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충북실버문화예술제 리허설장면 이른 아침에 모여서 리허설 하는 장면..일하는 노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박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 충북실버문화예술제 리허설장면 이른 아침에 모여서 리허설 하는 장면..일하는 노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박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 이영미

관련사진보기


한낮의 햇볕이 참 뜨거웠다. 무거운 아코디언과 보면대를 공연장과 연습장소 그리고
다시 공연장소로 운반하던 난 뜨거운 햇볕과 구름 그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별들과도 인사를 했다. 밤이 되면 밤이기에 별이 잘 보이는 것일 뿐 사실은 한 낮에도 별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알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기자재를 비롯해서 생수와 기타 준비물을 챙겨 공연장으로 향했다. 빠진 어르신들을 체크하고 리허설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식당에 연락해 근처 성당의 교육관에서 100여 명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오르간을 쓸 수 있는 교실도 확보해서 리허설을 하고 난 후 연습을 하게 했다.

다시 부지런히 공연장으로 가서 악기 2개 팀의 악기를 점검하고 의상도 체크하고 무대와 무대 뒤와 관중석으로 오가면서 조명을 잘 받는 위치와 마이크와 음향CD도 체크하였다. 난 머리를 써서 마음을 담아 무언가 새로 만들어 내는 기획자지만 현장에서는 몸뚱이를 모두 활용해서 급하면 뭐든 해야 하는 온갖 잡역을 맡고 있는 셈이다.

구름이 끼인 밤에도 별들과 인사를 하는 마음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몇 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40~50명 하던 등록회원이 "재미없다"면서 자주 결석을 할 때도 있었고, 부르면 달려가서 노래하고 싶어하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실력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말렸던 분도 계셨다.

그저 지나가는 구름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외롭고 힘들었다. 그래도 정말로 웃는 사람은 일이 잘 안될 때도 웃을 것이고, 정말로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담아 부르는 것이라고, 우리끼리 서로 토닥였고, 꾸준한 노력과 마음과 마음을 합하여 한결같이 진심을 다하면 자연스럽게 냇물이 모여서 강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충북도문화예술제 우수상 수상 크로마하프 리허설 크로하프가 리허설 하는 장면..6번의 암수술 받은 할머니도 있다
▲ 충북도문화예술제 우수상 수상 크로마하프 리허설 크로하프가 리허설 하는 장면..6번의 암수술 받은 할머니도 있다
ⓒ 이영미

관련사진보기


한 여름, 우연히 지역 KBS-TV방송국에서 합창반과 연관하여 10분짜리 다큐를 만들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 합창반이 특이해서가 아니라 그저 예정된 어떤 단체가 펑크를 내었고 방송을 내보내야 하는데 시간은 나흘 밖에 없었단다. 기획자인 나와 내가 만든 음악반들의 이야기를 이런 저런 언론을 통해 알게 돼서 그냥 연락을 한 것 같았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우리가 믿은 것은 그냥 꾸준히 부르던 노래들이었다. 언제라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 꾸밈없는 웃음을 나눌 줄 알았기 때문에 주변과 상의 한 후 일단 다큐를 찍겠다고 콜 하였다.

그리고 나는 사흘 동안 정말 울트라 짱이 된 것처럼 무지 바쁘게 머리 따로 몸따로 무지 바쁘게 움직였다. 있는 그대로 찍는다 하더라도 얼굴이 나가는 방송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간의 품위와 집단의 품격은 그래도 예의상 갖추어야 했다.

평소에 하는 일들을 그대로 하면서 새롭게 추가로 일을 하나 더 하는 것을 누군가는 욕심이라고 표현도 하지만, 그냥 고맙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또 좋은 기회는 예고해서 오지 않고 우연히 샛별처럼  온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놓칠 수 없는 이 좋은 기회가 온 폭염이 가득했던 어느 날에, 나는 방학중인 어르신들에게 부지런히 문자메시지를 돌렸다. 마치 번개팅을 알리는 문자처럼, 한 여름날의 즐거운 마실모임을 알리는 문자처럼 보냈다.

"아래에는 청바지도 치마도 모두 괜찮고 색도 빨강색이든 검은색이든 상관없으니 윗 부분만 하얀색의 옷을 입고 오세요. 티셔도 블라우스도 모두 상관없어요!  방송촬영하면서 우리 번개팅모임해요! 좋아하시는 수정과랑 식혜 준비할게요."

지휘자 선생님은 아프셔서 못 부르고 반주선생님이라도 꼭 와주십사고 하고 청을 드리고 식혜와 수정과랑 떡이랑 과일을 소박하게 준비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즐겁게 노래하는 어르신들도 인터뷰 할 수 있게 소개하고, 암 수술을 여섯 번 받아 안면마비가 되어도 웃으며 노래하는 할머니와 십 수년 째 혼자 사시는 80대의 독거할아버지에 대한 자료도 만들었다. 그러면서 왜 우리 합창단이 맑은노인이란 뜻의 청노인지를 적어 내레이션에 참고하라고 구성작가에게 보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담당 PD에게는 지난 수 년 동안 합창단의 이런 저런 공연사진과 신문자료 등을 스크랩해서 보냈다. 방송은 깔끔하고 진솔하게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합창단이 마치 학생들의 맑고 진솔한 교실모양처럼 그러나 스토리가 있는 그러한 구성으로 잘 만들어졌다.

방송이 나간 후... 다시 되돌아오는 회원들과 방송을 보고 부담 없이 노래하고 싶다던 분들이 들어와 합창단은 활기를 띠었다. 이왕에 생긴 활기에 탄력이 생기게끔 자체 예산을 만들어서 일주일에 세 번의 연습시간을 추가로 편성했다.

발성과 호흡도 다시 하고, 입모양도 예쁘게 하기보다 소리가 잘 나오는 악기로서의 입모양을 만들고 파트별로 다시 역할을 나누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딱딱하기 그지 없던 지휘자 선생님도 어느 순간부터 열정적으로 지도하시기 시작했다.

오늘(1일)은 참 운수 좋은 날이다. 나름대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합창반이지만 운 좋게 대상을 수상했다. 대상을 수상한 기쁨보다는 앞으로 합창반이 한결같이 하모니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안도의 감사함이 더 크다. "눈물겹도록 기쁩니다"라고 어르신들이 계속 문자를 보내온다.  마음 고생이 심하셨던 분들일 수록 그렇게 감격이 깊은 모양이다.

일하는 할머니들이 과반수로 이루어진 크로마하프도 우수상을 수상하고 지도강사 없이 연습해서 대회에 나간 아코디언 우크랠래반도 3등을 했다. 충북실버문화예술제란 경연대회에 참가한 모든 팀들이 열심히 했다. 우리는 작년에는 대상도 우수상도 3등도 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년에는 또 어찌 될지 모른다. 

아마도 내년에는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팀들이 열심히 각고의 노력을 해서 잘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생이고 세상이 돌고 돌아가는 원리일 테니깐. 그러니 그저  꾸준히 한 마음으로 이웃의 손을 잡고 천천히 즐겁게 노래를 하면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약을 한움큼 입에 털어놓고 열심히 짐꾼도 되고 개그를 하는 사오정도 되면서 오늘 기획자로서 하루를 마감한 오늘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이다.


#실버문화예술인식개선#충북문화예술제 #청노실버합창반 대상수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과의 소통 그리고 숨 고르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