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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에서 제일 멋진 어르신입니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멋진 어르신입니다.
ⓒ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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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언덕배기에는 두 평 남짓한 구두 수선가게가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 목욕탕 사장님, 세탁소 사장님, 미장원 사장님이 옹기종기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참고로 이곳을 찾는 사장님들은 모두 여성이다!

나이가 지긋한 구두 수선가게 사장님은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일할 때를 제외하고, 항상 그렇게 주변 사람을 불러 모은다. 나처럼 이사 와서 얼마 되지 않는 이웃이 그 앞을 지나가도, 아담한 체구의 구두수선가게 사장님은 얼굴에 굵은 주름을 만들어 웃으며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권한다. 나는 금방 마시고 나오는 길이라고 매번 사양하지만 소박한 호의가 감사하다. 그래서 가족들이 한동안 신지 않던 구두를 수선하러 몇 차례 들렀다.

구두 수선가게 사장님은 예전에 양화점을 크게 하셨단다. 하지만 세월이 구두를 맞추어 신지 않아서 요즘은 소일삼아 수선을 하시는데, 손끝이 하도 야무지셔서 단골이 많다. 특히 본인의 구두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구두를 가져가면, 현재 구두의 상태와 수선해야 할 부분과 구두 관리법 등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다 보니 허리를 구부리고 열심히 작업하는 구두사장님 귀에서 '반짝!' 하는 것이 보였다. 귀걸이!

'세상에 할배가 무슨 귀걸이?' 처음에는 참 얄궃고 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주 보니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나름 개성 있어 보였다. 어느 날, 나는 내 화장대 서랍에 뒹굴고 있는 한쪽뿐인 귀걸이를 떠올렸다. 아무도 할 수 없는 한쪽 밖에 없는 귀걸이. 하지만 왠지 구두 사장님께 드리면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았다. 그날(11월 중순께) 나는 구두 수선가게에서 가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

"사장님, 이거 18K인지 14K인지 오래 되서 모르지만 한 개 뿐이네요. 귀걸이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어이구! 고맙죠. 저는 한 개도 달고 두 개도 답니다. 흐흐..."
"그 대신 제 카카오스토리에 올릴 사진 한판 찍을게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흐흐흐 예예."
"멋쟁이세요."
"얼마 전에 연상의 여인으로부터 데이트 신청도 받았어요. 흐흐흐. 제가 점잖게 거절했지요. 집에 가면 사랑하는 우리 마누라가 있다고요. 흐흐흐..."
"(속으로) 헐~"

구두 수선가게 사장님의 연세 올해 일흔 셋. 함박웃음을 짓는 그분의 입이 귀에 걸렸다. 내 서랍 속에서 뒹굴던 귀걸이 한 개가 우리 동네 멋쟁이 어르신 귀에서 반짝거렸다.


#동네#구두#멋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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