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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에서 아내와 기자 네팔 텔레비전 방송사 기자인 먼주 구릉(37)이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결혼식을 거행한 네팔 구릉족 회관앞에서...
▲ 결혼식장에서 아내와 기자 네팔 텔레비전 방송사 기자인 먼주 구릉(37)이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결혼식을 거행한 네팔 구릉족 회관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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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네팔 카트만두를 찾았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2년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한국어교육을 하며 지난 3월 5일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개월을 정신없이 돌아다녔습니다. 2년간의 공백으로 만나지 못한 지인들에게 인사를 다닌 것입니다. 인사를 다 마치지도 못한 상태에서 곧 한국주재 네팔 영사를 인사차 만났습니다. 그가 네팔에서 머물 것을 권했습니다.

저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의지도 생기고 해서 네팔에 한국어학과를 개설해보겠다는 야심찬 희망을 안고 네팔에 갔습니다. 그때 새로운 인연을 만났습니다. 물론 7년 전 알게 된 사람이지만, 결혼을 이야기 한 적은 없었습니다. 37세의 그녀는 네팔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의 원래 이름으로 오래전부터 네팔사람들은 사가르마타라 불렀음)텔레비전 방송국 기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7년 전 기자가 주최한 제1회 네팔현대미술전 때 11명 화가의 그림을 수집하고 카트만두에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그때 만났던 기자 중 한 명이 지금의 아내가 된 먼주 구릉(Manju Gurung)입니다. 그녀는 말수가 적어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습니다. 단순히 그가 질문하는 내역에 대해 답을 했던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맑은 그녀의 눈동자에 관심이 있어 그후 몇 차례 네팔을 찾았을 때 만났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네팔 화가 비케이의 갤러리에서입니다. 화가 비케이는 미술전 당시 한국에 초대된 네팔 학생화가 중 한 명입니다. 이미 한국에 여러차례 소개된 바 있는 화가입니다.

네팔 먼줄 시인 전 네팔트리뷰반 국립대 네팔어문학부 교수이자 시인이다. 네팔의 왕정을 물리친 4월 혁명의 노래 작사자이기도 한 그는 만해문학축전에 초대되어 네팔문학에 대한 심포지엄을 갖기도 했다.
▲ 네팔 먼줄 시인 전 네팔트리뷰반 국립대 네팔어문학부 교수이자 시인이다. 네팔의 왕정을 물리친 4월 혁명의 노래 작사자이기도 한 그는 만해문학축전에 초대되어 네팔문학에 대한 심포지엄을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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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가족당 당수 네팔 가족당 당수이자 네팔헌법기초위원인 에크나타 다칼(Aknata Dhakhl)이 자신의 아내와 함께 결혼식장을 찾아 아내와 기자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있다.
▲ 네팔 가족당 당수 네팔 가족당 당수이자 네팔헌법기초위원인 에크나타 다칼(Aknata Dhakhl)이 자신의 아내와 함께 결혼식장을 찾아 아내와 기자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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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요게스 기미레(Yogesh Ghimire) 네팔의 영화감독 요게스 기미레는 얼마전 네팔 영화에 출연 제의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에 찾아주었습니다. 지금 그가 제작한 드라마가 주말에 네팔 텔레비전에 방영되고 있기도 합니다.
▲ 영화감독 요게스 기미레(Yogesh Ghimire) 네팔의 영화감독 요게스 기미레는 얼마전 네팔 영화에 출연 제의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에 찾아주었습니다. 지금 그가 제작한 드라마가 주말에 네팔 텔레비전에 방영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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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개월여 결혼관련 서류를 준비하고 한국에 한 번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한국어학과 개설은 어렵지만 네팔인들과 한국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한국문화센터를 열자는 것이었고 그 계획을 실천해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계획에 협력자들이 생겼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꾸준히 작성한 제 기사가 인연이 된 전남대 의대의 한 교수님과 한 제지회사 상무님입니다.

