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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서로 구겨져 맞닿아진 엉덩이 사이에서도 피어난다

 

아론과 나는 로컬 버스에 몸이 구겨진 채로 인사를 텄다. 늘 그렇듯, 버스는 사람들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었다. 현지에서 나와 같은 상황의 여행 중인 외국인을 보면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다반사다. 마음으로 전해지는 친절한 현지인들과는 또 다른 느낌인 것이다. 버스에 있는 또 다른 '외국인'을 보니 반가웠다. 혼자 비스켓을 먹기가 겸연쩍어, 점심으로 때우던 비스켓을 사람들에게 권하고 옆에 앉은 그에게도 내밀었으나 그는 괜찮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아론.

 


두 달 동안 케냐의 어느 한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끝낸 영국인 아론은 잔지바르로 혼자 여행 오는 길이라 했다. 하루의 가장 큰 난관인 '오늘 어디서 지낼 것인가'라는 내 물음에 그는 이미 친구에게 부탁해서 친구가 예약을 해놓았을 것이라며 준비된 여행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리고 이내 우리는 몰려드는 엉덩이들로 인해 대화를 중단해야 했다.

 

잔지바르의 스톤타운에서 눙귀(Nungwi)로 가는 길이었다. 눙귀는 잔지바르 섬, 북쪽의 해안에 위치한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안마을이다.

 


소형트럭을 개조해 대중교통으로 재탄생한 그 '버스'는 운전자 옆자리가 명당이었다(소형 트럭을 생각해보시라. 운전석 옆 좌석은 더 많이 태울래야 태울 수 없다). 좌석에 삥 둘러앉아 자리를 잡고 나면 더는 못 탈 줄 알았던 내 사고의 폭은 얼마나 좁은가.


난 너무나 시스템화 되어있는 룰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였다. 다들 알아서 자리를 잡고, 엉덩이를 붙일 구석을 찾는다. 새로 타는 사람들로 인해 급기야는 자리가 밀리고 밀려 서로 눌리고 눌리다 못해, 엉덩이 한쪽이 겹치는 상황까지도 전개되어 '끄응'하며 불편한 티는 내지만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나마 참고 가는 것이, 길바닥에서 하염없이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할 사람의 시간과 공을 같이 맞드는 것임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1시간 30여분이 지나 하나 둘, 자기의 정착역을 찾아 내리고, 드디어 눙귀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아론과는 '여기서 지내다가 또 볼 수 있겠지'라는 말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난 배낭을 메고 나만의 '합리적인 가격을 위한 숙소'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한 집을 다니고, 두 집을 다니고, 세 집째. 이런, 예상보다 너무 비쌌다. 내가 여기 머물기 위함은 3일 이상인데, 예상비용을 너무 초과했다. 스톤타운에서 들은 바로는 눙귀가 좀 저렴하다 들었는데, 그것 또한 시간이 지난 정보였던 모양이었다.


더구나, 더워 죽겠는데 누군가가 내 옆에 붙어 걸으며 자기가 숙소 찾는 걸 도와주겠다며 꽤 오래 내 옆에서 같이 걷는다. 편안하지 않은 느낌과 더위, 그리고 내 등에 붙은 배낭이 시간과 비례해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도착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이럴 줄 알았으면 스톤타운에서 함께 있던, 친구가 함께 가자던 해변으로 갈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저 쪽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사라 sarah~!"

 

반갑게도 아론이었다.


"아론! 우와~ 너, 어디서 있는 거야?"
"응, 난 저 방갈로 뒤쪽에 있어. 너 혹시 방 안 구했으면 나랑 쉐어(share)할래? 침대 두 개더라."


아론은 나에게 '남쪽에서 나타난 귀인'같은 얘길 했다. 그러나 나름의 내공이 있어, 그냥 그렇게 '반값씩만 내자'라는 아론의 말로 그냥 들어가기엔 난관이 있을 것임은 뻔했다. 아론이 말한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있는데, 어찌 알았는지 밖에 주인이 찾아 온 기척이 났다.

