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신주 박사가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김수영 다시 읽기' 강의를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김수영 다시 읽기' 강의를 하고 있다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시, 좀 더 나아가 인문학은 자신의 맨 얼굴을 그대로 직시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강력한 허영을 벗어던져야 하지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김수영이 위대한 시인인 이유는 그가 자신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진지하고 정직한 시를 쓰려고 했던 시인'. <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신주 박사는 시인 김수영을 이렇게 표현했다. 강 박사는 지난 14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김수영 다시 읽기' 두 번째 강의에서 김수영의 삶과 그의 시에 담긴 시인으로서의 자세에 대해 강의했다.

강  박사는 "김수영은 평생 '울림이 있는 작품'을 쓰고 싶어했었다"며 "그래서 그는 매사 자기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엄격했고 타인의 흉내를 내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울림을 주는' 시인 되고 싶었던 김수영

강 박사는 강의를 시작하며 김수영의 최후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했다. 김수영은 1968년 6월 16일 자신의 집 부근에서 술에 취한 채 길을 건너려다 버스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김수영에게는 번역일을 꾸준히 주는 출판사 편집장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김수영 입장에서는 고마운 친구였지요. 1968년 6월 15일 번역 원고료를 건네받은 김수영은 그 친구에게 술을 한 잔 사겠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김수영의 사정을 아는 편집장 친구는 김수영의 술값을 아껴주고자 경남 하동지방의 지주 출신 소설가였던 이병주라는 사람과 합류하기로 하지요."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에게 술을 한 잔 대접하고 싶었으나 친구의 배려로 오히려 자존심을 크게 상한 김수영은 술자리에서 크게 취했고 이윽고 이병주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강 박사는 "이때 김수영은 이병주를 향해 '야, 이병주, 이 딜레탕트야', '네 작품에는 울림이 없어' 같은 말을 하며 이병주를 자극했지만 평소 호탕한 성격인 이병주는 김수영의 도발을 그냥 웃어넘겼다"고 설명했다. 이후 술집을 나온 김수영은 귀갓길에 변을 당하게 된다.

강 박사는 "그가 죽기 전에 이병주의 삶과 문학을 평가했던 두 마디인 '딜레탕트'와 '울림이 없음'은 김수영의 내적 정신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실마리"라고 말했다. 그는 "딜레탕트는 어설픈 예술 애호가를 지칭하는 용어로, 예술을 겉멋으로 추구하는 부류의 인간을 가리킨다"며 "우리는 김수영을 딜레탕트가 되지 않으려고 애썼던, 울림을 주는 작품을 쓰고 싶었던 시인으로 기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작품에 울림이 있으려면 작가는 진지성과 진실성이 수반되는 글을 써야 합니다. 시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나니까 쓸 수 있는 글'이지요. 김수영은 여기서 조금도 후퇴하지 않았어요. 그에게 '자기니까 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쓴 멋진 시를 흉내내는 순간 딜레탕트가 되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작품은 쓸 수 있어도 독자를 울리는 작품은 결코 쓸 수 없게 되지요"

강 박사는 "개인적으로 서정주 시인을 별로라고 생각한다"며 "삶과 글이 괴리되어 있는 서정주는 자신이 추할수록 그 추함을 덮기 위해 더욱 서정적인 시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김수영은 뭔가 '찌질한' 행동을 하면 그 내용으로 시로 쓴 후, 다시는 그 '찌질한' 짓을 반복하지 않았다"며 "김수영이 생전에 '나에게 있어 시는 행동의 계시'라고 말했던 것은 그런 의미"라고 말했다.

'시는 행동의 계시'...삶과 시를 일치시키려 했던 시인

강 박사는 "김수영은 시인으로서 자신에게 무척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설명하며 김수영의 시 <거미>를 예로 들었다.

"<거미>를 보면 서러운 가을 거미를 통해 평상시 자신을 휘감았던 설움의 정체를 확인하고 있는 김수영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거미> 이외에도 김수영의 시에는 '서러움'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김수영이 가지고 있었던 시인으로서의 이상에 대해 잘 설명해줍니다. 원래 서러움이란 뭔가 기다리는 게 있고 그게 뜻대로 안 될 때 찾아오는 감정이거든요. 마치 '오늘이 화이트데이라서 사탕을 받겠지' 하고 많이 기다렸던 사람이 사탕을 못 받으면 서러워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서러움을 느끼려면 우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이상이 있어야 하고, 두 번째로는 자신이 아직 그 이상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현실 인식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직시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강 박사는 "시인은 시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삶을 심화시켜야 하고, 역으로는 자신의 삶을 심화시키지 않고서는 시를 쓸 수 없는 사람"이라며 "김수영은 이런 시인이 되는 것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라는 시를 보면 김수영은 어느 날, 자신보다 약한 설렁탕집 여주인과 불쌍한 야경꾼에게는 정의를 요구하면서도 자신보다 강한 권력에게는 정의를 요구하지 못하는 비겁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자기 비하처럼 보이지만 이는 앞으로는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결의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시인들이 결코 쉽게 흉내 낼 수 없었던 지성이자 의지이지요."

 수강생들이 강신주 박사의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강신주 박사의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강 박사는 "친구들과 술 마시며 이야기하기를 즐기던 김수영은 항상 삶과 문학에 대한 자신에 차 있었으며 종종 술자리에서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나는 시인이다'라고 큰 소리를 잘 치기도 했다"며 "인문학을 공부하는 우리는 이런 자신감이 얼마나 많은 자괴감과 서러움에서 탄생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가수다> 이전에 '나는 시인이다'라고 말했던 아주 자각적인 시인이 한 명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


#강신주#김수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