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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있으면, 그의 곁에는 항상 보좌관이 있다. 의원의 의정활동 상당 부분에 보좌진의 손길이 미쳐야만 한다. 그러나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가슴팍에 배지를 단 의원뿐이다. 그렇다면, 늘 그림자처럼 뒤를 지키는 보좌진들의 생활은 어떨까. 밤을 새워 일해 국회의원을 빛나게 하지만, 평생 '4년짜리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보좌진들의 정치 역정 스토리를 들어보자. [편집자말]
 곽현 보좌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 담론을 끌고나오자, 민주당 정책연구원에서 일하게 됐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내 일자리를 만들어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곽현 보좌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 담론을 끌고나오자, 민주당 정책연구원에서 일하게 됐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내 일자리를 만들어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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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내 일자리를 만들어줬다"는 사람이 있다.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그는 "4대강 사업만은 막겠다"며 죽자 사자 매달렸다. 강정마을에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해 국회 보좌관 최초로 제주 앞바다 스쿠버 다이빙까지 감행하기도 하다. 곽현 보좌관(우원식 민주당 의원실) 얘기다.



곽 보좌관 인터뷰는 민주당 소속 한 보좌관의 한마디로 시작됐다. 보좌관은 "그 사람은, 아직도 운동가의 마음을 갖고 있는 거 같다. 국회 때가 덜 묻었달까. 일해서 바꿔내려 하는 의지가 보인다"며 곽 보좌관을 '나는 보좌관이다' 인터뷰 대상자로 적극 추천했다.



국회에 들어온 지 9년차인 곽 보좌관에게 여전히 '운동가 같은 순수함'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일 곽 보좌관을 직접 만나봤다.



"국회 보좌관이 된 건, 나에게 날개를 달아준 일"



2004년, 환경정의시민연대 정책실장이던 그는 7년을 꼬박 일한 끝에 얻은 1년의 안식년을 즐기고 있었다. 환경운동 8년차 변화가 필요하던 시기였다. 그 때 국회발 채용 제의가 날아왔다. 우원식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의원실에서 환경 분야를 담당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국회 입성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캠페인과 운동만 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던 차에 국회에 들어오니 정보가 넘치더라. 정말 즐거웠다. 진짜 재미있게 활동했다."



17대 국회 초반 보좌관 활동은 그에게 '날개'로 기억되고 있다. 곽 보좌관은 전국구로 뛰었다. 전국적인 환경영향평가 현황 자료를 구축한 것이 첫 번째 일이었다. 당시만해도, 개발 사업이 진행될 시 환경영향평가를 받고 사업 승인이 나야 공사가 진행되는데 영향 평가를 받기 전부터 공사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 이를 어겨도 대책이 없던 상황. 곽 보좌관은 우원식 의원을 도와 전국적인 환경영향평가 현황 자료를 만들어 발표하고, 규제책도 만들었다.



그 다음 '전국구 이슈'는 5대강 도보순례다. 2005년 섬진강을 시작으로 매해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도보순례를 계획했다. 첫해, 꼬박 9일을 걸어 섬진강 시작점부터 끝까지 돌아본 우 의원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그만의 정치 철학을 도보순례를 통해 새겼다고 한다. 곽 보좌관은 "국회 와서도 환경운동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 때 이미 우 의원과 곽 보좌관은 알았다고 한다. "강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천을 살리는 게 핵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강 순례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물 관리 일원화가 그것. 당시 수질관리는 환경부가, 농업용수는 농림부가, 수량 관리는 국토부가 맡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역관리를 위해서는 전체를 한꺼번에 볼 수 있어야 했다. 이에 우 의원실에서 건교부(현 국토교통부) 광역상수도 기능을 환경부에 이관하는 안을 내놓자 국회 국토해양위가 당장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이해관계'에 따른 반발이었다. 참여정부였음에도 이 문제는 부처 간 혹은 상임위 간 의견 조율이 어려웠고, 끝내 해결되지 못했다. 곽 보좌관으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감사원이 1차 감사만 제대로 했어도..."


 
 국회 입성은 곽현 보좌관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캠페인과 운동만 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던 차에 국회에 들어오니 정보가 넘치더라. 정말 즐거웠다. 진짜 재미있게 활동했다."
 국회 입성은 곽현 보좌관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캠페인과 운동만 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던 차에 국회에 들어오니 정보가 넘치더라. 정말 즐거웠다. 진짜 재미있게 활동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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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을 뒤로한 채 17대 국회가 끝났다. 이후, '대운하'를 내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다. "당신이 강을 아느냐"고 얘기할 수 있던, 실제 현장에서 강을 걸어 본 우 의원은 그러나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고 말았다.



동시에 일자리를 잃은 곽 보좌관에게 일자리를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곽 보좌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 담론을 끌고나오자, 민주당 내에서 환경 담당자가 필요해졌고 민주당 정책연구원에서 일하게 됐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내 일자리를 만들어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민주정책연구원에 몸 담은 1년 동안 일자리를 만들어준 이명박 대통령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싸웠다. 4대강 현장도 수시로 방문했다. 시료 채취를 비롯해 강둑이 무너진 현장 등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러다 이미경 민주당 의원실로 거처를 옮겼고, 그 곳에 들어가서도 4대강만 팠다. 그렇게 모은 자료가 수 백 기가바이트에 달한다.



