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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짜리가 농사 지을 땅을 구해달라고 해서 1천평 밭을 얻었다고 한다. 얼마전에 만난 귀농한 친구의 아들이 그 주인공이다.

또래에 비해서 몸집이 작은 녀석의 깡다구 있는 말에 웃었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녀석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곧바로 전북 변산공동체의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에서 2년간 논농사와 밭농사를 기계나 비닐은 물론이고 화학비료와 농약도 사용하지 않는 진짜 유기순환 농사를 지어본 농부이기 때문이다.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삶에 대한 물음을 던져놓고 잠시 학교를 쉬어야겠다면서도 농사를 놓지 못하는 것을 보니 농사를 통해서 몸과 마음이 느끼는 희열을 알고 있는것 같다.

 알마출판사<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
 알마출판사<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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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안정된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변산으로 내려가 농부가 되어 공동체를 만들었던 윤구병. 마을공동체가 자급을 하고 안정이 되자 또 다시 가진 것을 내려놓고 마을밖으로 거처를 옮긴 변산농부는 자신이 경영하는 보리출판사에서 직원들의 6시간제 근무를 별 탈없이 운영하고 있다. 언론인 출신의 손석춘 교수와의 대화집 <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가 나왔다. 제목에서 '농촌을 살려라'를 굵게 쓴 것은 농촌이 처한 현실과 나라의 식량위기가 곧 멀지 않았음을 직감으로 느꼈다.

"지금 건강한 생산영역 가운데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 농업입니다. 농촌은 평화의 근거지이자 생명의 뿌리이지요. 말하자면 우리 목숨을 지키는 겁니다. 우리 목으로 드나드는 숨을 목숨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런 일에 가장 직접적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투입하는 사람들이 농민인데, 지금 국회 보십시오. 농사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지금 국회의원 가운데 누가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한테 정치를 맡겨서 정치가 잘 되기를 바랍니까?" -본문 20쪽.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금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2.6%로 해마다 그 수치는 낮아지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도 300만 아래로 뚝 떨어졌다. 고령화된 농촌의 일꾼들 대부분이 농업에서 이탈하게 되는 5년뒤에는 지금의 식량자급률이 반토막 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며, 그때가서 농촌살리기는 어림도 없다. 식량위기는 곧 민심이 흉흉해지는 것이며 먼나라의 일이라고 여겼던 식량폭동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튀니지의 쟈스민 혁명과 아랍의 봄 도화선이 된 직접적인 계기는 민심을 이반한 정치와 경제침체 속에서 곡물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의 에그플레이션이 있었다.

대학졸업후 안정된 직장을 얻지 못하고 계약직과 시간제근무를 몇 년째 하고 있던 사람에게 농촌에 가서 농사를 지어보는 것은 어떠냐고 말했다가 힐난을 받은 적이 있다. 대학 나와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부모님이나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한심한 놈으로 보겠냐는 것이었다. 귀농을 선택했다가도 부모의 완강한 반대로 포기하고 비정규직이나마 적은 월급이라도 안정적으로 나오는 것에 위안을 삼는 젊은이들을 볼 때면 우리의 교육을 탓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변산농부는 지금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한다. 먹물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한다는 것이다. 머리를 쓰는 일보다는 스스로 몸과 손을 쓰는교육을 통해서 제 앞가림으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물론,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이 필요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교육현실이 제 스스로 앞가림을 못하도록 하는 교육시스템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라고 본다. 머리굴리는 학교교육은 하루 세시간이면 충분하고 나머지는 몸의 유연성을 길러주는 텃밭농사나 풍물이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변산교육공동체에서는 머리 굴리는 교육은 하루 세시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는 몸으로 배우고 느끼는 농사나 풍물같은 몸놀이 교육을 한다. 기자는 몇 년째 중학교에서 동아리나 방과후 수업으로 아이들과 텃밭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교실에서 하는 이론수업을 처음에 준비했다가 아이들의 결사반대로 한번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하루종일 교실에 앉아 있어야만 하는 아이들에게 텃밭활동은 굳었던 몸을 풀수 있는 유일한 자유시간이었던 것이다.

변산농부는 철학을 전공하고 가르쳤던 교수다. 그가 펴낸 책들을 읽어보면 글들이 쉽게 읽힌다는 것을 느낀다. 누구나 쉽게 읽을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게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음을 이 책에서도 알수가 있다.

일병, 이병, 삼병으로 시작하는 형들의 이름, 아홉번째라서 구병이라는 변산농부는 막내다. 열 번째 동생이 생겼다면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오지만, 한국전쟁중에 여섯명의 형을 잃은 아픔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정치란 '다사롭게 다 살리는 일'이며 2030세대 절반을 농촌으로 보낼수 있는 대통령이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일흔살의 변산농부는 언제 어떻게 죽어도 '자연사'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 - 변산농부 윤구병과의 대화

윤구병.손석춘 지음, 알마(2012)


#농부#변산공동체#윤구병#농촌#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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