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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아빠 아는 분이 아르헨티나에서 두부 공장 하는데, 가끔 서울에 오시면 그분 형님네도 두부 공장 하신다고 이 솔잎 두부를 주세요. 맛이 좋아서 나눠 드리려 합니다."

내가 좋은 것 나눠 먹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는 게 기쁘다. 20분 후에 딱 3분만 시간 내라는 문자가 먼저 왔다. 턱을 괴고 앉아서 잠시 아르헨티나와 두부의 조합을 생각해 보았다. 한국 사람들이 그곳에 많이 가 있는가 보다. 그녀가 가져 온 두부는 한 모가 아니라 큰 거 한판이다.

두부 반 모를 잘라서 맨 간장에 찍어 먹었다. 마음으로 받은 선물이었기에 더욱 맛이 있다. 언제부턴가 두부가 모양만 두부였지 맛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 두부는 그야말로 두부 맛이다. 순한 음식이라 먹는 순간, 맛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두부 맛은 삼킨 후 목젖에 남는다. 고소하다거나 달다거나 아니면 아무 맛도 없다거나.   

이름이 솔잎 두부인데, 아닌 게 아니라 솔잎을 씹은 후 마지막에 남는 달짝지근함이 느껴진다. 순식간에 반 모를 먹으니 배가 부르다. 친정인 대화에서는 큰 일 있을 때, 두부를 만들었다. 잔치가 있거나 모내기를 한다거나 명절이거나 혹은 집안 어른 생일이 있을 때다.

두부 한 모가 아니라 두부 한 판! 살면서 이렇게 많은 두부를 선물 받아 볼 일이 또 있을까? 먹을 것을 나눠 먹는 사람이 된 것이 나는 몹시 기쁘다.
▲ 두부 한 모가 아니라 두부 한 판! 살면서 이렇게 많은 두부를 선물 받아 볼 일이 또 있을까? 먹을 것을 나눠 먹는 사람이 된 것이 나는 몹시 기쁘다.
ⓒ 김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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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린 콩은 큰 통 하나 가득하다. 그걸 맷돌에 가는 데 맷돌 입에 한 숟가락 씩 콩을 떠 넣는 일이 내 일이었다. 박자에 맞춰 잘 넣어야 맷돌 자루에 부딪히지 않는다. 부딪히면 콩이 사방으로 튀고 밥 먹고 그것도 못하냐는 엄마 잔소리를 주워 담아야 했다. 좀 커서는 나도 맷돌 자루를 잡고, 밀고, 당기고, 돌리는 기술을 익혀 엄마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맷돌 옆구리에서 삐죽삐죽 흘러나오는 콩가루는 하염없이 느리다. 이 많은 콩을 언제 다 가나 몸이 뒤틀릴 때에야 엄마가 그릇을 기울여 마지막 콩을 손으로 쓱쓱 모아 털어 넣었다. 숟가락으로 맷돌 입을 야무지게 단속하고 딱딱 숟가락을 털면 끝이다. 아궁이에 불을 넣고 한때는 쇠죽을 쑤었던 가마솥에 콩 간 것을 넣고 끓인다. 익혀서 비지를 거르고 콩물을 끓이다가 간수를 넣는다. 나무 주걱으로 살살 저으면 몽글몽글해지는데 늘 그 순간이 신기했다.

