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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 전부터 사진의 중요성을 많이 이야기 했습니다만, 의외로 반응이 크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사진작가들이 '사진이 선거의 반(半)'이라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단순히 사진작가들의 밥벌이에 국한된 주장이 아닙니다. 정말 사진은 중요하고 사진 한 장이 그 사람의 전부를 알려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아직 준비하지 못하셨다고요? 지금 당장 사진을 찍으십시오. 사진 찍고 나서 다른 활동을 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예시로 든 사례들은 '옳다 또는 그르다'를 떠나서 독자 여러분께서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든 것입니다. 정책 혹은 공약의 가치판단이 아니라는 점, 꼭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권자는 '옳다 또는 그르다'로 판단하지 않고 '좋다 또는 싫다'로 판단한다는 선거판의 명언이 여기서도 적용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잘 숙지하셔서 예비후보자(정치인)에게는 영감을, 착한 시민(유권자)에게는 선택의 기준을 제공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 기자 말

사진이 선거의 반이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예비후보자가 계시다면 당장 사진을 찍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예비후보자가 아닌 현역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때때로 사진을 찍기를 권하는 편입니다. 그저 우연하게, 정말 별 생각 없이 찍은 사진이 선거 시기에 굉장히 큰 반향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전문 사진작가들이 '사진이 선거의 반'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미국의 유명한 마케팅 전문가 루이스 체스킨이라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를 때,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제품의 포장에서 받은 느낌이나 인상을 제품 자체로 전이시킨다."

이것을 조금 어려운 말로 '감각전이(sensation transference)'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제품의 포장이 예쁘게 잘되어 있으면 그 제품의 품질이 좋게 느껴지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의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죠. 이는 단순히 제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예인이 그렇고 정치인이 그렇습니다. 선거 시기에 유권자는 절대로 이성적인 존재가 되지 않습니다. 후술하겠습니다만, 유권자는 냉철한 이성으로 후보자의 정책을 비교해서 지지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그렇게 이성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냉철한 이성보다는 뜨거운 감성이 지배를 하지요. 그래서 이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메라비안의 법칙 사람들은 정치인의 말을 통해서 듣는 내용보다 눈에 보이는 시각적 요소와 목소리의 톤과 울림, 환경 등 청각적 요소에 절대적으로 영향를 받는다.
▲ 메라비안의 법칙 사람들은 정치인의 말을 통해서 듣는 내용보다 눈에 보이는 시각적 요소와 목소리의 톤과 울림, 환경 등 청각적 요소에 절대적으로 영향를 받는다.
ⓒ 최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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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이야기해서 유권자가 후보자를 직접 눈으로 보고 지지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모두 포스터나 홍보물,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알려집니다. 특히 시각적 매체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 보다 중요합니다. 미국의 행동 심리학자인 앨버터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은 매라비언의 법칙을 통해 이를 명확히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55%, 청각적 요소(목소리의 톤)가 38%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후보자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내 주장'과 '내 의견'은 겨우 7%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나?

자, 이제 실제로 찍는 이야길 하겠습니다. 선거 시기에는 의도적으로 홍보물에 실을 사진을 스튜디오에서 찍습니다. 소품도 많이 준비하지요. 말끔한 넥타이를 맨 모습부터 일반 캐주얼한 복장까지 다양하게 찍습니다. 또 노트북을 앞에 두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든지, 신문이나 책을 읽는 모습을 연출합니다. 요즘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스튜디오 촬영은 정말 옳은 것일까요?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것이 스튜디오 촬영이든 아니면 야외 촬영이든 평소에 자연스러운 촬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련한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스튜디오에서 연출을 통해서 찍는 것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습니다. 저도 많은 정치인들을 모시고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만 정말 모델이란 직업이 고된 직업이라는 것을 옆에서 리드하는 저도 알겠더군요. 이 부자연스러움을 없애는 방법은 평소에 자연스러운 활동을 할 때 찍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 좋은 사례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정치사진작가 서호영씨가 찍은 사진입니다.

