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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택시를 대여해서 시작한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 탐방은 뜨거운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니카라과는 겨울철 건기가 여행하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하지만 열대의 태양볕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한낮의 땡볕 아래 서 있으면, 그야말로 살갗이 지글지글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불평은 없다. 우리가 떠나온 시애틀은 지금도 두꺼운 회색 구름에 덮여있을 터이니 한겨울에 무한정 햇볕을 받으며 살갗을 태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호강이지 싶다.

마나과가 수도임을 '혁명광장'에서 깨닫다

마나과 호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망고 가로수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혁명광장(Plaza de la Revolucion)을 만날 수 있다. 이 광장을 둘러싸고 대성당과 국립박물관, 그리고 대통령 관저 등을 두루 볼 수 있으니, 만일 니카라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둘러볼 가치가 있는 곳이라 하겠다.

마나과는 한때 중남미에서 매우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 중심에 바로 산티아고 대성당(Catedral de Santiago)이 있었다. 그러나 1972년에 닥친 대지진으로 인해 만여 명의 마나과 시민이 희생되었고, 대부분 시가지가 붕괴되었단다. 그 후, 복구 공사가 도심 곳곳에서 이루어졌다만, 그 잔해는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하긴 그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도시 미화를 위해 정신을 쏟을 여유가 있었을까 싶다.

산티아고 대성당 마나과 대지진 후 제대로 복구되지 않은 상태다
▲ 산티아고 대성당 마나과 대지진 후 제대로 복구되지 않은 상태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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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당시, 이 성당도 엄청나게 파손되어 그 후로 사용을 못하고 있다. 거의 40년 가까이 별 복원 노력도 없었는지, 안전을 이유로 여전히 일반인은 성당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단다. 겉으로만 봤지만 성당의 규모와 섬세함이 예전의 화려함을 짐작케 한다.

성당 오른쪽으로 마나과 국립 박물관이자 문화 예술학교인 The Placio Nacional De La Cultura가 있다.

The Placio Nacional De La Cultura 니카라과 국립박물관
▲ The Placio Nacional De La Cultura 니카라과 국립박물관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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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건물 양쪽에 손을 흔들고 있는 사진 속 주인공은 니카라과 현직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Daniel Ortega)다. 공공 건물 앞에 버젓이 놓인 현 대통령의 대형 홍보물이 보기에 영 어색하다. 이 핑크색 배경의 오르테가 홍보사진은 마나과 시내 곳곳에서 자주 보아왔다.

사실 꼭 국립 박물관을 봐야겠다기보다는 잠시나마 더위를 피하고 싶은 생각이 먼저였다. 무작정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서 소정의 입장료를 내고 두리번거리고 있자, 한 여직원이 영어안내를 받겠냐고 물어본다. 그 직원은 박물관 방 하나하나를 우리에게 안내하고 전시품들을 2시간에 가깝게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어찌나 더웠는지, 연이어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말이다. 우리가 말만 안 했으면 온 건물 안을 속속들이 안내해줄 기세다. 딱 보아도, 니카라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보인다. 너무 감사하고 미안해서 팁을 주고 싶었는데 한사코 받질 않았다. 덕분에 니카라과의 문화와 자연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니카라과 국립박물관 영어를 할 수 있는 한 직원이 열성적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 니카라과 국립박물관 영어를 할 수 있는 한 직원이 열성적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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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동안 징하게 박물관을 보고나니, 내내 우리를 기다렸던 택시 운전기사가 맘에 걸렸다. 이젠 이 사람을 보내야 하나 싶었는데, 그는 "루벤 다리오!"를 외치며 우리를 또 광장 한 쪽으로 이끌고 간다.

그와 함께 간 곳은 바로 니카라과뿐만 아니라 중남미 전역에서 존경받고 있는 문학가, 루벤 다리오(Ruben Dario)의 기념비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꽤 칭송받는 인물인가보다. 마나과 국제공항에서 두 개의 커다란 초상화를 볼 수 있었는데, 한 쪽엔 산디노(Augusto Cesar Sandio) 다른 한 쪽엔 루벤 다리오가 있었으니 말이다. 

Ruben Dario 기념비 니카라과에서 가장 존경받는 시인, 문학가
▲ Ruben Dario 기념비 니카라과에서 가장 존경받는 시인, 문학가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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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의 민중 영웅 산디노를 만나다!

해질 무렵, 호세 아저씨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La Laguna de Tiscapa에 가보기로 했다. 이곳은 니카라과의 영웅, 산디노의 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그동안 마나과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저 카우보이 모자를 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까? 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궁금증이 풀렸다.

인근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라는 Crown Hotel 뒤편으로, 마치 남산타워를 오르듯 올라가다보면 언덕 꼭대기에 외롭게 서있는 산디노 기념비를 볼 수 있다.

Sandino  산디노 장군. 마나과의 상징물처럼 느껴진다.
▲ Sandino 산디노 장군. 마나과의 상징물처럼 느껴진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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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마나과 시내의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저녁 때야 도착했더니 이미 많은 연인들이 애정행각 중이었다. 아마 우리의 남산타워처럼 이곳도 마나과의 인기있는 데이트 장소 중 하나인 것 같다.