간수는 마치 마법의 묘약 같다. 대화 집 굴뚝 옆에는 일 년 내내 소금 자루가 기대어 서 있다. 댓돌이나 나무판 위에 올려놓고 그 아래 이빨이 나간 사기그릇을 두었다. 거기에 맑은 물이 고이는 데, 두부를 만들 때 엄마는 그 간수를 썼다. 그게 없으면 대화 장에 가서 간수를 사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두부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간수다. 엄마처럼 집에서 만들었던 간수가 좋다. 소금도 그 간수가 빠진 것이라야 먹을 수 있다. 도대체 시골 아낙들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콩을 끓이기 시작하면 나는 친구네 집에 가서 두부 틀을 빌려 왔다. 겨울에는 콩나물시루를 앉혀놓는 삼발이를 큰 그릇에 걸치고 두부 틀을 올려놓는다. 삼베 천을 깔고 몽글몽글해진 덩어리를 국자로 떠 넣어 오래오래 누르고 짠다. 그 위에 큰 돌을 올려놓고 한 두시간 아니면 더 오래 물이 빠지고 덩어리가 굳기를 기다린다. 깨끗하게 씻어놓은 돌이 달라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양념한 된장으로 간을 맞춰 점심으로 먹었다. 칼로 썰지 않고 손으로 뜯었더니 이 모양이 되었다.
 양념한 된장으로 간을 맞춰 점심으로 먹었다. 칼로 썰지 않고 손으로 뜯었더니 이 모양이 되었다.
ⓒ 김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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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가 완성되는 시간, 아직 저녁 밥때가 되지 않았다. 일하고 돌아온 막내 오빠는 뜨끈한 두부 한 모를 고추장 발라 부엌 문지방에 선 채로 먹었다. 다 된 두부는 그 물에 큼직하게 썰어서 넣어 놓는다. 두부 틀을 돌려주는 것도 내 일이다. 빌린 값으로 두부 한 모를 넣어 돌려주었다. 머리에 이고 가야 하는데 엄마처럼 척하니 손을 내려놓고 가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두부는 무쇠 솥뚜껑을 뒤집어 들기름을 듬뿍 두르고 굵은 소금 뿌려 구웠다. 국물이 자작해지게 끓이는 '친정식 두부 찌개' 맛이 그리워 지금도 해보는 데 그 맛이 아니다. 그게 '미원' 맛이었겠지만, 이런 저런 노력 끝에 '미원' 없이 비슷한 맛을 내게 된 것이 그나마 자랑할 만한 살림 솜씨다. 겨울에는 이틀 걸러 한번 만두를 했는데, 두부가 없으면 만두를 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인가, 그전부터 대화에서도 두부 하는 집이 거의 없어졌다. 아마 부엌 아궁이가 연탄으로, 가스로 바뀌면서 두부 하는 집이 없어졌을 것이다. 한 모씩, 두 모씩 사 먹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그 두부도 먹을 만하다고 했다. 두부 만드는 일은 고된 일이다. 그 일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았던 엄마다. 한 모에 400원하는 두부는 맛을 떠나 고마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새 두부는 유기농 국산콩으로 만들었다 해도 옛날 대화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다. 제아무리 토속과 원조를 자랑해도 내가 알고 있는 그 맛은 없다.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큰 오빠가 몇 년 전부터 집 두부를 한다. 장작불도 아니고 무쇠솥도 아니고, 가스불, 양은 솥에다 하는데 다들 맛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맛있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고개를 젓는다. 내가 아는 두부 맛을 다시는 못 볼 것 같다.

도시에 사는 큰 언니는 두부 만드는 기계로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든다. 생긴 모양이 하도 못나서 맛이 살짝 의심되지만, 먹을 만하다. 그런데 이 두부가 할 때마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서 늘 힘들다고 한다. 내 기억에 엄마가 두부 만들기를 실패 해 본 적은 없다. 결정적인 순간은 그녀만 아는 대충 짐작이기 때문에 설명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놀다가 들어와 보면 두부가 다 되어 있거나 되어가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해, 엄마가 "나쁜 놈들"이라며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다. 오래 비워두었던 당신 집에 돌아가 보니 늘 그 자리에 있던 맷돌이 없어졌더라는 것. 분명 동네 사람 짓은 아닐 거라면서, "몹쓸 놈들" 욕을 한참 했었다. 엄마보다 내가 더 속상했다. 그 맷돌은 나보다 오래된 우리 집 물건이다. 엄마의 손때가 묻은 살림이다. 어떤 작자들이 농촌의 빈집을 돌며 돈 될 만한 물건을 가져간다는 걸 알고 있다. 절대 찾을 수 없다는 소리다.

엄마는 그 맷돌을 보기만 해도 알아볼 것 같다고 한다. 또 몇 해 후에는 시집올 때 해 온 '반닫이(책·두루마리·의복·옷감·제기(祭器) 따위를 넣어 두는 길고 번듯한 큰 궤(櫃).)'가 없어졌다. 열쇠와 자물쇠가 신기해 어려서 내가 많이 가지고 놀았다. 그게 사라졌을 때는 급기야 엄마는 경찰에 신고했다. 나도 분했다. 엄마 살림 중에서 딱 하나 물려받고 싶었던 것이 그 '반닫이'다.   

경찰인 셋째 사위는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비관적인 수사 결과를 들려주었다. 엄마한테는 "허는 수 없는" 일이 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속상하다. 엄마에게는 두부 만드는 일이 아직까지 몸에 남아 있을까? 몸에 새겨지다시피 한 노동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밭에 난 풀만 보면 뛰어드는 양반이다.

엄마의 집은 쓰러지기 직전이다. 그 양반이 다시는 불 때고 콩 갈아 집 간수로 간을 한 집 두부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그녀의 몸에 새겨진 노동의 흔적을 찾아보는 일만 남았다. 오늘은 두부에 관한 기억이다. 그녀의 일곱째 딸이 푹푹 찌는 여름날, 선물로 받은 두부를 베어 물고 생각해 보는 일로 남았다.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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