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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개혁의 방향을 결정하는 제18기 중국 공산당 3중전회가 성공적으로 치뤄진 후 지난 12월 12, 13일 양일간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역사상 첫 도시화회의를 개최하였다. 아직까지 농촌지역 및 농촌주민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도시화 수준을 높이고 농촌주민이 도시화 과정에서의 피해를 최소화 시킬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였다. 그런데 이번 회의는 중국 내외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중국 국내의 언론도 이번 회의의 내용을 톱뉴스로 보도하며 중국 현지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과연 오로지 중국이 G2로 올라섰고 중국 경제가 발전해서 사람들이 그토록 높은 관심을 보였던 것일까? 사실 이번 회의는 '호구'(후커우)라고 불리는 중국 특유의 호적, 주민등록 제도에 대한 개혁을 이번 회의에 논의한다고 알려지면서 그토록 큰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참고로 어떤 사람은 이번 회의를 통해서 중국 전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도 했다. 호구라는 것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큰 관심을 끌었을까하며 궁금해했을 것이다.

 

사실 개인적인 소견이긴 하지만, 호구라는 제도를 이해하면(몰론 깊이 이해했다는 전제하에) 리얼한 중국의 명과 암, 그리고 정부의 고뇌와 중국이란 나라가 유지되는 원동력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호구라는 제도하에 하나의 작은 사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자리를 통해서 호구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중국에 단순히 여행으로만 오던 분들은 모르는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중국에 자주 왕래하거나 주변에 중국인 친구가 많으신 분들은 중국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호구(후커우)에 대해 목매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호구(후커우)란 중국 특유의 호적, 주민등록 제도이다. 이 제도의 요지는 각 지역에서 주민들을 관리 및 통제하기 위한 일종의 등록 제도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이 제도를 신중국(1949년)성립 이후에 세워진 제도로 알고 있는데, 사실 이 제도는 신중국 건국 이전에도 역사적인 연원이 오래된 제도이다. 상(商)나라(기원전 1600년-기원전 1046년에 중국에 존재했던 왕조) 때 이미 시작되었고 춘추전국시대에서 발전하여 진(秦)나라에 이르러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각 제후들이 병력 확대와 부역증가, 안정된 사회질서를 위해 상사(上社)제도와 상계(上計)제도를 운영하였다. 상사제도는 백성 25가(家)를 1사(社)로 편제하고, 상계제도는 군, 현의 장관이 매년 연말 일년의 농호와 세수를 산정하여 예산에 반영하였다. 후에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진시황은 국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남녀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연령에 따라 등기했다. 이 호구제도는 백성의 숫자가 곧 국력을 의미했던 시기에 주민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등록제도로서 기능을 하였다. 즉 그 당시 호구는 주민의 이동을 통제하고 부역을 부과하는 근거가 되고 병역에 동원하는 기초가 되었다.

 

고대 중국에서 부터 이어온 이 제도는 봉건왕조가 지속되는 동안 이름만 달라졌지 목적은 비슷하게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어 왔으며 결국은 현재의 중국까지 이어져 온것이다.

호구는 신분증과는 다른 개념이다. 신분증은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기능 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호구는 딱히 한국의 그 어떤 제도로 설명할 수가 없다. 호구(戶口)란 단어는 고대 중국에서 사용해온 단어인데, 한 가정을 집, 가정을 의미하는 戶 그리고 한 사람를 의미하는 口 두 글자를 붙혀서 호구라고 불렀다. 즉, 호구제도는 가정 및 가정 구성원 두 가지 모두 관리하는 등록 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 혹은 어떤 분들은 호구가 한국의 호적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호적은 주로 가정관계만을 드러내지만 호구는 가정 및 개인사항 모두 반영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기서 사람을 왜 '입 구'(口)라고 부르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분들도 계실것이다. 사실 이렇게 부르게 된 이유는 한 사람당 한 입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중국의 속어에서도 '民以食为天'(사람에게는 먹을 것이 하늘과 같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있듯 고대 농경사회인 중국에서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생활을 추구했다. 그 당시에는 농업기술이 현재처럼 발달되지 못해 가뭄, 홍수 등이 터지면 그 한해 농사를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상업도 중국 전통의 중농이상(重农抑商, 농업을 장려하고 상업을 억제한다)때문에 잘 발전하지는 못하여 농사를 망치면 굶어 지낼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배불리 먹는것을 어떤 것보다도 소중히 여겼고 이는 단어 등에서 나타내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도 한국과 같이 아이를 낳을 때에는 출생신고를 해야한다. 그러나 중국은 1980년대 부터 과도한 인구를 억제하기 위해 계획생육(计划生育)라는 인구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 인구정책의 일환으로 잘 알려진 '한 가족 한 자녀' 정책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중국 농촌지역에서는 도시 지역과 달리 각종 사회보장 제도가 덜 구비되었고 전통적인 농업 문명의 산실인 남아선호관념, 아이를 길러서 노후를 보장해야 한다는 양아방로(养儿防老) 관념때문에 한 가족 한 자녀 정책을 어겨서 더 많은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현지인은 출생신고를 흔히 호구에 이름을 올리다(上户口)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이의 인적정보 및 가족정보를 자기 가족의 호구에 올려야 신분증을 만들 수 있고,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으며, 학교를 다닐 수 있고, 기차 또는 버스를 타고 타지로 갈 수 있다. 즉, 호구가 없으면 결국은 아무런 사회활동도 할 수 없는 것이다. 16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신분 증명을 필요할 때 대개 호구부를 제출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한 가족 한 자녀' 정책을 위배해서 태어난 아이에겐 원칙적으로 호구에 올려주지 않는다. 또한 만약 국가관료, 공무원이 규칙을 위배해 아이를 출산하면 적게는 경고, 많게는 해직 또는 출당조치 등의 징계가 내려진다. 국가의 기본정책을 위배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어디까지 이건 '원칙적'일뿐 실제로 태어난 아이를 때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중국에서는 정책을 위배해서 아이를 출산한 경우엔 초생(超生, 규정을 초과해 태어난 아이)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아이에게는 각지의 계획생육 사무실을 통해 '사회 부양비'라는 명목으로 수입 등에 따라 적게는 수 천위안에서 많게는 수 만위안을 벌금으로 받는다. 실제로 얼마 전에 초과 출산으로 인해 중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중국 '국민 감독' 장이머우(张艺谋)에게는 결국은 수 만위안의 '사회 부양비'가 청구되었다.

