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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슈퍼 한낮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마을 슈퍼에 마실나온 할망들, 철이 슈퍼라는 이름이 정겹다. 손주의 이름일까? 아들의 이름일까?
▲ 철이슈퍼 한낮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마을 슈퍼에 마실나온 할망들, 철이 슈퍼라는 이름이 정겹다. 손주의 이름일까? 아들의 이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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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다.
친절한 할마씨들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스스럼없이 내어준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하시는 말씀은 "잘 모르겠쑤다게"였다.

길을 헤매다 제주시에 다녀올 일이 있어 제주시로 향했다. 어떤 길은 쉽사리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어도 쉽게 찾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길이 없다'고 하기도 한다.

일몰 하루가 저무는 시간, 붉은 기운을 못 볼 줄 알았는데 잠시나마 하루가 아쉬운 듯 붉은 노을빛을 보여준다.
▲ 일몰 하루가 저무는 시간, 붉은 기운을 못 볼 줄 알았는데 잠시나마 하루가 아쉬운 듯 붉은 노을빛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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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림으로 돌아오는 길, 해안도로로 천천히 돌아온다.
직선의 길보다 구불구불 곡선의 길이 여행의 묘미를 더 신명나게 한다.

해무가 몰려와 붉은 빛 보기를 포기했는데 아주 잠시지만 붉은 빛이 해무사이로 드러난다. 지는 해가 나를 붙잡은들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잠시, 순간이다.

잠시의 순간이니 발걸음 멈추고 자기를 바라봐도 인생살이 늦어지지 않는다고 혹은 빨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길고양이 한참 해안가에서 사진을 담다가 올라오니 고양이 한 마리가 오래전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을 찍자 잠시 얼굴을 돌린다. 그러나, 길고양이는 계속해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 길고양이 한참 해안가에서 사진을 담다가 올라오니 고양이 한 마리가 오래전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을 찍자 잠시 얼굴을 돌린다. 그러나, 길고양이는 계속해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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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 그러나 여간해서 길고양이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지 슬쩍 눈길만 돌려버린다. 돌아서자 또다시 나를 빤히 바라본다.

살짝 기분이 나쁘다.
영물이라 해코지를 하면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냥 가던 길을 간다.

일몰 방파제로 마실 나온 동네 주민,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한낮의 무더위를 씻어준다. 장마철 전형적인 날씨였기에 시원한 바람이 더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 일몰 방파제로 마실 나온 동네 주민,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한낮의 무더위를 씻어준다. 장마철 전형적인 날씨였기에 시원한 바람이 더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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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자 바닷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어온다.
잠시 방파제를 걷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더위가 씻기는 시간이다.
그냥 그렇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머리와 삶이 분리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가 삶의 주체가 된다는 의미는 내 삶을 남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결국, 좋은 일이든 아니든 누가 나에게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일이다.

게스트하우스 본래 묵기로 했던 게스트하우스,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갑자기 많이 와서 근처의 민박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젊은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었나 보다. 그리하여도, 혹시라도 그들이 불편할까봐 양보를 했다고 위안을 삼는다.
▲ 게스트하우스 본래 묵기로 했던 게스트하우스,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갑자기 많이 와서 근처의 민박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젊은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었나 보다. 그리하여도, 혹시라도 그들이 불편할까봐 양보를 했다고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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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먼저 도착한 이들이 임자다.
하루 묵기로 선약되어 있었지만,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들과 동년배라면 좁아도 처음 만난 이들에 대한 설렘과 궁금증으로 날을 새워 술잔을 기울였을 것 같다.

20대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어떤 이는 육체의 나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나는 몸과 함께 늙어가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다.

비양도 숙소에서 바라본 비양도, 푸른 빛이 아름다운 밤이다. 이런 창문을 둔 집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이만큼 감동하고 감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비양도 숙소에서 바라본 비양도, 푸른 빛이 아름다운 밤이다. 이런 창문을 둔 집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이만큼 감동하고 감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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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민박집, 그러나 창문에 걸린 비양도의 어스름한 빛은 환상적이었다.
오늘 처음 보니 좋다하지만, 그것이 일상이 되었을 때에도 이렇게 감탄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내 일상을 감사하지 못하고 있다.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을 다 잊고, 오로지 비양도에만 집중하자고 했다.
걸어서도 30분이면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그 섬, 포구에서 멸치 터는 것도 바라보았으며, 해안가에 피어난 해녀콩도 바라보았고, 포구 근처의 식당에서 시원한 자리물회를 먹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피어오른다.