마나과 시내 야경 La Laguna de Tiscapa에서 내려다본 야경이다.
▲ 마나과 시내 야경 La Laguna de Tiscapa에서 내려다본 야경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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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디노 기념비를 마주한 쪽에는 1972년 대지진으로 붕괴되었던 마나과 시가지가 보였다. 사진에서 보이는 높다란 건물은 그때 당시 유일하게 붕괴되지 않은 빌딩이란다. 산디노 기념비와 그의 형상을 하고 있는 네온 빛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꼴이다.

니카라과의 홍길동, 산디노!

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외롭게 서있는 남자는 누구일까? 과연 누구기에 마나과 곳곳에서 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을까?

니카라과는 중남미 대부분 나라가 그렇듯, 제국주의의 끊임없는 갈취와 내란으로 고생이 많은 나라였다. 16세기 초, 콜롬버스의 중남미 대륙 발견 후, 니카라과는 약 300여 년간 스페인 식민지로 착취당해왔다.

1821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후, 이젠 형편이 좀 나아지려나 했는데, 이번에는 미국인들의 욕심에 시달림을 받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1855년 윌리엄 워커(William Walker)라는 자가 난데없이 '니카라과 대통령'을 사칭하게 된다. 그의 목적은 미국 남부주들을 상대로 니카라과를 '노예 수출 기지'로 만들 작정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니카라과 사람들이 워커 일당을 일망타진함으로써 워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여기서 기가 막히는 건 이 깡패같은 미국인이 자칭 니카라과 대통령 행세를 하며 분탕질하고 다닐 때, 미국은 그를 니카라과의 공식 대통령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여행 중, 한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니카라과 사람들과 미군의 충돌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행 중, 한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니카라과 사람들과 미군의 충돌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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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심 양면으로 니카라과의 보수파를 도우며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던 미국은 1912년부터 제국주의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국민을 보호하고 평화를 지킨다는 핑계로 보수파와 자유파의 분열이 한창인 니카라과에 군대를 파견하여 점령을 시작한 것이다.

민중의 영웅 산디노 그의 고독한 사진과 친필 사인이다.
▲ 민중의 영웅 산디노 그의 고독한 사진과 친필 사인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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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혼란의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산디노는  미국과 그 앞잡이인 보수파에 대한 반감을 점차 키워 갔다. 산디노는 드디어 자유파의 장군이 되어 니카라과를 점령중인 미군을 상대로 최초의 게릴라식 무장투쟁을 시작한다.

소수의 무리로 거대 미군을 상대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는 꼴이었지만, 니카라과의 산악 지대와 지리 조건을 잘 이용한 산디노가 이끄는 군대는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노력과 미국에 닥친 대공황으로 미군은 1933년 니카라과로부터 퇴각하고 만다. 조국으로부터 외국 군대를 몰아낸 기쁨도 잠시, 그 다음해에 산디노는 불행히도 미국의 끄나풀, 소모사 일당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다.

산디노 기념거리 굴다리 같은 곳 아래, 산디노의 행적이 연대별로 기록되어 있었다.
▲ 산디노 기념거리 굴다리 같은 곳 아래, 산디노의 행적이 연대별로 기록되어 있었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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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디노는 잔인한 면도 있었고 신비주의와 영웅주의에 빠져 있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점령 지역에서 갈 곳없는 농노들을 위한 농장을 만들고 이를 인근 땅 부자들에게 지원하게끔 하였다고 하니 군사적, 영웅적 행동만으로만 그를 평가할 건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서자로 태어났다는 점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거대한 적을 무찔렀다는 점에서 그가 '니카라과판' 홍길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에나스 노체스, 마나과!

"우리, 마나과에 다녀왔다!" 라고 자랑질할 수 있을 만큼 하루 종일 알 만한 곳은 다 돌아다녔는데도, 어째 우리같은 여행객은 눈 씻고 찾아보려야 볼 수 없었다. 분명히 공항에서 입국 수속할 당시엔 여러 무리의 배낭족을 보았건만,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마나과가 그다지 매력적인 곳이 아니란 뜻일까? 물론 눈에 혹할 만한 볼거리나 화려함을 갖춘 도시도 아니요, 그렇다고 여행객 편의를 위한 친절한 안내시설을 기대할 만한 곳도 아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니카라과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노라고 말하고 싶다.

찻길에서 "아구아~아구아~"를 외치며 물을 팔던 젊은 총각, 잠시 신호 대기중에 난데없이 나타나 차창을 닦아댄 후 돈을 요구하는 아이들, 횡단보도조차 없는 대로를 겁도 없이 잘도 걷는 아낙네, 그리고 그 사이를 귀신같이 운전하는 택시 드라이버들.

뿌연 매연이 풍기는 대로를 지나 좁은 길로 들어가면, 곧 극한 가난의 빈민촌을 만날 수도 있고, 혹은 쇠창살과 유리조각으로 두른 높은 담벼락의 주택가를 만날 수도 있다.

마나과는 니카라과의 중심에 서서 혼란스런 역사를 대변하고 있었고, 대견하게도 두 차례의 대지진 속에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만일, 니카라과 여행을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주저없이 단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마나과의 외로운 산디노 기념비에 앉아 그의 영웅담을 들어보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니카라과를 느끼고 이해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라고 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1년 1월 2주간의 니카라과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하연주, 박인권 부부가 공동 작성하였습니다.



#산디노#마나과#니카라과 여행#중남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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