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 주말(15~16일) '안철수의 깜짝 등장'과 '이정희의 깜짝 퇴장'이 단연 화제였다. 안철수·이정희 두 전직 대선후보의 행보가 주목을 받는 것은 이번 대선의 향배를 10% 안팎의 부동층이 가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선을 이틀 앞두고 마지막 TV토론까지 마친 상황에서 박근혜·문재인 두 대선후보 지지층의 결집은 끝났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따라서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의 표심 향배에 따라 대선 결과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부동층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 "'안철수 변수'보다 '이정희 변수'가 더 크다"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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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광화문 대첩' 유세에 안철수 전 후보가 '깜짝 등장'해 노란 목도리를 둘러주며 문 후보를 껴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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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반전] 문재인 지지 효과 극대화 전략?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공식선거운동 기간 마지막 토요일이었던 15일 각각 서울 강·남북에서 대규모 유세전을 벌였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은 전체 유권자의 49%를 차지하는 '최대 표밭'이다. 두 후보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전 발표된 수도권 지지율에서 초박빙 양상을 보였다. 두 후보 모두 수도권을 잡지 못하면 승리를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 두 후보 유세장에 모인 지지자들의 숫자보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의 행보에 쏠렸다. 안 전 후보의 사퇴로 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부동층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안철수 지지자들의 표심의 향배가 수도권의 판세를 결정한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따라서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의 광화문 유세에 참여할 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됐다.
사실 민주당 쪽에서는 그동안 안 전 후보의 지원 유세 내용에 대해 내심 섭섭함이 컸다. 유세차량에 올라가지 않거나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까지는 '안철수 스타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유세 내용은 민주당의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직접 지지를 호소하기보다는 투표 참여 운동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중앙선관위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 김병만씨에 비유하며 "안철수가 김병만과 다른 게 뭐냐"는 말까지 나왔다.
특히 안 전 후보는 문 후보의 광화문 유세가 예정된 지난 15일 낮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 간 네거티브 공방에 대해 우려하는 글을 트윗에 올렸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이날 안 전 후보가 문 후보 지원 유세 일정을 잡지 않은 것과 연계해서 '문재인 지지 철회'로 몰아갔다.
그러나 안 전 후보는 이날 오후 문재인 후보의 광화문 집중 유세 현장에 깜짝 등장했다. 안 전 후보는 지원 유세에 나선 이후 처음으로 유세차량에 올랐고, 마이크도 잡았다. 문 후보에게 자신의 노란 목도리를 걸어주고 포옹도 했다. 문 후보에 대한 전폭적 지원 의사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에 보기 좋게 물을 먹인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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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안철수 '깜짝 포옹' 시청하는 새누리당 기자실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집중유세에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노란목도리를 하고 깜짝 등장한 가운데, 여의도 새누리당 기자실에서 기자들이 생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이날 종편 방송을 비롯해 일부 언론들은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트위터를 통해 네거티브 혼탁 선거를 비판한 것을 '문재인 후보 지원 유세 철회'로 해석하는 기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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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식 반전'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일 캠프 해단식에서 나온 안 전 후보의 메시지는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왔다. 문 후보에 대한 '형식적' 지지와 함께 박근혜·문재인 후보 양 진영을 '구태세력'으로 규정, 싸잡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안 전 후보 쪽은 "선거법 때문"이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정치권에서는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돕기 위한 지원 유세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3일 만에 뒤집혔다. 문 후보와 안 전 후보가 전격적으로 만난 것이다. 더구나 안 전 후보는 "조건 없이 적극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겠다"면서 이번 만남이 "대선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안철수 지지 효과'는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끓어올랐다. 단일화 이후 보인 안 전 후보의 모호한 행보로 문 후보의 지지율은 박 후보에게 7~8%포인트 이상 뒤졌다. 그러나 안 전 후보가 지원 유세에 나서면서 문 후보와 박 후보의 지지율 차이가 2~3%포인트 차이로 좁혀지는 초접전 양상으로 변했다.
급기야 지나 15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 5만여 명(주최 측 추산 10만여 명)의 시민들은 안 전 후보의 등장에 일제히 "이제 이겼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안 전 후보는 이 기세를 몰아 일요일인 16일 서울 목동, 인천, 경기 일산 등지를 돌며 문 후보 지원 유세를 이어갔다. 13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박 후보에게 다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난 지역만 골라서 선택 공략에 나선 것이다. 특히 이날 문 후보나 박 후보는 TV토론 준비에 발목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수도권에서의 '안철수식 게릴라 유세'가 더욱 빛을 발했다.
