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우리가 즐겨 먹는 과일이나 채소의 꽃 중에서는 노란색 꽃이 제법 많다. 오이, 참외, 수박, 여주, 수세미, 호박 모두 노란꽃이다. 호박을 제외하면 모두 꽃모양도 크기도 비슷비슷하다.
꽃은 갓 피어날 때 만나는 것이 가장 예쁘고, 아침 나절에 만나는 것이 가장 신선하다. 옥상 텃밭에 꽃들이 피어있으니 꿀벌이 몰려들고, 참새도 뭔가 먹을 것이 있는지 분주하게 오간다.
도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풍광이 아니지만, 옥상 텃밭에 이것저것 가꾸다보니 덤으로 얻어진 행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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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추 고추가 주렁주렁, 두어 그루만 있어도 풋고추를 먹기엔 충분하게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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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자랐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고맙게도 화분에서도 실하게 자라주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며칠 전 유박을 주었더니만, 마른 장마 가뭄에도 무성하게 자라서 일곱 식구의 식탁에 풋고추를 풍성하게 제공한다.
조금 매운 것은 밀가루를 묻혀 살짝 쪄내어 간장을 찍어먹고, 덜 매운 것은 막된장에 찍어 풋고추로 먹고, 아주 매운 것은 물에 담갔다가 쪄서 말려둔다. 부각처럼 해 먹으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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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초? 크기도 전에 붉게 익은 고추, 빨래집게에 물려 정성껏 말리고 있으니 엄연한 태양초가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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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따먹다 보니 겨우 손가락 정도밖에 크지 않은 것들이 붉은 고추가 되었다. 익어도 너무 빨리 익었다. 아직 고추 말릴 때가 아닌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몇 개 되지 않으니 빨래집게에 집어 빨랫줄에 걸었다.
"어이구야, 벌써부터 붉은 고추니 올해 태양초 맛도 보겠구나.""설마…""농담이야. 우리가 고춧가루를 얼마나 많이 먹는데. 농사진 분들 시름 덜어주려면 우리가 태양초라도 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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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순 아직은 호박순을 먹을 때는 안 되었지만, 연하디 연한 호박순을 보면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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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덩굴이 옥상 담을 타고 줄기차게 뻗어간다. 너무 많이 뻗어서 고민인데, 새로 뻗는 줄기에서 꽃이 피고 호박이 열리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새순을 좀 따서 쪄먹을까 싶다가도 혹시라도 호박이 더 열리지 않을까 싶어 참는다.
반찬이 귀하던 시절, 연한 호박순과 가지를 따서 밥할 적에 쌀 위에 함께 끓인다. 그리고 부추 몇 개 잘라 양념장 만들어 고춧가루 살살 뿌린 후에 찍어 먹으면 '최고의 반찬'이었다.
연한 호박순에 어린 호박이 달렸으면 맛이 더 좋았으니, 호박순을 맛나게 먹을 때는 서리가 오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서리를 맞으면 가지나 호박은 전부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서리가 오기 전에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했던 것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호박꽃 구경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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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꽃 아침나절에나 활짝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가 이렇게 예쁜 호박꽃을 못 생겼다고 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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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꽃과 꿀벌 꽃이 있으니 벌이 찾아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귀하던 꿀벌이 올해는 제법 많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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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쁜 호박꽃을 누가 못생겼다고 했는가? 호박꽃처럼 당당하고 풍성하게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하는 꽃이 얼마나 되며, 열매 또한 실하여 따고 또 따도 애호박을 끊임없이 내주는 꽃이 얼마나 되는가?
늙은 호박은 또 얼마나 탐스러운가? 범벅의 맛은 또 어떻고? 온통 '물음표'다. 그 이유는, 이렇게 우리에게 풍성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호박, 이 예쁜 꽃이 왜 못생김의 상징이란 말인가?
올해는 꿀벌이 많다. 몇 해 전부터 작년까지는 꿀벌이 보이질 않아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이 도심 어딘가에 살아있다가 이렇게 찾아와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재미 때문에라도 '올해까지만' 옥상텃밭을 가꾸겠다는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호박같이 둥글둥글 이 세상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호박에 말뚝 박는 놀부의 심보를 가진 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래서 호박같이 둥글둥글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삶이 퍽퍽하다. 그래도 그런 사람이 있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