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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까를 바른 엄마와 아이 수투판 고아원 자원봉사단 행사에 참석한 엄마들.
▲ 다나까를 바른 엄마와 아이 수투판 고아원 자원봉사단 행사에 참석한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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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아내의 경고

주술사의 주문 같았다.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한적한 시골이나 도시나 다를 바 없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경적 속에 잠시 묻혔다가 아침이나 밤이면 또렷해졌다.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을 담은 팔리어 경전 읽는 소리였다. 또 어디를 가도 시야에 잡히는 게 있었다. 거의 모든 풍경의 배경에는 하늘을 찌를 듯 한 황금불탑이 번쩍거렸다. 인구 6000만 명의 90%가 불교 신자인 나라. 미얀마의 불교는 공기였다.

가난한 삶, 하지만 행복해 보였다.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4~5시간 동안 야시장과 재래시장을 다녔지만 더 많이 팔려는, 더 싸게 사려는 악다구니와 실랑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승용차와 경운기, 오토바이, 자전거, 대형 트럭과 버스, 그리고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 그 거리의 무질서 속에서도 멱살잡이를 볼 수 없는 희한한 나라였다. 5일 동안 이방인의 눈으로 잠깐 들여다 본 한계가 있겠지만. 

사단법인 '하얀 코끼리'와 함께 그곳에 갔다. 자원봉사 겸 동행 취재였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이런 경고 문자가 왔다.

"구설에 오를 수 있으니 말과 행동 조심하세요.(중략) 저녁나절 섣부른 자리에 어울리지 말고 단정하게 행동거지 하세요."

아내였다. 여행 가방에 챙겨온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 첫 구절이 생각났다.    

"버마 남부에 몰멘(Moulmein)에 있던 시절 나는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다."

오웰이 미얀마에서 영국 경찰로 근무하던 시절에 발정난 코끼리를 쏘아 죽인 바보 같은 일화를 통해 제국주의자들의 허구를 통렬하게 비판한 글인데, 부자 나라에서 왔다고 까불지 말고, 기자라고 경거망동하지 마라!

미얀마의 아이. 수투판 고아원에서 본 천연 선크림 '다나까'를 얼굴에 바른 아이.
▲ 미얀마의 아이. 수투판 고아원에서 본 천연 선크림 '다나까'를 얼굴에 바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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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척이는 첫날 밤  

이코노미 석에서 몸을 비틀고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밥 먹듯이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말하겠지만, 난 문득 거대한 통조림 속에서 뒤척이는 부유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1월 28일 오후 6시 30분에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한 미얀마행 비행기는 양곤 공항을 향해 5시간을 날았다. 미얀마는 한국보다 2시간 30분 늦었다. 그런데 공항에서 느끼는 시차의 체감온도는 6개월 이상 벌어져 있었다. 영하 9도와 영상 19도의 차이.

바깥으로 나오니 여행객을 실어 나르는 버스와 승용차로 북적거렸다. 매연으로 가득한 거리에서 치마 '론지'(Longy)를 걸친 남자들은 서투른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무언가를 씹으면서 빨간 침을 뱉는 사람도 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거리에서 신물 나게 본 '꿍야'였다. 씹는 담배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는 양곤의 밤거리를 달렸다.

"앗! 도마뱀이다!"

1시간 동안 달려 도착한 딴린의 한 호텔에서 우리 일행을 맞은 건 파충류였다. 내 방의 외벽에도 작은 갈색 도마뱀 4~5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녔다. 다행히 도마뱀은 나를 따라 방에 들어오는 무례를 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어컨이 세게 틀어진 방 안의 어두컴컴한 구석에 또 다른 녀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3~4개월 전에 자취를 감춘 모기였다.

내 룸메이트인 칼럼니스트 하도겸씨는 검지 손가락 만한 독일 술에 차를 섞어 나에게 한잔 건넸다. 우리는 잠깐 동안 출신 성분을 확인했고 여러 번 자기가 심하게 코를 곤다고 양해를 구했다. 나한테 먼저 자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먼저 침대에 누웠고 이불을 덮은 지 정확하게 3초 만에 코를 골았다. 양해를 구해서였는지, 아니면 이국에서의 설렘 때문인지 화가 나지는 않았다. 대신 베개로 귀를 틀어막고 미얀마의 첫날밤과 엎치락뒤치락했다.

슬리퍼를 신은 아이들 맨발로 다녀서 거무튀튀해진 흙발.
▲ 슬리퍼를 신은 아이들 맨발로 다녀서 거무튀튀해진 흙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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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발의 아이들

다음날 새벽 5시50분경에 일어났다. 그의 코골이는 멈춰 있었다. 대신 청량한 공기를 꽉 채운 웅얼거림. 높낮이가 없었다. 전날 밤늦게 숙소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소리였다. 인근 사찰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팔리어 경전소리였다. 미얀마를 떠나올 때까지 그 소리는 따라다녔다.

사단법인 '하얀 코끼리'(이사장 영담 스님) 3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지난달 29일 찾아간 곳은 양곤 동쪽 바고강 건너편인 딴린의 수투판 고아원이다. 수투판 사찰이 운영하는 곳으로 유치원생부터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423명이 모여 있다.

햇살은 따가웠고 아이들은 하나같이 나무를 돌에 갈아 얼굴에 발랐다. 다나까라는 천연 선크림이다. 따가운 열대 몬순 기후의 쏟아지는 햇볕을 차단하는데 좋단다. 다나까로 얼굴을 뒤덮은 친구도 있고, 뺨과 이마, 콧등에 연지곤지를 찍듯이 동그랗게 바른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크고 검은 눈동자는 하얀 타파야 색과 대비돼 더 반짝였다. 깊은 우물 속에 비친 달처럼. 

