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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발단은 지난 16일 본사 인사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지역 대리점의 임대차 재계약을 위해 등기부 등본을 확인한 결과 3년 전 계약한 주소와 다르다는 것이다. 외근 중 전화를 받은 관계로 일단 메모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보낼 우편물도 있어서 우체국으로 향했다. 집배원 아저씨가 근무하는 곳이니만큼 이곳에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우체국에서

울산 간절곶에 있는 우체통 우체통은 과거 사람간의 안부나 정보를 교환하던 역할이 아니라 각종 고지서와 홍보물로 가득한 흉물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 울산 간절곶에 있는 우체통 우체통은 과거 사람간의 안부나 정보를 교환하던 역할이 아니라 각종 고지서와 홍보물로 가득한 흉물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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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 한 통 보내며 우편물 담당 직원에게 물어봤다.

"여쭤볼 게 있는데요, 아직 옛날 주소로 계속 우편물을 보내고 있는데 언제까지 가능하죠?"

"네, 아직은 옛날 주소로도 가능하지만 올해 8월이면 우편번호도 바뀌어요. 지금 여섯 자리에서 다섯 자리로 바뀔 거예요. 그러면 그때부터는 새로운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래요? 그럼 지금 제가 적은 옛날 주소로 현 도로명 주소 조회 좀 해주시겠어요? 바뀌었다고는 하는데 택배 기사, 집배원 아저씨, 본사에서 얘기하는 주소가 각각 달라서요. 어떤 게 우리 사무실 주소인지 확실하게 알고 싶어요."

"잠시 만요, 조회해 드릴게요."

한참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더니 옛날 주소로는 도로명 주소 검색이 안 된단다. 그러면서 우편물 영수증에 면사무소 민원 담당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이쪽으로 문의하면 알려줄 거라고 한다. 우체국에서 조회가 안 된다니, 이럴 수도 있나?

면사무소에서

사무실로 들어와서 면사무소 민원실로 전화를 했다.

"실례합니다. 제가 지금 옛날 주소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새로 나온 도로명 주소가 어떻게 되는지 좀 알고 싶어서요."

"아, 그러세요? 옛날 주소 좀 불러주시겠어요?"

난 사무실 계약 당시 사용하던 주소를 불러줬다. 잠시 뒤 1분여 쯤 흘렀다.

"죄송한데요. 옛날 주소로 검색하니까 아무것도 조회가 안 되네요?"
"왜 그렇죠? 그러면 등기부 등본에 나오는 주소로 검색 좀 해주시겠어요?"

나는 다시 본사 인사팀에서 불러준 주소를 알려줬다. 그리고 다시 기다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주소로도 도로명 주소 검색이 안 되네요. 제가 군청 전화번호를 알려드릴게요. 그쪽 민원실에서 도로명 주소 관리를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려주실 거예요."

일단 군청 지적과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옛날 주소와 연계된 도로명 주소가 없다니. 우체국에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우편물을 배송하며, 택배회사에서는 어떻게 일 처리를 하는지, 더군다나 해당 관할 면사무소에서도 옛날 주소와 도로명 주소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아님 내가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나?

주소! 대체 넌 뭐냐?

우리 회사는 업무상 택배로 상품이 많이 온다. 나름 친분이 있는 택배 기사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말을 건네 봤다.

"요즘 어떠세요? 주소도 새로 바뀌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말도 마세요. 옛날 주소, 새 주소가 제대로 입력이 안 되고 고객들도 익숙지가 않아 지금 엉망입니다. 새 주소로 갔다가 허탕치고 오는 경우가 하루에도 몇 번씩 있어요."

새로 적용된 도로명 주소로 가장 힘든 분들이 택배 기사와 집배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배송 물량도 만만치 않고, 예전에 비해 건당 물류비는 자꾸 낮아지고 있다. 게다가 주소까지 바뀌어 이전보다 배송 시간이 많이 늘고, 잘못 배송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고객 불만으로 스트레스가 많단다. 물건을 받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무실로 오는 택배 중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다른 주소의 물건이 배송되기도 한다.

주소 찾기가 여기까지 오게 되니 사무실 여직원과 나는 정말 궁금해졌다. 우리 사무실 주소는 과연 뭘까? 설마 주소도 없는 곳에서 우리가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드디어 군청에서

집배원이 올 때마다 강조하던 주소가 맞을까, 인사팀에서 알려준 주소가 맞을까, 아니면 최근 건물주가 알려준 주소가 맞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우편함에 적혀 있는 주소가 맞을까? 정답을 찾기 위해 군청 지적과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 사무실 주소가 뭔지 알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당당하게 물어봤다. 옛날 주소를 불러주고 도로명 주소를 물어봤다.

"고객님 그 주소는 도로명 주소는 (집배원이 올 때마다 강조하던 주소를 말했다)입니다."

드디어 찾았다. 우리 사무실 주소! 아마도 나와 같은 민원 때문에 지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친김에 들어왔던 모든 주소를 다 물어봤다.

군청 직원의 말을 빌자면, 지금 장소가 예전에 택지 개발지구로 바뀌면서 블럭과 로트로 구분되었고, 그 상태에서 옛날 주소가 부여됐다는 것이다. 이후 도로명 주소가 다시 붙여졌고, 등기 상의 지번은 본사에서 알고 있던 주소였다. 그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우리 사무실 주소는 집배원 아저씨의 것이 정답이었다. 그럼, 집 주인이 알려준 주소는 뭐지? 집 주인도 주소를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주소라는 것은 개개인의 주거지나 소유권, 혹은 행정 기관의 효율적인 민원 처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는 물류 시스템의 근간이 되고 있다. 우편물과 갖가지 고지서는 물론, 점점 거대해지고 있는 홈쇼핑과 인터넷쇼핑 산업을 가능케 해주는 인프라다. 과거 어느 때보다 주소의 단순화와 명확성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자리를 잡으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한 것 같다.

관할 행정 기관에서는 수년 전부터 도로명을 지어 골목마다 푯말을 설치한 후 예비 단계를 거쳐 도로명 주소를 시행했다. 이로 인한 유·무형의 사회적 비용도 적지 않았겠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이 더 걱정이다. 수시로 주소를 찾아가며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나 다량의 주소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겐 많은 기간 혼란을 가져올 것이 뻔하다. 게다가 우체국이나 면사무소 혹은 동사무소에서도 자료가 공유되지 않아 도로명 주소를 민원인에게 알려줄 수 없다면 큰일 아닌가?

오늘 나의 '주소찾기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있던 여직원은 사무실 알림판에 예전 주소를 지우고 도로명 주소를 큼지막하게 적어 놨다. 오늘 비로소 내 근무지의 주소를 알게 돼 기쁘긴 하지만 세 군데의 행정 기관을 거쳐서야 알아낼 수 있었던 과정은 씁쓸하기만 하다.


#옛날주소#도로명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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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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