 

문제는 공무원이 아닌 부잣집 같은 경우에는 돈만 내면 장땡이니 큰 문제가 없으나, 자녀를 초과 출산하는 가정 대부분이 빈곤한 농촌 가정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일부 가정에서는 돈을 모아서라도 수 만위안에 달하는 '사회 부양비'를 내며 호구에 올려주지만, 대부분 농촌 가정에서는 이 돈이 없어 결국에는 아이를 호구에 올리지 못하고 인구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일명 '흑호'(黑戶)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중국 정부가 발표한 지난 해 농촌 인구 평균 연소득은 5919위안, 한화 120만원 정도이다.) 그리고 이렇게 흑호로 태어난 아이는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어 결국은 빈곤층을 전전하게 되고 호적 및 인구관리 시스템에도 없기 때문에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밖에 중국의 호구는 지역별로 나뉘어 발급이 되는데, 예를 들어 부모의 호구 소재지가 중국 길림성이라면,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호구가 길림성 호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신분증 상의 주소도 실제 거주지가 아닌 호구 소재지가 된다. 한국처럼 어디로 이사가면 동사무소에 가서 바로 주민등록증의 주소변경을 하는 형식이 아니다.

 

호구가 단순한 주민등록과 다른 것은 소재지를 자유롭게 바꿀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농민호구를 도시호구로 바꾸거나 안후이성의 어느 현 호구를 상하이 등 대도시의 호구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최근 들어 중국의 대도시 호구로 변경하는 것이 과거만큼 어렵지는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 문턱은 높다.

 

참고로, 중국의 호구 소재지를 변경하는 것도 도시 규모에 따라 필요한 요건이 다르다. 중소도시의 '호구'를 얻기 위해서는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그 도시에서 취직, 재학하는 등의 조치로 변경이 가능하다. 그러나, 농촌에서 돈을 벌기위해 도시로 내려온 가난한 농민공들에게는 이마저도 아주 까다로운 조건이다.

 

거기에 대도시는 인구의 급증을 막기위해 호구 변경에 까다로운 조건을 넣었다.  결국 이러한 조건은 농민공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른없다. 호구 변경조건에는 도달하지 못하나, 외지에서 실제로 이 도시에 들어와서 주소를 가지고 거주하는 경우에는 1년 유효한 '거주증' 이나 6개월 유효한 '잠시거주증'을 발급해 주는데, 이러한 '거주증' 소지자는 호적을 가진 시민들이 누리는 사회보장, 교육혜택을 거의 누릴수가 없다.

 

농촌에서 돈을 벌러 대도시에 넘어온 농민공들은 도시로 이주한 뒤에도 머무는 지역의 호구를 얻지 못해 임금과 사회보장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농민공들의 불만이 누적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정책에 빗대어 '현대판 계급제도'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농민공들은 현지 호구 소지자에 비해 사회보장 등 혜택에서 늘상 소외되곤 했다. 이에 일부 농민공은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등 사회문제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실제로 중국 여론은 호구제도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호구제도는 자유로운 거주이전과 취업을 제한하고, 이러한 제한은 주민 사이에 차별을 낳으며, 차별은 이를 피하기 위한 부조리를 낳는다. 호구제도의 이로움이 세가지라면 그 해로움은 열이 넘는다. 당연히 호구제도의 폐지가 중국에서는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호구제도의 개혁을 위해 다양한 논의와 모색을 하고 있다. 시범적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농촌호구와 도시호구를 통합하여 하나의 호구제도로 운영하여 그 성과와 문제점을 파악하여 전국적 범위에서의 호구제도의 개선 방향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구 제도를 쉽게 폐지하지 못하는 것도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음에 계속)

 

다음 편에는 호구 개혁을 위한 중국의 움직임, 그리고 왜 처음에 나온 것처럼 중국인이 대도시 호구에 그토록 목을 매는지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아마도 다음 편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에 대한 본격적으로 얘기해 볼 것 같습니다.


#중국#호구#후커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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