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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의 선거 분위기가 뜨겁다. 6·2지방선거 후 1년여 만에 다시 치르는 동구청장 재선거가 달아오른 배경에는 후보 4인의 역학관계가 숨어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직계인 임명숙 한나라당 후보와 야 권 단일후보인 김종훈 민주노동당 후보가 예측할 수 없는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각각 두 후보를 위협할 수 있는 두 명의 후보가 이들을 쫓고 있다.

 

지난 2002년부터 울산 동구청장을 지냈고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한 이갑용 후보는 야권 단일화를 비난하면서 김종훈 후보를, 정몽준 의원 직계로 불리며 임명숙 후보와 경쟁 관계인 천기옥 후보는 임 후보를 견제하며 완주 의사를 밝히고 있다.

 

중앙당 차원의 지원 열기도 뜨겁다. 지난 14일 선거운동이 시작된 후 첫 휴일인 17일 야당 주요 인사들이 대거 몰려 김종훈 후보 지원 유세를 벌였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와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자당 후보 지원을,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와 이재정 국민참여당 전 대표, 임종석 민주당 전 의원은 야권연대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울산 동구 지역을 순회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에 질세라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도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울산 동구에서 임명숙 후보 지원 유세를 펼쳤고,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과 남경필 의원도 지원에 나서는 등 총력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지역 민심은 과연 어떨까?

 

주민 주민들 "현대중공업 정규직에 상대적 박탈감"

 

고등학생 자녀를 둔 주민 황아무개(45)씨는 최근 학교 행정실에서 보내온 문자 메시지를 보고 힘이 빠졌다. "현대중공업 자녀는 회사에서 학비를 내기 때문에 서류만 가져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서민들은 3개월마다 돌아오는 50만 원가량의 자녀 학비가 만만찮은데, 현대중공업 자녀는 혜택 보는 것을 보면 같은 동구 주민으로서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고 했다. 1000만 원 시대를 맞은 대학등록금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 주부들에 따르면, 매년 연말 현대중공업에서 성과급이 나올 때면 현대중공업 가족이 아닌 주부들이 맥이 풀린다고 한다. 한 주부는 "현대중공업 직원 부인이 모임에 와서 '받은 돈을 다 어디에 쓰나'하고 농담처럼 하는 말에 다른 사람들은 부러움 반 질시 반 복잡한 심정이 든다"고 했다.

 

이런 사례들은 울산 동구가 갖는 특이성에 기인한다. 동구는 인구 18만여 명 가운데 현대중공업 정규직 2만5000여 명, 사내하청노동자 2만여 명과 현대미포조선 정규직 3800여 명, 사내하청은 5600명 등 현대중공업 그룹 관련 인구가 많다. 여기다 다른 회사 근무자나 자영업자들이 혼재해 있다. 문제는 현대중공업 정규직들의 높은 임금 수준과 성과급, 각종 혜택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지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선두에 섰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이후 임금과 자녀 학자금 혜택 등 처우가 급격히 개선됐다. 힘들고 열악한 환경의 조선노동자를 대변하던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이제 지역 주민들의 부러움과 함께 질시 대상이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특히 지난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수천 명의 하청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임금이 삭감되면서 이같은 분위기가 더 심화되는 느낌이다.  

 

울산 동구 방어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박아무개(48)씨는 "동구가 전국에서 소득 수준이 가장 높다고 언론이 난리인데 실상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며 "정규직-비정규직 근로자들 사이나 현대중공업 직원과 일반 주민 사이에 소득 격차가 심해 알게 모르게 반목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동구청장이 모든 것을 해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주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고, 서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국회의원과 구청장 선거 결과 달라... 울산 동구의 '이분화' 현상

 

정치적으로 보면 울산 동구는 지난 20여 년간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의 아성이었다. 이 지역 주력 기업인 현대중공업의 실질적인 사주인 그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이곳에서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17대까지, 2008년 18대 총선 때 자의 반 타의 반 서울 동작을로 지역구를 옮기기 전까지 내리 5선을 했다.

 

정몽준 의원은 통일국민당·국민통합21·무소속 등으로 동구 지역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진보진영 후보를 월등히 앞서 6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번 선거에 나선 한나라당 임명숙 후보와 무소속 천기옥 후보는 정 의원과 정치적 부침을 같이했다.

 

하지만 구청장 선거는 조금 달랐다. 1998년 초대 민선 동구청장에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이, 이어 이영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당선됐다. 2002년 선거에서는 이번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갑용 후보 등 진보진영 후보들이 당선되면서 총선과 구청장 선거 결과가 달라졌다.

 

이같은 '이분화'는 울산 동구 지역이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성향과 지역 주민과 현대중공업과의 관계, 정몽준 의원의 역량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하지만 점점 늘어난 하청노동자 비율, 현대중공업 직원과 서민층 주민들 간의 소득 불균형 등은 이 지역 민심이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민주당 울산시당(위원장 임동호)이 울산리서치연구소(소장 김경옥)에 의뢰해 동구 지역 저소득층을 상대로 실시한 '동구지역 복지수요 실태조사' 결과를 주목할 만하다.

 

조사 결과 동구 주민들은 현재 가장 어려운 생활상 문제로 '저소득·실업 등 경제적 문제'(48.9%)를 꼽았고, '자녀 부양 및 교육문제'(22.3%) 등 서민 생활과 직접 연관된 문제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또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현재 생활수준이 '나빠졌다'(80.5%)며, 1년 후 생활수준도 '나빠질 것'(78.6%)이라고 예상하고, 내년도 복지서비스는 '줄어들 것'(88.7%)으로 답하는 등 어려움을 호소했다.

 

여러가지를 종합하면 이번 재선거 결과는 동구지역 주민들의 2011년 민심이 어떠한지 나타내는 주요한 바로미터가 될 듯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년 총선과 대선 등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울산 동구청장 재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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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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