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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강만희 "간신 안철수 죽여야..박 안되면 할복" 막말
ⓒ 최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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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박 후보가 대통령이 안 되면 여러분과 저희가 동성로 2가에서 할복해야 합니다. 약속하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보세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소리다. 12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구 유세에 지원 나온 중견배우 강만희씨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새누리당 대선캠프 연예인 홍보단의 일원이다. 이날 대구 동성로는 모래도 빠져나가기 어려울 만큼 박 후보의 지지자들로 가득 찼다. 강씨의 '할복' 발언에 일부 사람들이 "네!"라고 호응했다. 강씨는 박 후보를 '꼭 당선시키자'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설령 박 후보가 낙선한다 해도 동성로에 나와 할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반드시 없어야 한다.

'할복'은 누구에게 충성하기 위함인가

문제는 강씨의 '할복' 발언으로 상징되는 새누리당 지지자들 사이에 심어진 '전체주의'다. '할복'은 역사적으로 일본 무사계급들의 '명예로운 자살'로 여겨진다. 그것은 자신의 군주, 봉건 영주에 대한 충성심으로 표출된 행위였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안 되면 할복해야 한다'는 것은 과거 일본 전국시대 전쟁에서 패배한 영주의 장수들이 할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할복으로 목숨을 던진 사례가 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긴급조치에 항거하며 할복한 서울대 김상진 열사,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WTO에 반대하며 자신에 목숨을 던진 이경해 열사 등이다. 이들의 행동은 명예심과 맹목적 충성심에서 나오는 무사들의 할복과는 의식적인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 저항의 표현이 극단으로 표출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열사들의 희생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열망이었다고 하지만, 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강씨는 이날 연설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원하고 있는 안철수 전 후보를 "간신"라고 칭하며 "죽여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는 "제가 사극을 많이 했는데 간신들이 많이 나온다"며 "간신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박 후보 지지자들에게 물었다. 이어 곧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며 "대선 판에도 간신이 있다, 누구죠?"라고 다시 물었다. 지지자들은 대부분 "문재인"이라고 외쳤고, 그는 "문재인 후보는 간신이 아니고 안아무개(안철수 전 후보 지칭)가 간신"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 역시 상대 진영, 또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대한 극단의 분노를 보여준다. 지지자들 모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자리에서 강씨의 발언에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절반에 가까운 국민을 모두 '적'으로 보는 모습이다. 박 후보가 이야기하는 '국민대통합'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보수주의자' 윤여준의 연설



같은 날, 문재인 후보 캠프 윤여준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은 TV찬조연설에서 이 같은 지점을 절묘하게 지적했다.

"다른 당 후보도 통합을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대통합입니다. 그런데 통합이라는 게 뭔가요? 그분은 국민통합이라는 게 어느 한 특정집단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모든 국민이 뭉치는 것을 통합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통합이 아니라 동원입니다. 유신체제 같은 거 아닌가요?"

윤 위원장은 전두환 정권에서 청와대 비서관으로, 김영삼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전략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을 지냈다. 탄핵열풍이 불었던 2004년 총선에서 선대위 본부장을 맡았다. 당시 당 대표는 박근혜 후보였고 그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 박정희 정권 이후 사실상 한국의 '보수'를 만들어 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런 자신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윤 위원장은 선거과정에서 문 후보가 자신에게 국민통합위원장직을 제안할 당시 오갔던 대화를 털어놓으며 "문 후보는 평생을 자기와 반대진영에 서있던 저 같은 사람을 불과 두 시간 만에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대통령이 되면 잘 할 사람이 있다"며 "다소 말이 어눌하고 듣기 좋은 말 하지 않더라도 정말 잘할 사람을 알아보는 것. 그것도 국민들의 능력이고 역량"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국민들 앞에 겸손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서로 다른 이해를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민주적인 리더가 필요하다"며 "누가 더 민주적인 지도자입니까?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누가 더 적합합니까?"라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은 거의 없었다. "그건 통합이 아니라 동원입니다, 유신체제 같은 거 아닌가요?"라고 한 게 전부다. 강만희씨의 호통치는 연설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15분짜리 연설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윤 위원장의 연설은 네거티브도, 화려한 공약제시도 없었지만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평생 보수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던 한 누리꾼이 윤 장관의 연설을 듣고 문 후보를 지지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글이 공감을 얻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성 정치권이 말로만 떠드는 '새정치'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13일 오전 내내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윤여준'과 '강만희'가 나란히 순위에 올랐다. 두 사람의 연설이 극과 극 대비를 이루며 회자되고 있지만 정작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알 수 없다. 연이은 말실수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박 후보의 지지율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의 연설은 그냥 선거과정에서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이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넘어 한국사회가 누군가를 위해 '할복'해야 하는 시대로 회귀할 것인가, 미래로 갈 것인가 판가름 할 선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윤여준#강만희#박근혜#문재인#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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