 

"아론, 내가 거래할게. 그리고 이 방, 2만 실링에 얘기했다고 했지? 깎아는 보겠지만 멕시멈 3만실링으로 각각 만 오천실링까지 나눠내는 거 어때? 우리끼리 말은 맞춰놓고 나가야 하니까. 괜찮아?"

 


그렇게 우리는 미리 합의를 하고, 나는 밖으로 나갔다. 이 많은 방갈로의 매니저인지, 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풍채가 좋은 아저씨였다. 예상대로 그는 말문을 뗐다.

 

"혼자인 줄 알고 받은 건데, 이 곳에 둘이 묵을 거면 4만 실링 줘야해요."
"아저씨 저, 방 얻으러 몇 집이나 다녔는데 2만 실링에 저 혼자 쓸 수 있는 곳 있었어요. 그나마 친구랑 같이 있으려고 이리로 온 건데, 너무 비싸네요. 그럼 그냥 3만 실링에 해요."

 

물론 이만실링에 묵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연민을 불러일으켜 이만 오천 실링에 깎은 게 최저 가격이었다.

 

"안 돼요 안 돼. 우리는 조식도 나가는데…. 그럼 조식 없이 3만 실링에 할라우?"
"어머, 아저씨 왜 그러세요. 먹는 것 가지고. 조식 포함해서 3만 실링에 해요. 저 나중에 스노쿨링 투어 할 때, 아저씨한테 할 테니까. 아, 물론 싸게 해주시면요."

 

거래를 할 때는, 여자이기에, 그들보다 동안인 동양인인 것이 이득이 될 때가 참 많다. 풍채 좋은 그 아저씨는 그 쯤에서 거래를 매듭지어 주었고 스노쿨링 투어도 싸게 해주었다. 나중에 스노쿨링 투어를 나가서는 스노쿨링을 하기엔 바다 속이 별로 미려하지 못하다고 하자, 배를 다른 곳까지 가서 다시 대 주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숙소의 가격 거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됨과 동시에, 그렇게 아론과의 인연은 룸메이트가 되었다. 하고자 하는 것이 달랐던 룸메이트. 아론과 나는 아침 먹고 헤어져서 저녁 먹을 때나 만났다.

 

 

타인과의 생각의 나눔, 그것의 연속이 바로 여행


함께 쉐어(share)를 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이다. 저녁식사 때는 그 신선한 해산물이 넘치는 눙귀 비치에서 온갖 살아있는 생물을 배제한 야채와 치즈만 담뿍 올라간 피자를 맛보고, 그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

 

인간이 우유를 마시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소가 빠르게 죽음을 향해 갈 수 있단 생각은 전에는 결코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론과의 식사때의 대화가 그런 의문을 품게 했고, 사람들의 그 다른 시각에 대해 놀라움을 갖게 했다.

 


그리고 문화의 차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의 공유.


나: "한국에서 동거란, 아직까지는 그렇게 드러내놓고 '우리, 동거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의 주제는 아닌 것 같은데?"
아론: (사뭇 놀라며, 정말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럼 결혼까지 하기 전, 그 상대방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지?"

 

 

여행은 내가 가는 그 곳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하지만, 이 지구엔 많은 사람이 부대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우유를 매일 마시지만, 내가 그 우유를 마심으로써 소가 죽음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상대방을 알기 위해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라고 다시 생각해 볼 여지를 갖게 하는 만남, 생각의 나눔(sharing).

 

그나저나, 그는 함께 자원봉사를 했던 한 아가씨를 짝사랑 하고 있다. 고백을 했다고는 하는데, 어찌되었냐는 내 질문에 그녀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던 그의 대답은 이랬다.


"응. 그 애가 나보다 한 십 오 센티는 커서 말이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총6개월의 여정을 바탕으로 기고합니다.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눙귀 비치#잔지바르 눙귀#탄자니아#스노쿨링 #아프리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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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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