대전의 설천 박순동님은 한국화를 그려주시고 제가 쓴 시를 붓으로 써주시기도 했습니다. 결혼식 배경으로 쓰인 한국화는 박순동님이 선물해주신 그림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에 있을 때 많은 한복을 보내주셔서 동포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신 순천향대 전영숙 교수님과 이소영 선생님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혼례복으로 입은 한복도 두 분이 선물해주신 네팔 한국문화센터의 자산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결혼식 전날 한 친구는 50만 원의 거금을 보내 한국문화센터의 발전과 제 앞날에 대해 축복을 빌어주었습니다.

네팔에서 올린 결혼식... 실천하는 일꾼 되겠습니다

네팔예술대학교 교수 그리고 먼줄 시인 사진 왼쪽부터 전 네팔예술대학교 학장 라야 마이날리(화가), 라데샴 물미(화가, 교수), 갸누라다 고르크할리(교수, 싯타르 연주자), 우리 부부 오른쪽에 먼줄 시인
▲ 네팔예술대학교 교수 그리고 먼줄 시인 사진 왼쪽부터 전 네팔예술대학교 학장 라야 마이날리(화가), 라데샴 물미(화가, 교수), 갸누라다 고르크할리(교수, 싯타르 연주자), 우리 부부 오른쪽에 먼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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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시인, 출판인들 사진 오른쪽에 네팔 정부기관지 고르카 빠뜨라 편집장 쉬리옴 쉬레스타, 그 옆에 옥스포드 인터네셔널 출판사 사장 우리 부부 뒤로 네팔 시인들 좌측에는 한국에서 만난 네팔 친구들 사진 좌로부터 두번째 모한까르기
▲ 기자, 시인, 출판인들 사진 오른쪽에 네팔 정부기관지 고르카 빠뜨라 편집장 쉬리옴 쉬레스타, 그 옆에 옥스포드 인터네셔널 출판사 사장 우리 부부 뒤로 네팔 시인들 좌측에는 한국에서 만난 네팔 친구들 사진 좌로부터 두번째 모한까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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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없는 길을 걷는 여행자처럼 시작한 일입니다. 하지만 너무도 절실한 바람을 가진 일이었습니다. 사실 결혼신고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비자를 받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하기로 유명한 네팔입니다. 그런데 통역이 가능할 정도로 능통한 네팔어 실력 덕분에 모든 것이 수월했습니다.

이제 비자문제도 해결이 되었고 한국문화센터 장소도 정해졌습니다. 늦어도 두 달이면 문을 열 것입니다. 이곳에서 자립할 방안도 찾았고 동화를 써서 선불로 몇 개월의 임대료가 될 만한 큰 돈도 받았습니다. 한 영화감독은 영화출연제의를 했고 저는 그것을 수락했습니다.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네팔인들과의 교감을 만들어가는 실천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어제부터는 한 시민단체의 주선으로 한국어 외부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네팔은 지금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네팔이라는 나라가 예전과는 너무 다르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한국 도심의 변화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느린 걸음을 자랑하던 네팔이 매우 빠른 걸음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화의 과정이라 믿고자 합니다. 히말라야 산동네에서 추위에 약자들이 죽었다는 뉴스는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지금 카트만두는 예년보다 훨씬 추운 날들입니다.

