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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요즘 사람답지 않게 연애할 때부터 자식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평균 출산율 1.21, 많이 낳아봤자 자식 둘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그녀는 최소 셋, 괜찮으면 넷까지 낳겠다는 애국자였다. "하나는 외롭고, 둘은 싸우고, 셋은 편이 맞지 않으니 최소한 아들 둘에 딸 둘 해서 넷 이상은 돼야지 않겠느냐"며 농담 반 진담 반 던지는 그녀.

처음에는 아내가 그냥 하는 소리려니 했다. 자랄 때 오빠 하나밖에 없었던 탓에, 언니나 여동생이 있었으면 느꼈을 자매의 정이 부러워서 하는 이야기려니 생각했다. 내 여동생도 가끔 언니나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웬걸. 결혼하고 난 후에도, 첫째를 낳고 난 후에도 아내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굳어지는 듯 했다. 우리는 나이를 먹게 되면서 집안의 이런저런 일들을 치르게 되었는데, 아내는 그때마다 형제자매가 많으면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며 아이를 더 낳자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우리 나이가 있으니 넷이 많으면 최소한 셋은 낳자는 것이었다.

그녀, 최대 셋 괜찮으면 넷까지 낳겠다는 애국자

내가 꿈꾸는 가족 가족 구성원 넷이면 딱 알맞지 않는가?
▲ 내가 꿈꾸는 가족 가족 구성원 넷이면 딱 알맞지 않는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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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셋이라. 사실 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식 셋 이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 딸 하나씩 낳아서 네 식구를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보편적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아들 둘이나, 딸 둘이면 다른 성으로 하나쯤 더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할, 아주 먼 미래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직장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면서 더 굳어졌는데, 아이 하나 기르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작금의 현실이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돈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무한 경쟁의 사회. 어찌 이런 사회에서 나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아내는 무릇 사람이란 제 먹을 복은 타고 태어난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내의 철없는 위로일 뿐, 우리의 능력으론 자식 둘이면 충분해 보였다. 아니, 그것도 과한지 몰랐다.

아이를 셋 이상 낳자는 아내와 자식 둘 이상은 상상도 않은 남편. 우리 부부는 그렇게 가족계획에 합의하지 못한 채 첫째 딸을 낳았고 18개월 뒤 둘째 아들을 낳았다. 아내는 여전히 셋째를 낳으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난 그녀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물론 아이가 생기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부러 셋째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

셋째에 대한 미련을 지울 수 없었던 아내.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쉽게 양보하지 않았던 셋째에 대한 욕심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가계 수입이 줄어서? 아니다. 그것은 돈의 문제가 아닌, 육아의 문제였다. 비록 연년생은 아니지만 18개월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단순 둘이 아니더라

자식들을 키우는 데 있어서 아이 하나와 둘은 정말이지 천지 차이였다. 우리는 첫째를 키우면서 나름 산전수전을 겪었던 터라 둘째도 그냥 첫째와 마찬가지로 키우면 되겠거니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 우리의 어처구니 없는 착각이었음을 깨달아야만 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1+1은 단순히 2가 아니었던 것이다.

둘째가 신생아일 때는 잘 몰랐다. 어차피 먹고 자는 것이 전부인 아기 때문에 우리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생아를 안거나, 또다시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를 가는 일 등이 낯설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 번 해봤던 일이라 곧 익숙해졌고, 우리 부부는 다시금 둘째와의 생활에 적응하는 듯했다.

엄마~~ 울어젖히기 시작하는 둘째
▲ 엄마~~ 울어젖히기 시작하는 둘째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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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 시작하는 둘째 그래도 아들이라고 시끄럽다
▲ 울기 시작하는 둘째 그래도 아들이라고 시끄럽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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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문제는 아기가 신생아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어났다. 둘째 산들이의 울음소리는 아들이라 그런지 매우 우렁찼는데, 그것은 첫째 까꿍이와 비교할 것이 못되었다. 첫째의 울음소리는 그럭저럭 참을 만해서, 무시하고 잠을 청할 수도 있었고 아이가 카 시트에 타지 않겠다며 울어도 못 들은 척 견디며 4~5시간을 운전할 수 있었는데, 둘째의 울음소리는 단 30분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녀석은 누나보다 매우 예민했다. 잠시라도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세상이 떠나갈 듯 울어댔다. 잠이 들어서도 엄마가 곁을 비우면 귀신같이 알고 일어나 또다시 울어 젖히는 아이. 둘째는 저녁 9시쯤 잠들어 길게 자야 2~3시간이었는데 12시부터는 1시간에 한 번씩 깨어 엄마를 찾았으며, 아빠가 안고 서성이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엄마를 찾아 울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내는 첫째 때보다도 행동에 더 많은 제약을 받아야만 했고, 겨우 안정되기 시작했던 우리의 생활리듬은 다시금 헝클어졌다. 거기에 비례하는 아내의 바가지와 나의 스트레스.

