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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통찰〉
▲ 책겉그림 〈통찰〉
ⓒ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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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박사'와 '생태학자'로 불렸던 최재천 교수가 이젠 '통섭학자'로 불리고 있죠. 통섭이 통합이나 융합과는 그 뜻이 다르지만 합침이란 차원에서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개미를 비롯한 여러 동식물들의 생물학적인 삶이 인간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말이죠.

실제로 개미들은 우리 인간처럼 분업도 한다고 하죠. 또 농사도 짓고, 대규모 전쟁을 일으켜 상대 종족을 말살시키기도 한다고 합니다. 정쟁의 승자가 되기 위해 전혀 다른 종의 여왕들과 합종연횡도 꾀한다고 하죠. 그야말로 인간 사회와 흡사한 삶을 살아가는 게 개미들의 삶이라고 하죠.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좋은 먹거리 재료로 쓰이는 홍합도 인간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고 하죠. 홍합은 접착단배질을 분비하여 그 모진 파도에도 끄덕없이 바위에 붙어산다고 하죠. 그것을 생체 접착제로 사용하면 실로 꿰매지도 않고 수술 부위를 봉합할 수 있다고 하죠. 그만큼 이 땅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들을 인간의 삶에 연결하면 더 멋진 통섭이 나오겠죠.

"인간을 비롯한 모든 개별 생명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생명을 가진 것들 사이에만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생명은 그들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과도 관계를 맺는다. 물론, 이 물리적 환경은 크게 보면 지구이다. 생명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환경에 의존하기 때문에 생명의 관계 맺기는 곧 생존의 문제이다."(196쪽)

그가 펴낸 <통찰>(최재천 씀, 이음 펴냄)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그만큼 자연과 인간과 사회를 관통하는 최재천 교수의 생각임을 알 수 있죠. 인간도 독불장군이 없듯이, 자연과 생명체들도 마찬가지겠고, 그들도 인간과 서로 영향을 주기는 마찬가지죠. 옛날에야 자연을 파괴하고 약탈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부메랑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자연과 생명체들에 대한 존엄성을 지녀야 할 때죠.

이 책은 크게 네 가지 얼개로 짜여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에 관하여, 둘째는 인간에 관하여, 셋째는 관계에 대하여, 넷째는 통찰에 대해서 생각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주제들이 재밌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생명체 곧 여러 식물과 동물들에 관한 특이점들을 인간의 삶과 비교해 준 게 너무나도 재밌고 독특한 부분이지 싶습니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를 인간이 고안해 낸 이상적인 사회 제도라고 생각하지만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동물은 인간만이 아니다. '언론의 자유, 투표의 자유, 다수결에 대한 복종, 이 세 가지가 곧 민주주의이다'라는 김구 선생님의 정의에 따르면 거의 완벽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개미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해마다 엄청난 숫자의 차세대 여왕개미들이 혼인비행을 마치고 제가끔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첨예한 경쟁을 벌인다. 이웃 나라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막강한 일개미 군대를 길러내야 주변의 신흥국가들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43쪽)

이른바 개미제국의 선거를 통해 우리나라의 선거를 생각토록 하는 내용입니다. 여왕들이 혈투를 벌일 뿐만 아니라, 일개미들이 합의하여 한 마리를 여왕으로 옹립하는 과정들도 인간의 선거제도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뜻이죠. 진정 '개미박사'다운 통찰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그런데, 최재천 교수가 어린 시절에 품었던 꿈이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정말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더욱이 2011년에 이 세상을 별세한 박완서 선생님과도 관계가 있었다니 말입니다. 2002년 <현대문학>에 '최재천의 자연에세이'를 연재하던 그때 여러 문인들의 초대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날 박완서 선생님으로부터 따뜻한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고 하죠.

그래서 그랬을까요?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이 너무 난해하거나 복잡한 생물이나 과학용어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는 것 말입니다. 오히려 인문학자와 문학도의 풍취가 물씬 풍긴다는 것 말입니다. 그만큼 식물과 인문, 동물과 문학의 관계를 넘나드는 참된 통섭의 학자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솔직히, 나는 최재천 교수가 다윈주의자라고 하여 성경이나 종교와는 거리감이 많은 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읽고 있노라면, 그 역시 신앙에 관심이 있는 분임을 알게 됩니다. 이른바 종교와 생물의 통섭을 원하는 학자 말이죠.

지난 몇 년간 <조선일보>의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라는 칼럼들을 한데 묶어서 엮은 이 책. 길지도 않고 너무 짧지도 않는 이 글 속에, 자연과 생물과 사람에 관한 그만의 생각이 두루두루 박혀 있으니, 숲속의 나무를 캐내듯, 진귀한 그의 통찰 속에서 또 다른 통섭의 사고를 캐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통찰 - 자연, 인간, 사회를 관통하는 최재천의 생각

최재천 지음, 이음(2012)


#최재천#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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