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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이 공개한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본 24일 오후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 여야 의원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제작한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본의 표지.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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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지난 24일 공개한 '2007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 속 대화는 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이어갔으며, 간간이 양측의 배석자들의 대화가 등장한다.
대화록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양 정상이 비교적 솔직한 분위기 속에서 터놓고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화록에 기록된 발언을 중심으로 정상회담 당시 김 전 위원장의 속내를 살펴보았다.
우선 김 전 위원장이 북측 군부 강경파를 의식하는 듯한 언급을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대화록에서 김 전 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이 경제협력의 대상지로 '해주 특구'를 제시하자 군대가 반대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 전 위원장 군부 강경파 존재 언급 눈길노 전 대통령이 "해주 지역에 기계·중화학 공업 위주의 서해 남북 공동경제특구를 설치하면 개성·해주·인천을 잇는 세계적인 공단, 나아가서는 경제지역으로 발전이 가능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김 전 위원장은 "군사적인 측면으로 대통령님께 솔직히 말하는데… 개성도 군사적으로 많이 양보한 거고… 개성은 평화의 상징이라고 해서 많이 양보했는데, 해주는 솔직히 내가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말하는데 군사력이 개미도 들어가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집중된 데인데···"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어 "그래서 제 얘기는 그걸(해주 특구) 만약 하자고 하면 앞으로 개성에서 어떤 모범을 보이고 실제 그만한 걸 희생시키면서라도 공단을 차려 민족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걸 우리가 납득할 수 있을 때 그땐 우리 해주를 주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항상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하라고 합니다. 이번에 군부가 개편이 되서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평화협력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군부라는 것은 항상... 북측에서도 우리가 얘기 듣기로는 마찬가지 아닙니까?"라고 하자, 김 전 위원장은 "완고한 2급 보수라 할까요?"라고 받았다.
김 전 위원장은 "미국과의 문제가 우선 기초적으로 안정이 되면 국내적으로 쌍방이 대치하고 있는 분계선은 앞으로 점차 전환되지 않겠는가. 전환되는 걸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 군부가 아마 그래서 법석을 떠는 게 아닐까. 모든 게 정황이 주변 정세가 안정이 되고 이렇게 되면 당연히 군부가 있을 자리가 없죠"라고까지 말을 했다.
김 전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내각과 경제인들이 노 전 대통령이 제시한 해주 특구에 찬성하더라도 군부 강경파가 반대할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하지만 북한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이 발언을 협상파와 강경파가 대립한다는 걸 넌지시 밝힘으로써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고자 하는 김 위원장의 의도된 발언으로 평가했다.
"고립이 아니라 진짜 자주를 해야" 충고에 김 전 위원장 "옳습니다" 화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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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 10월 3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장관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
ⓒ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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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상은 '자주'의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먼저 "남쪽 사람들이 자주성이 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자꾸 비위 맞추고 다니는 데가 너무 많다, 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라고 공세의 말문을 열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왔습니다. 그리고 친미국가입니다. 사실… 객관적 사실입니다. 그것이 해방될 때·· ·그리고 분단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그리고 한국전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어서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고 답변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남북이 말하자면 완전한 협력관계에 들어서고 북측이 국제관계에 들어서고 나면 쫓아내지 못하거든요. 지금은 세게 하면 고립이 되지만, 자리를 잡고 난 뒤에 세게 하면 자주가 되거든요. 자주가 고립이 아니라 진짜 자주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라고 설득하자 김 전 위원장이 "옳습니다. 노 대통령님 견해를 충분히 알았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개성공단 성과 없이 추가 공단조성에는 부정적김 전 위원장이 개성공단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드러낸 부분도 주목된다.
김 전 위원장은 "북남경제협력사업은 단순히 경제거래가 아니라 민족의 화합과 통일, 번영에 이바지 하는 아주 숭고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이 제안한 해주공단, 조선단지 조성 문제 등에 대해선 "우리나라가 조그만 땅인데 다 뜯어 공단들만 하려고 하면 우리가 이때까지 이룩한 민족자주경제는 파괴되고, 시장경제에 말려 들어가고, 주체공학이 없어지고 하는 이런 정신적인 재난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시기(상조)…"라고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의 불만이 남북 경협사업 자체에 대한 회의라기보다는 기업 주도로 추진되는 경협사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도 대화록에 나타난다.
김 전 위원장은 현대그룹 등 민간기업 주도로 추진되는 경협사업의 부진에도 불만을 표시하면서 "뭐든 의견을 내놔서 합의가 되면 남쪽 정부가 나서서 하는 걸로 돼야지, 그 기업단위로 했다가는…"이라며 정부 주도 사업을 희망했다.
그는 또 개성공단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남측과 주변국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입장도 내비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가 관여됐고 주변나라들이 관여됐고, 그게 번영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재봉집 하나도 허용되는 게 따로 있다"는 등의 김 전 위원장의 언급은 이런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