그렇게 싸웠지만, 정권이 넘어간 상태에서는 그 무엇도 막아내지 못했다. 곽 보좌관은 "지천이 무너질 거고, 녹조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자전거 도로는 죽음의 도로가 될 거라고 얘기했던 게 다 진실로 드러났다"며 "기분이 묘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허탈하다"고 토로했다.



곽 보좌관은 "감사원이 1차 감사만 제대로 했어도 이 사태까지는 안 왔을 것이다, 또 환경부 쪽 공무원들은 정권에 달라붙어 나팔수 노릇을 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문제의식에도 조치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정권을 찾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권을 잃으면 역사의 죄인인 거"라고 자조했다.



9년차를 맞는 보좌관 생활은 그에겐 희열과 좌절을 동시에 맛보게 한 세월이다. 더불어 관성화된 것들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17대 때, 반환 미군기지 오염 관련해 환경노동위원회가 역사상 처음으로 국방부·외교부·환경부 장관을 다 불러서 청문회를 연 일이 있다. 당시 수많은 보좌관들은 안 될 일이라며 고개부터 저었다. 그러나 우 의원과 곽 보좌관은 달랐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결국 청문회를 성사시켰다.



19대 때, 다시 우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고리 1호기 가동 중단 관련 공청회를 열려고 했을 때도 주변에서는 "왜 이렇게 복잡한 일을 사서 하냐, 안될 거"라는 얘기가 주를 이뤘다. 그럼에도 공청회를 열었고 고리 원전 관련 비리를 캐내는데 크게 일조했다. 곽 보좌관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이뤘을 때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숨은 영웅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이 새정치"


 
 19대 들어, 다시 우원식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고리 1호기 가동 중단 관련 공청회를 열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왜 이렇게 복잡한 일을 사서 하냐, 안될 거"라고 얘기했다. 그럼에도 공청회를 열었고 고리 원전 관련 비리를 캐내는 데 일조했다. 곽현 보좌관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이뤘을 때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19대 들어, 다시 우원식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고리 1호기 가동 중단 관련 공청회를 열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왜 이렇게 복잡한 일을 사서 하냐, 안될 거"라고 얘기했다. 그럼에도 공청회를 열었고 고리 원전 관련 비리를 캐내는 데 일조했다. 곽현 보좌관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이뤘을 때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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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환경 문제에 천착했던 곽 보좌관은 요즘 우원식 의원이 위원장인 '을지로(을을 지키는 길) 위원회'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과 보좌관들이 새벽 2시에 대리기사들이 모인 현장에 가서 얘기를 들었다. 이런 게 국회다 싶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사회 마지막 단계에 몰린 이들의 억울함을 얘기하는 자리, 이런 게 정치다.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실핏줄 같은 숨은 영웅들을 발굴하고 목소리를 부여하는 게 정치다. 보좌관으로서 관성의 때가 묻을 시점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일이 '을지로 위원회'인 거 같다."



"남은 의원 임기 3년 동안 내내 을지로위원회를 가동할 거"라는 확신에 찬 우 의원과 "'을지로위원'회는 을들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민주당 변화의 이정표"라는 자부심에 찬 곽 보좌관. 환상의 콤비가 뛰고 있다.



그런 곽 보좌관이 또 꽂힌 게 있다. '국회새정치연구회'가 그것이다. 19대를 맞아 시민사회 출신 의원이 대거 투입되면서 자연스레 시민사회 출신 보좌진들도 다수 국회에 입성했다. 시민사회 출신 보좌진들은 자연스레 모임을 구성했고, 60여 명의 보좌관이 모인 '국회새정치 연구회'는 그렇게 탄생하게 됐다. 이들이 뜻을 모은 바는 "국회와 정치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점이다. 또 "낮은 데로 내려가서 성과를 내고 직접 얘기듣고 현장에서 답을 찾는 정치가 새정치"라는 인식이다.



새정치연구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곽 보좌관은 '보좌관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는 "'어떻게 하면 국감을 잘 할 것인가' 이런 게 보좌관의 기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며 "영혼 있는 보좌관을 만들기 위해 그런 사례들을 만들어서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국회를 방문한 시민들이 본청 뒷문을 통해서 입장하는 관행을 고쳐 1층은 의원통로, 2층은 국민이 이동할 수 있게 바꿔 '국민이 국회의원 위'라는 상징을 세우고 싶은 것도 그의 꿈이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는 곳은 아니지만, 자기가 움직이는 만큼 조금이라도 바꿔낼 수 있는 곳. 그에게 국회는 그런 장소다.



곽 보좌관에게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에게 국회 보좌관이 되는 것을 추천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물론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곽 보좌관은 "시민사회 쪽이 국회를 참 모르는데, 시민사회가 정치인과 함께 호흡하며 자꾸 좋은 정치인을 만들어야 한다"며 "내부에 들어와서 일하면 그런 부분을 훨씬 더 잘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 시민사회 출신이 가진 철학과 콘텐츠를 제도와 법, 예산에 접목 시키면 국회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현#우원식#4대강#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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