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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고미숙의 〈윤선도 평전〉
▲ 책겉그림 고미숙의 〈윤선도 평전〉
ⓒ 한겨례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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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부터 17세기 말, 정치 초년생이던 30대 때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 정점에 서 있던 이가 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시류에 떠밀리지 않고 오직 외곬으로 치열한 대립을 이룬 이가 그다. 바로 고산 윤선도를 두고 하는 평가다.

그 때문에 격정의 정치적 논객으로만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이들이 그렇다. 하지만 자연미를 노래한 언어의 연금술사로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시와 언어와 노래를 즐겨하는 쪽의 시선이 그렇다.

그런 이중적인 평가와 더불어 또 하나 추가할 게 있다. 이른바 그가 '보길도의 제왕'으로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삶을 살았다는 게 그것이다. 녹우당의 위풍당당함과 해남 윤씨 문중의 방대한 토지가 그를 짐작토록 하기 때문이다.

그렇듯 고산의 평가가 다양하게 엇갈린다. 하여 이를 하나로 관통할 수 있도록 그의 역사 구슬을 조리 있게 꿰맨 책이 있다. 고미숙의 <윤선도 평전>이 그것이다. 이 책은 '인간 고산'의 진면목을 들여다보면서도, 그의 위대한 작품이 나온 배경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그의 삶과 문학의 흔적들을 탐사하는 우리의 긴 여로는 이 이질적인 초상들의 간극을 하나하나 매워가는 과정이 되어야 할 터이다. 여행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이 여러 얼굴이 하나로 포개져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간 고산'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서. 그러기 위해 우리는 17세기 중앙 정계의 한복판과 금쇄동과 부용동, 그 그윽한 골짜기를 수없이 넘나들어야 할 것이다.(31쪽)

사실 17세기 중앙 정계는 복잡다단했다. 조선전기와 후기의 분수령이 되었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쟁이 치러졌고, 훈구파를 쳐낸 사림파가 권력분점을 두고 격렬하게 내분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때 고산은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 고미숙은 <효종실록>에 나오는 글을 인용하여 고산의 기질적 토대에 집중한다. 이른바 그의 불같은 성미가 그 자신을 정쟁의 한가운데로 계속 몰아넣는 계기가 되었고, 그것은 그가 은거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른바 그는 광해군 집권 초기에 정계에 진출하는데, 그 초입에 정국을 주도하던 대북파의 수장 이이첨과 박승종과 유희분을 신릴하고도 독기에 찬 어조로 비난하는 상소문을 올린다고 한다. 이름하여 <병진소(丙辰疏)>가 그것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그는 31세 때 함경도 경원에 유배되어 8년 동안 혹독한 시련의 기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8년간의 유배생활은 인조반정을 계기로 끝마치는데, 그 뒤로도 그는 5년 동안 중앙 정계에 진출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미숙은 모두가 그의 강직한 성품과 더불어 <병진소>를 그 원인으로 생각한다.

한편 고미숙은 병자호란이 조선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그의 생애에 큰 분수령이 되었다고 밝힌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 비극의 절정에 그의 문학이 한껏 꽃을 피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른바 부용동과 금쇄동을 발견한 것과 아울러 고산의 대표작이자 한국의 고전시가인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를 남겼다는 것 말이다.

<어부사시사>는 전체가 모두 4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춘하추동 각 계절마다 10수씩 배치되어 있다. 맹사성의 작품 구조와 일치한다. 하지만 양에 있어서는 비약적으로 증식되었다. 어부의 시선으로 사계절의 순환을 깊고 넓게 표현하겠다는 야심찬 의도가 깔려 있다.(193쪽)

고미숙은 고산의 나이 66세 때 효종의 배려로 세상 속에 귀환하지만 85세가 되어 생을 마감하기까지 송시열 등 여러 정객들에 의해 그 뜻이 꺾인 지점들에 의미를 둔다. 그와 아울러 그때마다 산고를 겪으며 태어난 위대한 작품들에게도 초점을 맞춘다. 그만큼 그의 '불화'야말로 독특한 미학을 창출한 원동력이었음을 평가한 것이다.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모든 천재적인 작품은 고통 속에서 태어나기 마련이다. 뭔가 부족함이 있어서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니 말이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고불면의 법칙이다. 고산도 그의 성품상 수많은 정객들에게 희생당한 비운의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것이 그의 천재적인 작품을 낳는 또 다른 자산이 될지 누가 알았으랴?


윤선도 평전 - 정쟁의 격랑 속에서 강호미학을 꽃피운 조선의 풍류객

고미숙 지음, 한겨레출판(2013)


#고산 윤선도#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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