졌지만 다음 교섭 일정도 잡지 않은 채 지지부진하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경찰 출석요구서 받은 조합원은 오늘 오후 7시에 민투위 사무실로 모여 주세요."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장 명의로 날라온 문자다. 점거 농성중이던 지난 11월 17일 현대차는 비정규직 노조 이상수 지회장 등 노조간부와 조합원 45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울산동부결찰서에 고발했다. 또 울산지법에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고 밝혔다. 그 건과 관련해 경찰에서 노동자들에게 나오라고 한 것이다. 12월 23일 목요일 저녁 7시에 그 모임에 가보았다. 50여 명이 모였다. 어떤 노동자는 1차로, 어떤 노동자는 2차, 3차까지 출석요구서를 받았다고 했다.

"앞으로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출석요구서를 받게 될 것입니다."

1000여 명이 1공장 점거농성에 참여했으니까 1000여 명 모두에게 출석요구서가 날라가는 건가? 현대차 사측은 왜 그리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를 불편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착찹한 심정으로 성탄절 이틀 전을 그렇게 보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났는데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모두 기뻐하는 성탄절인데 왜 나는 기쁘지 아니 할까?
▲ 기쁘다 구주 오셨네! 모두 기뻐하는 성탄절인데 왜 나는 기쁘지 아니 할까?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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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은 저녁에 촛불시위 가지 말고 우리 교회 와. 딸이 재롱잔치하는데 와서 봐야지."

초등 3학년 아들과 중 2 딸을 좀 정서적으로 키울까 해서 교회에 보낸다. 24일 오후 7시 30분에 그동안 연습한 재롱잔치를 한다고 한다. 아직 불법파견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나는 정규직으로 복직되지 않았다. 그동안 계속하던 현대자동차 구 정문 앞 1인 촛불시위를 할까 했는데 딸의 알림에 방향을 틀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딸과 아들이 교회에서 발표회를 한다는데 아니 가볼 수가 있나. 그곳엔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 났다. 어디 여기뿐이랴. 전국 교회가 다 그렇게 야단일 게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번화가 곳곳엔 젊은 남녀로 넘쳐날 것이다. 1시간 30분 동안 계속된 성탄전야 교회 발표회. 사람들은 즐거워 했다.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했고 잔치는 성대히 열렸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성탄전야일 뿐이었다. 불법파견이 인정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그리고 나 또한 정규직으로 복직되면 아마도 그 때에 가서야 즐거워질 것이다. 25일은 성탄절이다. 교회는 세계를 구원하러 예수님이 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기쁘다고 한다. 비정규직 정리해고자인 내겐 기독교인이 말하는 그 기쁨의 소리가 왜 그리 무겁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불법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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