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들을 위한 동태찌개, 그러나 개도 먹지 못할 작품을 만들었다.
 아들을 위한 동태찌개, 그러나 개도 먹지 못할 작품을 만들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젊은이가 이런 것도 사러오고 기특하네."
"기특하긴 뭐가 기특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남자들도 자기 부인을 위해 시장도 보고 그러는 거지."

지난 10일 동태찌개를 끓이려고 시장을 보러 간 내게 평소 친분이 있으신 화천전통시장 할머니들이 하신 말씀이다.

"둘이 먹을 건데, 동태 한 마리하고 조그만 무 한 개만 주세요."
"동태 한 마리씩은 안 팔아, 두 마리 하고 무도 작은 건 없어 그냥 이거하고 대파 세 개 가져가."

나만의 독특한 동태찌개를 만들었다

 이렇게 준비할때는 좋았다. 그런데 넣지 말아도 될 양념들을 너무 많이 넣은게 문제인듯 하다.
 이렇게 준비할때는 좋았다. 그런데 넣지 말아도 될 양념들을 너무 많이 넣은게 문제인듯 하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집사람은 지난 11월 8일 3박4일간의 일정으로 가족여행을 제주도로 떠났다. 장인어른을 위한 여행이기 때문에 처가댁 가족과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딸아이가 함께했다. 난 직장의 일 때문에 제외되었고,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도 공부 때문에 집에 남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내는 남자들 둘 먹고 살만큼의 밥과 김치볶음, 깍두기, 김치 등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우리 저녁 통닭 시켜 먹을까?"
"그러지 뭐."

집사람이 냉장고에 넣어 놓은 밥을 데우기 싫어 첫날 저녁은 통닭, 다음날 아침은 컵라면으로 때웠는데 아들 녀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유독 동태찌개를 좋아했다. 아들을 위해 맛있는 동태찌개를 끓여 아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무성의하게 내 놓은 것 보다 동태찌개를 끓여 놓으면 녀석이 크게 감동할거라는 생각에 사온 동태찌개 재료들을 다듬었다.

시장에서 사 온 것이라야 동태 두 마리, 큰 무 한 개, 대파 세 개. 무와 대파는 괜히 사왔다. 사전에 냉장고를 점검해 보지 않은 게 잘못이다.

"아빠 뭐해?"
"어? 동태찌개 끓이려고 하는데, 어때?"
"와~ 좋지, 근데 아빠 순서가 틀렸다. 무가 먼저 익어야 하기 때문에 그걸 맨 아래에 넣고 동태는 무위에 올려놓아야 하는 거야."

자존심 상하게 짜식이 꽤 아는 척 한다. '아빠의 숨은 실력을 보여 줄 테니 너는 하던 컴퓨터나 계속 해라'는 말로 녀석을 떠밀었다.

동태를 깨끗이 씻고 무를 잘라 넣고, 대파와 물을 넣었는데, 다음에 무엇을 더 넣어야 하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을 연결해 확인해 볼 수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나만의 독특한 동태찌개를 만들고 싶었다.  

뭘 넣어야 할까! '아! 정종을 넣어야지'하는 생각에 아무리 찾아도 없다. '같은 술인데 뭐 어떠냐' 싶어 구석에 있던 소주를 넣고, 냉장고를 뒤져보니 양념이 될 만한 여러 가지 재료가 눈에 뜨인다. 생강, 상추, 멸치가루, 멸치젓, 깻잎, 고구마, 치즈, 고춧가루 등 닥치는 대로 넣었다. 양념을 많이 넣으면 맛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끓이다 소금을 넣지 않은 게 갑자기 생각나 한 움큼 집어넣었다. 

밥을 새로 해야겠다. 집사람이 냉장고에 넣어둔 찬밥을 데워 먹이는 것 보다 따뜻한 밥을 준비해 놓으면 아들녀석은 좋아하리라.

결국 개도 먹지 못할 동태찌개 작품을 만들었다

 어쩌다 밥은 또 이렇게 됐다. 이게 말로만 듣던 3층밥이구나!
 어쩌다 밥은 또 이렇게 됐다. 이게 말로만 듣던 3층밥이구나!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시간이 꽤 지나 냄비 뚜껑을 열어 무를 확인해 보니 동태찌개는 다 된 것 같은데, 밥은 벌써 20분이 넘도록 끓고 있다. '밥이란 원래 그런 거겠지' 생각하고 있는데, '뭐 탄내 나는데'라며 아들 녀석이 주방으로 들어온다.

