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듯 시를 짓는 농촌마을이 있다. 8살 지현이부터 올해로 89세를 맞는 김봉순 할머니까지, 마을주민들이 함께 시를 짓는 이곳은 전라남도 곡성군에 위치한 죽곡마을이다.
막걸리 먹다 달려와 꾸벅꾸벅 졸며 짓고, 고추밭 메다 흙 묻은 손으로 또박또박 쓰며 모은 죽곡마을 주민들의 시가 한 권의 시집이 되었다. <소,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 고>(도서출판 강빛마을)의 책 제목은 농부 최태석 할아버지의 한시 제목이다. 책 표지모델도 그가 장식했다.
마을 시집의 구상은 2004년부터다. 당시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개관을 맞아 인터넷에 죽곡 농민회 까페가 열렸다. 까페에는 가끔이지만 농부들이 지은 시가 올라오곤 했다. 이를 본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김재형 관장은 농부들이 시를 쓴다는 것이 참 소중하다 생각했고 "언젠가 꼭 마을 시집을 내보자"는 꿈을 갖게 됐다. 이후 2010년 전남문화예술재단의 문화 사업 공모에 "마을 시집을 만들겠다"는 지원서를 넣었고, 희소식이 들려왔다.
김 관장은 전남문화예술재단으로부터 받은 100만 원의 지원금을 가지고 '죽곡마을 시문학상'을 열었다. 평소 시 짓기를 낯설어 하던 마을 주민들이 공모소식을 듣고는 '시 짓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는 노인들에게까지 이어졌고, 죽곡마을에는 '시 짓기 열풍'이 불었다. 그중 최고령 지원자는 89세의 농부 김봉순 할머니다. 그의 시 '내 인생'은 가작에 당선 됐다.
팔십 평생 살아오면서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이제사 돌아보니/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았는지/ 이제는 몹쓸 놈의 병을 얻어/ 발 한 짝도 내디딜 수가 없네/ 방안에 앉아 하루 종일 마당 앞에 심어 놓은/ 호박 덩굴 자라나는 모습이며/ 텔레비전에서 전해주는 세상 이야기와/ 연속극을 보는 게 내 생활이 되었네/ 저 산에 해 저물어가듯이 내 인생도 저물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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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짓는 마을' 죽곡마을의 주민들이다. 오손도손 정겨워 보인다. |
ⓒ 김재형 | 관련사진보기 |
마을 시집은 방송과 신문을 통해 세상에 소개됐다. 이후 죽곡마을을 알게 된 사람들이 시작(詩作)의 공간이었던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을 직접 방문하거나, 죽곡 농민회 인터넷 까페에 가입해 마을 소식을 묻기도 했다.
이 죽곡마을 농부들이 시인이 되어 서울나들이에 나선다. 장소는 성미산 마을과 이웃해 있는 <오마이뉴스> 사옥 '서교동 마당집'. 7월 5일 저녁 7시 30분 죽곡마을 시인들이 '농민, 여성 그리고 시'라는 주제로 낭송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이들의 신작이 공개되며, 작은공연도 열린다. 사옥 앞마당에서 여성환경연대 회원들의 춤 공연이 펼쳐진다.
김재형 관장은 "낭송회는 도시사람들에게 죽곡농부들의 시를 소개하고 서로의 문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번 서울 나들이에는 죽곡마을로 귀촌한 젊은 여성 농부도 동행한다. 새내기 농부에게서 실감나는 농촌 적응기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같다.
죽곡마을 낭송회는 참석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장소 :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오마이뉴스 사옥 '서교동 마당집' (☞약도 보기)언제 : 7월 5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주최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전국여성농민회, 여성환경연대후원 : (재)전남문화예술재단, 도서출판 강빛마을문의 :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02-733-5505/ 내선번호 274, 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