안 전 후보는 17일에도 여당 강세지역으로 꼽히는 경기 성남·분당 등으로 향했다. 경기의 경우 안 전 후보의 주요 지지층인 20·40세대의 유권자수가 603만 명으로 50·60세대(333만 명)의 2배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안철수 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희의 결단] 1% 후보의 사퇴... 마지막 TV 토론에 힘 실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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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에서 답변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사퇴하면서 불참해 이날 TV토론은 첫 양자대결로 치러졌다. 사진 오른쪽 하단에 빈 채로 놓여진 이정희 후보의 자리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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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8시부터 열린 대선 후보 마지막 TV토론은 사회자를 가운데 두고 박 후보와 문 후보가 양쪽에서 마주 보고 앉는 형태로 진행됐다. 그런데 사회자 맞은편에 아무도 앉지 않은 빈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날 토론을 지켜보던 누리꾼들이나 시청자들(심지어 기자들도)은 어울리지 않게 놓여 있는 빈 의자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궁금증은 토론 중반쯤에서야 해소가 됐다. 사회자인 황상무 KBS 기자는 "(후보가) 당일 불참하게 되면 의자를 놔둬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이 후보의 빈 의자가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설명했다. 빈 의자의 주인은 바로 이날 토론을 앞두고 전격 후보직을 사퇴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선 후보였다.
이정희 전 후보의 후보직 사퇴는 갑작스러웠다. 당초 이 후보의 사퇴 여부에 귀추가 주목됐지만, 마지막 토론회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이후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전 후보의 갑작스런 사퇴로 허를 찔린 것은 새누리당 쪽이다. 이 전 후보의 사퇴로 박 후보와 문 후보 간 맞짱 토론 시간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전에 이를 준비하지 못한 새누리당은 이 전 후보의 사퇴에 대해 '민주당과의 사전 교감설'을 제기하고 나섰다.
박 후보 캠프의 박선규 대변인은 17일 오전 브리핑에서 "토론 몇 시간 전, 이정희 후보가 일방적으로 사퇴했고 이 때문에 룰까지 변경됐다"며 "이 후보는 공공연히 '박근혜를 떨어뜨리겠다'고 했고, 사퇴 시점과 본인 사퇴로 진행될 양자구도에 대해 민주당과 충분히 협의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문 후보가 충분히 준비하고 (이전보다) 더 공세적으로 토론에 나섰다"는 것이 근거였다.
이상일 대변인도 토론회 직후 논평을 내고 "이정희 후보의 목적 중 하나는 마지막 TV토론 앞두고 사퇴해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던 문재인 후보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던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 후보가 사퇴하면서 문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었고, 상대적으로 박 후보가 불리한 국면에서 토론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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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지난 16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권교체 실현을 위해 후보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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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 전 후보의 사퇴로 첫 양자 토론이 된 3차 TV토론에서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는 4대 중증질환-반값등록금-원전 등 정책마다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이며 날선 공방을 벌였다. 새누리당이 인정(?)한 대로 '이정희 사퇴 효과'는 바로 두 후보의 변별력을 높였다는 점이다. 토론을 통해 두 후보의 차별성이 명확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10% 정도로 추산되는 부동층의 표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새누리당 쪽은 "이정희 후보가 빠져서 토론이 투표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지만, 민주당 쪽은 "3차 토론은 주목도가 더 높았기 때문에 막판 부동층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 측은 이 후보의 사퇴를 종북 연대를 통한 야권의 권력 나눠 먹기로 규정하며 맹비난했다. 반면 이 전 후보가 자진 퇴장하면서 야권은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총결집해 단일 대오를 구축하게 됐다. 1997년, 2002년, 2007년 대선 때는 권영길 후보(득표율 각각 1.19%, 3.89%, 3.01%)가 국민승리21 또는 민주노동당으로 출마했다. 특히 2007년에는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5.82%)까지 가세했다.
이 전 후보 지지층이 박 후보에게 옮겨갈 가능성은 낮다. 전체 투표율을 70%로 가정할 경우 이 전 후보 지지율 1%는 약 28만 명의 유권자를 의미한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당락을 결정지은 표차는 57만 980표에 불과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한명숙 두 후보 간 표 차이는 0.6%였다. 이번 대선도 몇 십만표 차이로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초박빙 접전 양상인 막판 대선 판세에서 이 전 후보의 사퇴가 미칠 '이정희 나비효과(나비의 날갯짓이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과학이론)'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