손석희의 시계 대중적으로 반듯한 이미지를 가진 손석희 앵커의 손목에 사진은 그의 반듯한 이미지에 소탈한 이미지까지 더했다
▲ 손석희의 시계 대중적으로 반듯한 이미지를 가진 손석희 앵커의 손목에 사진은 그의 반듯한 이미지에 소탈한 이미지까지 더했다
ⓒ 서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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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정치인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상당히 반듯한 이미지를 가진 손석희 앵커의 사진입니다. 서호영 작가는 그의 블로그(http://zonest.blog.me)이런 이야길 남겼습니다.

100분 토론과 손석희의 시선 집중을 통해 차분한 목소리로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다 하는 그의 진행 솜씨를 보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치권의 끝없는 러브콜을 받으면서도 자기 갈 길을 묵묵히 가는 모습에 또 한 번 그 사람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2년 전 대선 기간 중 100분 토론 대기실에서 그의 모습을 촬영 한 적이 있었다. 그의 손목시계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지금 생각하면 놀랄 이유도 없는데..) 놀란 이유가 그의 시계가 그가 결혼할 때 즘 유행하던 카시오 손목시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시계가 지금도 쇼핑몰에서 2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사실과 할리우드의 유명배우와 우리나라 유명 배우들도 이 시계를 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마터면 구두쇠 손석희라는 포스팅을 할 뻔 했다.^^ 100분 토론에 하차하는 손석희 씨에 대한 기사를 보다가 우연히 생각이 나서 이 사진을 올린다. 할리우드 유명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패셔니스타 손석희..^^

아마도 대한민국 사람 중에 '손석희'라는 이름 세 글자를 모르는 사람을 없을 성 싶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대중성'이라는 이야기는 곧 그의 사회적 지위를 의미하며 그 사회적 지위란 영향력과도 등치가 됩니다. 그런 유명 인사가 2만 원짜리 싸구려 손목시계를 차고 있다는 것에서 의외성은 물론 소탈하고 평범한 모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어쩌면 손석희 앵커의 날카로우면서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상식의 문제를 부여잡는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더욱 손석희 앵커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이 됩니다.

정치인이 사진을 찍을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고민하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이십시오. 손석희 앵커가 평소에도 싸구려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던 것이지 사진을 찍는다고 특별히 골라서 찬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때 사람들은 공감을 얻습니다. 그렇지 않는 경우는 오히려 욕을 먹습니다.

있는 대로 욕만 먹은 클린턴

미국의 제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은 사실 대통령 재임 내내 온갖 스캔들과 루머에 시달린 사람입니다. 모니카르윈스키 스캔들과 함께 대표적인 클린턴의 의혹사건으로 불리는 화이트워터게이트 사건은 그를 첫 임기 내내 괴롭혔습니다.

화이트워터게이트 사건은 간단하게 말씀 드려서 클린턴 부부가 관련이 된 부동산 사기사건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문제는 나중에 청문회에 끌려나오는 상황까지 번지게 되었지만 백악관 측은 이를 덮기 위해 다음 사진을 언론에 게재하였습니다.

노르망디 해변가의 클린턴 화이트워터게이트를 덮기 위한 무리한 연출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 노르망디 해변가의 클린턴 화이트워터게이트를 덮기 위한 무리한 연출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 백악관 공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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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이 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시나요? 클린턴은 199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을 한 후에 노르망디 해변에서 돌 십자가를 쌓고 있는 모습을 찍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일은 미국과 서유럽 사람들에게는 '가장 정의로운 전쟁'으로 추앙받는, 굉장히 중요한 날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인 5월 8일을 압도하는, 전승축하의 성격이 강하지요.