(아내는 둘째가 신생아 때부터 첫째와 비교해 유별났다고 이야기한다. 더 예민하고 잘 우는 아이. 아내는 이를 아들과 딸의 차이라며, 아들 키우기가 딸 키우기보다 훨씬 어렵다는 일반론을 거론하는데 난 아직 유보적이다. 물론 남아들이 여아들보다 힘이 센 만큼 뻗대기 시작하면 더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첫째가 다른 신생아보다 안 우는 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밤에 자란 말이다 낮잠 말고
▲ 밤에 자란 말이다 낮잠 말고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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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천국 아이 둘만 잠들면 조용해지는 세상
▲ 여기가 천국 아이 둘만 잠들면 조용해지는 세상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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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은 역시나 잠자는 시간이었다. 물론 첫째 때도 아이 재우기가 가장 어려웠지만 아기 둘을 재우는 건 상상 이상이었다. 첫째나 둘째 모두 엄마하고만 잠을 청했는데 하나가 깨서 울면 또 다른 하나가 깨서 울고, 하나 재웠다 싶으면 다른 하나가 다시 일어나서 울고.

더 고약한 것은 이제 좀 컸다고 방을 돌아다니면서 자는 첫째의 잠버릇이었다. 종횡무진 요를 누비는 까꿍이. 그러다가 녀석이 둘째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아내와 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동생이 울든 말든 쿨쿨 잠만 잘 자는 첫째와 달리 아내는 둘째를 진정시켜야 했고, 난 그런 아내를 위로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까꿍이 걸린 아구창, 동생에게 뽀뽀하다 옮겨

툭하면 둘째 울음소리에 일어나 시뻘겋게 충열 된 눈으로 출근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는 데 있어서 재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잔병치레'였다.

6월쯤이던가? 퇴근하려는 데 갑자기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첫째가 화상을 입었을 때와 비슷한 목소리인 만큼 난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어진 아내의 말에 피식 웃음부터 흘리고 말았다. 아내가 말한 단어가 정확히 무언지는 모르겠으나 그 어감이 너무나도 웃겼던 것이다. 바로 '아구창'.

그러나 아내의 목소리는 계속 심각했고 난 끄려던 컴퓨터를 이용해 그 단어를 검색해 봤다. 도대체 아구창이 무언지, 아구지를 연상케 하는 그 단어에 왜 아내가 저리도 호들갑인지.

아구창은 그 우스운 이름과 달리 신생아나 영아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질병으로서 입안에 하얗게 백태가 끼는 현상을 동반하고 있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까꿍이가 돌잔치에서 얻어온 포크 뒤꽁무니를 열심히 빨다가 아구창에 걸렸는데, 그런 녀석이 동생이 좋다며 뽀뽀 세례를 하는 바람에 둘째도 아구창에 걸렸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가 엄마 젖을 빠니 아내 역시 아구창에 걸려 젖꼭지가 따끔거린다나.

또다시 콧물이다 또 어떻게 약을 먹어야 하는지
▲ 또다시 콧물이다 또 어떻게 약을 먹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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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녀석이 병에 걸리면 나머지 한 녀석에게 그 병이 옮는 현실. 그렇다. 아이 둘을 키우는 데 있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잠자리 문제가 아니라 잔병치레였다. 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도돌이표 잔병치레. 특히 겨울에 걸리는 감기는 가장 큰 문제였다. 감기가 쉽게 떨어지지 않을뿐더러 그 감기를 시작으로 다른 병들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둘째는 귀가 약한 편이라 중이염을 자주 앓는 편이었는데, 이 중이염이 바로 감기에 쥐약이었다. 짧게는 2주일, 길게는 2달 동안 이비인후과를 다니며 항생제를 먹어야 비로소 낫는 중이염. 아내는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붙잡아 약을 먹이는 것에 진저리를 쳤지만, 귀 안의 고름 때문에 간지러운 듯 자꾸만 귀를 만지작거리는 둘째를 보는 것은 더 고역이었다.

중이염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부터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었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째가 문화센터와 같은 사람이 많은 곳에 다녀오면 감기에 걸리곤 했는데, 둘째는 꼭 그 감기에 옮았기 때문이다. 중이염이 다 나았다며 환호한 지 2주일 만에 다시 귀를 긁는 아이, 그리고 그런 자식을 쳐다보는 부모의 심정.

보기는 좋지만 저렇게 병을 옮는다
▲ 보기는 좋지만 저렇게 병을 옮는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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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아내는 셋째를 언급하면서 예전과 같은 자신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만약에 셋째가 딸이라는 보장만 있다면 낳겠지만, 아들이라면 사절이란다. 물론 난 안도감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아내가 안쓰러운 것 또한 사실이었다. 얼마나 힘들면 그토록 갖고 싶었던 셋째도 포기할까. 또한, 둘도 키우기 이렇게 어려운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어떻게 자식들 아홉씩이나 키웠을까.

어쨌든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자식이 둘이든 셋이든 부모 노릇 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거. 그러니 여보, 힘내더라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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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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