서둘러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확인해 보니 밥 한가운데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데, 주변에는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아빠가 일부러 누룽지도 만들어 먹으려고 밥을 이렇게 한 거야. 일부러~"
"그래? 그러면 그거 아빠 혼자 먹어. 난 엄마가 해 놓은 정상적인 밥 먹을래"

 죽인지 밥인지 모를 내가 만든 밥, 끝내 아들은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밥을 먹지 않았다.
 죽인지 밥인지 모를 내가 만든 밥, 끝내 아들은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밥을 먹지 않았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원래 진밥을 좋아하지 않는 녀석은 냉장고에서 밥을 꺼내 자기 먹을 거만 데운다. 괜찮다. 내가 끓인 비장의 무기 동태찌개가 있기 때문이다. 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녀석과 밥상 앞에 마주 앉았다.

"아빠가 원래 음식 솜씨 자랑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전생에 요리사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거다. 자 먹어봐."

그런데 국물을 한 스푼 떠먹은 녀석의 인상이 이상하다.

"아빠, 동태 제대로 씻은 거 맞아? 혹시 트리오로 씻은 거 아냐? 이렇게 말해서 미안한데 솔직히 이거 개한테 줘도 안 먹을 거 같아."
"맛이 어떤데 그래?"

한 스푼 맛을 보고 냄비뚜껑을 덮었다. '이게 무슨 맛인가, 생전 처음 경험하는 맛이다.' '실은 나 별로 밥 먹고 싶은 생각 없었어'라고 말하며 녀석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제가 뭔지 더듬어봐야 했다. 동태를 씻을 때 트리오로 씻지 않은 건 맞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점심이나 저녁을 늘 밖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집사람이 만든 음식에 대해 맛이 없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조미료를 많이 넣은 식당에 길들여진 입맛은 집사람이 가족의 건강을 위한답시고 조미료를 넣지 않은 데 늘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조미료를 많이 넣으면 녀석이 맛있다고 생각할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많이 넣은 거다. 아니 너무 많이 넣은 건 괜찮다. 문제는 넣지 않아도 될 것을 넣었다는 게 원인인 인 듯싶었다.

'동태찌개를 끓였는데 맛이 이상해요'라는 맨션과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뭘 넣었는데요?'라는 질문이 들어왔다.

"멸치젓, 멸치가루, 깻잎, 오이, 고춧가루, 무, 고추, 파, 마늘, 소주, 생강, 옥수수기름을 넣었는데요."
"동태찌개는 무와 마늘, 파만 넣어도 시원하고 맛있어요. 그런데 멸치젓과 멸치가루 그리고 소주는 왜 넣으셨어요?. 그렇다고 해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여보, 당신이 만든 음식 맛없다고 해서 미안해

 아들에게 결국 김밥을 사다 먹였다.
 아들에게 결국 김밥을 사다 먹였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사실 창피해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렇게 된 원인은 딴 데 있었다. 동태찌개를 끓일 때 왕소금을 한주먹 집어넣고 온갖 양념을 다 넣은 후 맛을 봤다. 그런데 이건 짜도 너무 짜다. 그래서 국물을 다 쏟아 버리고 다시 물을 넣고 간장을 넣는다는 게 또 너무 많이 부었다. 그래서 국물을 또 버리고 물만 부었는데, 동태와 무엔 이미 소금과 간장이 충분히 배어 있어서 더 이상 소금이나 간장을 넣지 않아도 대충 적당할 것 같았다. 그렇게 완성된 동태찌개... 당연히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개를 줘도 안 먹을 작품이 되어 버린 거다.

결국 부리나케 시장으로 나가 김밥을 사다 아이에게 먹었다. 그런데 걱정이다. 밥을 한답시고 까맣게 태워 놓은 저 냄비는 어떻게 하나. 집사람이 늘 특수코팅으로 만들어진 거니까 숟가락으로 긁으면 안 된다고 애지중지 한 건데. 물 붇고 푹 끓이면 괜찮아 질려나.

음식 만드는 게 어려운 거였구나. 앞으로 집사람의 음식에 대해 맛이 있니 없니 하는 그 따위 소리는 하지 말자.


#동태찌개#화천시장#화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