제 42대 미합중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꼭 50년 전 자유와 평화를 위해 죽어간 노르망디의 병사들을 추모하면서 돌 십자가를 쌓고 있습니다. 저 뒤쪽에는 미군의 군함이 떠 있고 50년 전의 날씨와는 달리 아주 쾌청합니다. 그림을 만들기에는 최적의 상황이지요.

이 사진은 백악관 공보실 연출, 클린턴 주연, 미국 해군의 협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사진은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전 세계에 자유와 평화의 중요성,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한 희생에 대한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화이트워터게이트를 덮기 위해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 기념일을 이용했다면서 클린턴에게 화를 낸 것입니다. 있는 대로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어설픈 연출력이 화를 자초한 것이죠.

사진은 메시지다

앞의 클린턴의 사례나 다른 정치인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눈에 보이는 이미지는 글이나 말보다 더 강합니다.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사진이 주는 메시지는 일반 구호나 슬로건이 주는 메시지보다 더 강렬하다는 것입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바로 그 보이는 것에서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메시지가 그 후보자의 아이덴티티와 어울리지 않는 전혀 엉뚱한 이미지라고 한다면 유권자들은 혼란을 느낍니다.

지난 번 연재물 '이미지로 먹고사는 그대 이름은 정치인'을 기억하시나요? 천의 얼굴을 한 미녀, 칼리 페이지(Carly Paige)의 사례를 들으면서 잠깐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전혀 다른 얼굴, 전혀 예상치 못한 메시지를 가지고 나오게 되면 유권자들이 묻는다고요. 넌 누구냐? 하고 말이죠.

'사진=메시지' 라는 등식을 이해하는 한국의 정치인들은 대개 서민 흉내를 냅니다. 평소에는 구경도 하지 않던 재래시장에 선거 시기에는 꼭 들립니다. 순대도 사고 어묵도 먹으면서 '서민인체...'하지요. 그것이 오버가 되어서 화를 자초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 누리꾼들은 이회창 후보에게 '흙오이'를, 이인제 후보에게는 '도리도리'이인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사연을 인터넷에서 한 번 찾아보시지요. 정말 재미있습니다.

사진을 통해 보내는 메시지는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부합하는 메시지여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선거 캠페인 전체의 컨셉과 부합해야 합니다. 물론 캠페인 전체의 컨셉이 후보 개인의 컨셉(P.I : Personal Identity)과도 어울린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여기까지 이르는 것은 굉장히 고민도 많이 해야 하고 다각도로 찍어 보아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대중은 어떤 사진에 환호하나?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진솔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정치를 잘 하건 그렇지 못하건 그 정치인이 서민적인 모습을 보이면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갖게 됩니다. '이명박은 아직 배고픕니다'도 그렇고 노무현 대통령의 '노간지'라는 별명이 그렇습니다. 그것이 진솔한 모습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짜로 만들어낸 이미지는 얼마 가지 않아 금방 들통이 납니다. 영화 파파라치의 명 대사 중 이런 대목이 있지요.

"대중은 가공하지 않은 진짜를 원해... 우리가 제공하는 게 바로 그런 거고..."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재미와 감동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한 유권자가 받는 홍보물의 양이 어느 정도 되는지 혹시 생각해 보셨나요? 요즘 유권자들은 공부를 참 열심히 해야 합니다. 따라서 수 백 페이지 되는 홍보물의 홍수 속에서 기억에 남는 사진이 되려면 그만큼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만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뱀발 - 일단 이미지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다음 연재물은 어쩌면 선거에 있어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선거란 무엇인가? 유권자란 누구인가?’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손석희#클린턴#메라비안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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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1969년 서울 산(産), 2000년부터 방송에 관심 있어 주변을 맴돌다 2005년 우연히 얻어 걸린 라디오 전화인터뷰부터 시사평론 방송시작, 2014년부터는 경제 Agenda에 집중, 시사경제평론을 하면서 몇몇 경제채널 출연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종일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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