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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우 기자의 책 <나는 읽는다>의 표지.
 문정우 기자의 책 <나는 읽는다>의 표지.
ⓒ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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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화혁명 시절, 마르크스 전집이나 마오쩌뚱 어록 따위를 빼놓고는 모두 금서였다고 한다. 당시 한국인은 마르크스 전집류 같은 금서를 읽을 수 없어 목이 말랐고, 중국인은 바로 그 금서만 읽을 수 있어서 애가 탔던 것이다. 기나 긴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다시 출판의 시대가 찾아왔을 때 새 책이 나오면 중국의 서점 앞줄은 끝이 없었다고 한다.

인간 정신의 복제는 태곳적부터 계속돼왔다. 문자가 생기기 이전에는 구전으로, 이후에는 책이라는 형태로 인간은 지적인 번식을 멈춘 일이 없다. 모든 위대한 이들의 깨달음뿐만 아니라 슬픔과 기쁨마저도 책 속에서 살아 숨쉰다. 흔히 책에 생명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칼럼도 아닌 것이 서평 같지도 않고, 보기 드문 형식으로 서평을 묶은 책 <나는 읽는다> (문정우 씀, 시사IN북 펴냄)도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읽었던 책들의 독후감이자  저자의 경험과 세계관 그리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글의 뼈대를 이룬다는 점에서 칼럼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에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오로지 111권의 책들이다.

오랜 세월 일해온 노련한 기자답게 그의 글은 현학과는 거리가 멀어 읽기가 편하다. 간결하고 쉬우며 속도감이 있다. 복잡한 내용을 단순하게 풀어서 적절한 비유와 함께 설명을 해주니 어렵기만 했던 경제서와 과학책도 쉽게 다가온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100권이 넘는 많은 책들을 소개한다. 서평도 분야를 나눴는데, 경제는 '상실', 역사는 '뒤틀림', 과학은 '행성'으로 명명해 관심분야를 찾아 먼저 읽어볼 수도 있어 좋다.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딱히 누구네 집 자식이랄 것도 없이 요즘에는 젊은이만 만나면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들이 앞으로 살아낼 미래가 가난과 독재로 얼룩진 내 과거보다도 험악해 보여서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세대를 손가락질하면서 제멋대로이고 싹수 없다고 핏대를 올려야 어쩌면 정상이다. 그러기에 앞서 측은한 마음이 든다면 그 사회에는 노란 불이 들어온 거다.(본문 '상실'편 가운데)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왜 불행한지는 전철에 붙은 광고판이나 라디오에 나오는 대학의 광고, 대학 정문에 붙은 플래카드를 보면 이해가 된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 한국 대학에서는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슬로건으로  대학은 취업학원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저자가 보기에 기업이 대학의 교육과정을 좌우하게 만드는 것은 사자 입 안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만큼 위험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더구나 정부까지 나서서 취업률을 대학평가 기준으로 삼고 그에 따라 대학지원금을 결정하는 것은 미국처럼 기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라에서도 상상 못할 일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두 대기업 예비사원 연수원으로 변질되면서 우리 아이들의 고통과 부작용이 커져만 가고 있다. 세계를 지향한다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옆 사람조차 배려하지 못하는 인성을 갖게 된 중요한 이유다. 아무리 번듯해 보이더라도 한 사회의 교육을 책임질 만큼 선하고 현명한 기업이란 없다. 기업의 본질적인 속성은 공공의 선 추구가 아니라 이익의 극대화에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의 미소 속에서 비로소 행복해지는 본연의 모습을 잃은 탓에 불행하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네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그래야 비로소 희망이라는 걸 가질 수 있다고.

제1부 '상실'편의 '솔직히, 한국 사회는 망해간다'에서, 제2부 '뒤틀림'편의 '위키리크스라는 거울에 비친 거대 언론'에서, 제3부 '인간'편의 '물질의 지배를 받아들인 시대의 저주'에서, 제4부 '행성'편의 '재앙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등에 나오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서 20세기를 관통해 21세기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잘못된 신념과 비상식,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법한 의문들을 기자 특유의 경험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의심하고 통찰하며 독자들을 일깨운다.

책장을 덮고, 내 세계는 변했다

까마득히 높은 다이빙대에서 다이버가 몸을 풀고 있다. 넓은 수영장은 맨바닥을 드러낸 채다. 과학자들이 다이버에게 안심하고 뛰어내리라는 신호를 보낸다. 다이버가 떨어지는 동안 수영장에 물을 대겠다는 것이다. 핵의 평화적 이용이란 바로 그처럼 위험천만한 짓이다.(본문 '행성'편 가운데)

현대 생활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은 철저하게 얽혔다. 인터넷은 전력망에 의존하고, 전력망은 다시 석유·석탄·핵발전에 매달리고 또다시 전기를 필요로 하는 제조기술과 엉킨다. 그렇게 하나의 시스템이 다른 시스템에 쌓인다. 전체적으로 겉모양은 그럴듯하지만 고리는 놀랍도록 연약하다. 노후한 시설, 책임감 없고 무능하거나 부패한 관리자가 도처에 숨어 있다. 그래서 이 같은 시스템의 복잡성이 매우 드물고 경악스러우며 사회적 파괴력이 엄청난 사건(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을 초래한다.

저자의 서평에 소개된 < X이벤트 >(이현주 옮김, 반비, 2013)에서는 우리나라와 주변에서 앞으로 몇 년, 혹은 몇 주 안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X사건'들이 나와 눈길을 끈다.

- 한국 최대 기업 삼성에서 내부 스캔들이 비화돼 그룹 전체가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거나 법정 소송에 휘말린다.
- 중국 경제가 내부 혼란으로 붕괴한다.
- 인터넷이 갑자기 멈추는 일이 빈번하고 예측 불가능하게 일어난다.
- 북한 내부에서 혼란이 확산되어 북한 주민과 군인이 경계지역을 넘는다.

이밖에도 남성 속의 괴물을 봉인하는 방법, 세계화의 산물 구제역, 1kg에 24톤의 물이 들어가는 쇠고기 이야기, 그 나라의 민주화 수준을 말해준다는 강(江), 금반지를 선물해서는 안되는 이유 등은 매우 시사적이며 읽는 이로 하여금 지적만족과 상식적인 세계관, 삶의 통찰을 함께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 111권의 책들이 담긴 책장을 덮으니 정말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 같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물밀 듯 들어오는 동독사람들에게 서독 정부는 환영금을 주었다. 사람들이 그 돈을 들고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어디였을까? 화장품이나 옷 가게 못지않게 사람들이 많이 몰린 곳은 레코드 가게와 서점이었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은 의식주를 채우려는 마음 못지않은 강력한 본능인 셈이다. 요즘 같은 휴가철이야말로 허리띠 푸르고 독서본능을 채우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싶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읽는다> 문정우 지음 | 시사인 펴냄 | 2013년 4월 | 15,000원



나는 읽는다 - 독서본능 문정우 기자가 만난 울림 있는 책

문정우 지음, 시사IN북(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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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는다#문정우 #시사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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