먼주 구릉 아버지 어린 시절 먼주는 아버지와 헤어져 살았습니다. 그리고 결혼식날 오랜만에 재회했습니다. 둘은 눈가에 눈물이 맺혔지만 이제 웃음을 심어야겠습니다.
▲ 먼주 구릉 아버지 어린 시절 먼주는 아버지와 헤어져 살았습니다. 그리고 결혼식날 오랜만에 재회했습니다. 둘은 눈가에 눈물이 맺혔지만 이제 웃음을 심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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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찾아온 어머니 제 곁에 먼주 구릉의 어머니는 인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살며 이웃에 아주머니가 먼주 구릉의 이모가 되었답니다.
▲ 인도에서 찾아온 어머니 제 곁에 먼주 구릉의 어머니는 인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살며 이웃에 아주머니가 먼주 구릉의 이모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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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가족들 참으로 대가족입니다. 몇 차례 나누어서 사진을 찍었기에 일부 가족들입니다. 히말라야 기슭에서부터 인도에서 온 가족들까지 대가족입니다.
▲ 아내의 가족들 참으로 대가족입니다. 몇 차례 나누어서 사진을 찍었기에 일부 가족들입니다. 히말라야 기슭에서부터 인도에서 온 가족들까지 대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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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한 정당 지도자가 죽었다는 이유로 해당 정당의 지지자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시위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강도와 살인 사건이 최근 잇따르고 있습니다. 카트만두를 찾으시려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 같습니다.

저의 결혼식은 지난 12월 15일에 열렸습니다. 당초 180명 정도의 인사에게 청첩장을 돌렸습니다. 인사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전통혼례를 올리자는 제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인사를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저와 인연이 되었던 네팔에 대해 슬라이드쇼를 준비하고 한국 음악을 배경으로 들려주었습니다.

많은 네팔화가, 시인, 음악가, 영화감독, 정부관료, 기자들이 찾아주었습니다. 물론 제 반려자인 먼주 구릉의 가족들이 국내 항공을 이용해서 오기도 하고 인도에서 국경을 넘어 오기도 했습니다.

네팔에 있는 한국미용실에서는 아내의 화장을 해주기도 하고 머리 손질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저와 처제까지 덤으로 해주셨습니다. 한국인 디자이너 한 분은 아내의 혼례복이 된 한복을 손질해 주셨고 결혼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식장에 찾아와 옷매무시를 가다듬어 주셨습니다. 전에 코이카 단원으로 네팔에서 활동하셨던 한 분은 한국노래를 네팔어로 번역해 불러주셨습니다. 훌륭한 축가가 되었습니다. 참 덕보고 사는 사람 같습니다.

전 한국주재 네팔 영사 야덮 카날 전 한국주재 네팔영사인 야덮 카날은 지금 네팔 외교부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 4개월 전 고인이 되었다. 네팔 전통에 의하면 8개월 이내에는 외부행사에 참석을 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전에 찾아주었다. 인사를 전하고 돌아가는 길에 서로 환담을 나누었다.
▲ 전 한국주재 네팔 영사 야덮 카날 전 한국주재 네팔영사인 야덮 카날은 지금 네팔 외교부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 4개월 전 고인이 되었다. 네팔 전통에 의하면 8개월 이내에는 외부행사에 참석을 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전에 찾아주었다. 인사를 전하고 돌아가는 길에 서로 환담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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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가수 니샤 데샤르(Nisah deshar) 올해의 네팔 가수상을 휩쓴 가수 니샤 데샤르는 아내와 가까운 친구라고 한다.
▲ 네팔 가수 니샤 데샤르(Nisah deshar) 올해의 네팔 가수상을 휩쓴 가수 니샤 데샤르는 아내와 가까운 친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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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겠습니다. 한국의 부모님과 형제들에게는 미리 전화를 걸어 인사를 전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께는 결혼식 중 아내가 전화를 걸어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했습니다. 함께 자리한 네팔인들이 모두 즐겁게 웃어주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북한의 지도자가 죽었다는 소식은 안타깝습니다. 사람의 생사는 누구도 약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는 동안 화목을 다지며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저와 제 아내 목에 걸린 흰 천은 카다(Khata)로 네팔 사찰의 한 승려가 신도들에게 축원을 빌어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일반인들도 여행자나 가족의 축원을 비는 데 일반적으로 사용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



#250명의 카다#카트만두에서 올린 결혼식#네팔인 화가, 시인, 영화감독, 기자#김형효, 먼주 구릉#카트만두에서 올린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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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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