한림 야경 숙소에서 바라본 한림 바다의 야경,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바닷가에 들어가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그러고보니 벌써도 아니다. 한낮의 기온이 27도까지 올라갔다고 하니 완연한 여름이다.
▲ 한림 야경 숙소에서 바라본 한림 바다의 야경,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바닷가에 들어가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그러고보니 벌써도 아니다. 한낮의 기온이 27도까지 올라갔다고 하니 완연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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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창문으로는 한림 야경이 들어온다.
고요하다. 그리고 인공의 빛이 있어도 도심의 빛과는 완연히 다른 빛깔로 다가온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한껏 몰아쳐 들어온다. 마음까지 시원하다.

그 언젠가 한림바다에 섰을 때, 서쪽 바다도 제법 예쁘구나 했다. 아니, 동서남북 제주의 바다마다 자기만의 빛깔이 강해서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구나 했다. 다시 제주도에 정착한다면 지인의 조언대로 '서쪽으로 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갈치배 늦은 밤, 갈치배가 들어온다는 소리에 쪼르르 달려갔더니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한다. 제주 은갈치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무너진 순간이지만, 나보다도 어부가 더 헛헛할 터이다.
▲ 갈치배 늦은 밤, 갈치배가 들어온다는 소리에 쪼르르 달려갔더니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한다. 제주 은갈치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무너진 순간이지만, 나보다도 어부가 더 헛헛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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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갈치배가 들어온다고 했다.
제주 은갈치가 보고싶어 포구로 갔다. 그러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탕을 쳤단다.
혹시 갈치회라도 한 점 먹을 수 있을까, 은갈치를 볼 수 있을까 하던 기대가 함께 무너진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어부는 서둘러 불을 끈다. 셔터를 누르고 1초도 안 되어 불이 꺼졌다.

구멍가게 늦은 밤, 작은 구멍가게엔 자정 무렵까지 쇠주를 마시는 이들이 있었다. 안주는 새우깡과 독새기(닭알) 삶은 것이다.
▲ 구멍가게 늦은 밤, 작은 구멍가게엔 자정 무렵까지 쇠주를 마시는 이들이 있었다. 안주는 새우깡과 독새기(닭알) 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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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동네에 사시는 듯한 두 분이 초저녁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할마씨에게 어떤 안주가 되냐 물었더니 '독새기'(닭알) 삶은 것 밖에는 안된단다. 기가막힌 반숙, 독새기에 새우깡이 매개가 되어 친구들과의 대화를 이끈다.

상상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으로 행복한 시간을 가진다. 돈의 가치가 한껏 상승하는 밤이었다.

비양도 천년의 섬 비양도,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이렇게 아름다운 빛깔의 바다와 비양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섬에서 자고 일어나는 일이 이렇게 가슴 벅찬 일이었던 것이다. 아니, 어디나 그렇지 아니한가!
▲ 비양도 천년의 섬 비양도,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이렇게 아름다운 빛깔의 바다와 비양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섬에서 자고 일어나는 일이 이렇게 가슴 벅찬 일이었던 것이다. 아니, 어디나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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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눈을 뜨지마자 창문에 섰다.
비양도와 청자빛의 한림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길고양이가 나를 훔쳐보듯 나도 비양도와 한림바다를 훔쳐본다. 그냥, 그렇게 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도 좋다.

짐이랄 것도 없는 짐을 싼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떠나고 싶다가도 떠나면 다시 오고 싶은 것이 여행길인가 보다. 사는 것도 그러하고.

한림에서 제주공항으로 가는 길, 로드킬한 길고양이를 두 마리나 보았다.
무슨 까닭일까?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면…. 나를 훔쳐보던 그 고양이는 아니겠지?


#헌림#길고양이#비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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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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