"밍글라바!"

눈만 마주치면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했지만 분칠한 얼굴에선 장난기가 자글자글 배어 나왔다. 깡마른 아이들은 짙은 색 허름한 옷을 입고 운동장과 풀밭, 교실, 화장실을 뛰어다녔다. 슬리퍼를 신기도 했지만 맨발도 많았다. 뛰어놀던 녀석들은 콘크리트 저수조에 있는 물을 흙손으로 퍼먹었다. 청소 당번은 그 물을 양동이에 퍼서 허름한 화장실에 들이 부었다.   

컴컴한 부엌에선 들쥐가 다녔다. 나무 화덕에서 숯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그 위에 볼품없이 쭈그러진 큰 양은 냄비 속에선 콩이 익으면서 모락모락 김을 올렸다. 닭들은 구정물과 쓰레기 속에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병이 들었는지, 비쩍 마르고 털이 듬성듬성한 개들이 많았는데 사람들을 우습게 봤다. 손으로 툭 건드려도 귀찮다는 듯이 일어나 다시 드러누웠다. 

페인트 칠 자원봉사 하얀 코끼리 자원봉사단은 이틀동안 건물 한 동에 페인트칠을 했고 벽화를 그렸다.
▲ 페인트 칠 자원봉사 하얀 코끼리 자원봉사단은 이틀동안 건물 한 동에 페인트칠을 했고 벽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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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촌스러운 반짝이로 치장한 그늘막 아래서 수투판 사찰 주지 우미다위 스님이 영담 스님을 맞았다. 하얀 코끼리는 의류 500점, 비룡소 출판사(대표 박상희) 어린이 그림책 500권을 전달했고 학교 건축지원 MOU 체결식을 열었다. 고아원에 건축지원비로만 39,000 달러 상당을 지원한다. 스님이 감사 말씀을 이어가는데도 아이들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옆에 녀석들의 옆구리를 푹푹 찔러가면서 V자 포즈를 취했다. 한국에서 카메라를 빌려준 후배가 고마웠다. 

제3세계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대체로 이 정도에서 사진만 찍고 관광 투어를 하다가 귀국하는 게 관례라고 한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은 뙤약볕 아래서 이틀 내내 교실 건물에 벽화를 그리고 페인트칠을 했다. 땀으로 절은 얼굴과 옷, 새로 산 신발까지 온통 페인트로 범벅이 됐다.

모두가 열심이었지만 페인트공 중에 나를 가장 미안하게 만든 사람은 홍갑표 원종종합사회복지관 관장(53)이었다. 아무 말 없이 페인트칠만 했다. 입에서 단내가 날 것 같았다. 몸에서 사리가 나올 분위기였다. 박상희 대표 등은 거미줄 쳐진 부엌에서 한식 체험 행사를 준비했고, 어린 자원봉사자들은 환경-위생 교육을 하다가 맨발의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뛰어 놀았다. 축구교실이었는데, 맨발과 운동화의 대결에서 맨발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건축지원 MOU 체결 영담 스님과 수투판 사찰 주지 우미다위 스님이 고아원 학교 건축 지원 MOU를 체결했다.
▲ 건축지원 MOU 체결 영담 스님과 수투판 사찰 주지 우미다위 스님이 고아원 학교 건축 지원 MOU를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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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점심 식탁에서 아이들과 마주 앉았다. 형광등이 두어 개 켜진 어두운 식당의 나무 탁자 위에 줄지어 스테인리스 접시와 숟가락이 놓여있었다. 찌그러진 접시 위에는 푸석한 밥 한 숟가락과 콩, 그 위에 소스를 뿌렸다. 그리고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닭고기 한 덩이가 얹어있었다. 우리 일행도 한 테이블 당 한 명씩 아이들 사이에 끼어서 밥을 먹었다.

아이들은 접시에 코를 박고 먹었다. 내 옆에 있던 녀석은 두 번씩이나 배급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 아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내 접시를 보고 무슨 말을 건넸다. "맛이 없냐?"는 질문 같았다. 난 그냥 웃었다. 이걸 어떻게 사람이 먹지? 퍽퍽한 밥과 비린내 나는 소스의 향 때문에 비위가 상했다. 게다가 좀 전에 바깥에서 본 바로 그 콩도 있었다. 고추장 생각이 간절했다. 결국 몇 숟가락 뜨고 남겼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수투판 고아원의 점심 밥 한 숟가락과 콩, 그리고 닭고기 한 점.
▲ 수투판 고아원의 점심 밥 한 숟가락과 콩, 그리고 닭고기 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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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당 안에서 밥 먹고 공도 찬다?

식당에서 나왔다. 나무 그늘은 시원했지만 볕에 나가면 땀이 흘렀다. 출국하기 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미얀마의 1월은 우리의 가을 날씨 수준이라는 정보만 접하고 반바지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무릎까지 걷어 올렸지만 날씨를 속일 수는 없었다. 머릿속으로 속옷의 숫자를 셌다. 

그 더위에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취재를 핑계로 그늘을 찾아 수투판 사찰 법당에 갔다. 스님들은 한가운데 놓인 식탁 위에서 밥을 먹었다. 2~3살 됨직한 꼬마 아이는 스님과 함께 법당에서 공놀이를 했다. 한 바퀴 둘러보니 접시와 밥통 등 부엌에서 볼 수 있는 집기들이 한 구석에 쌓여 있다. 개 3마리가 머리를 법당 안쪽으로 들이밀고 코를 킁킁거리다가 앞에 누워버렸다. 한국 불교보다 더 엄격하다는 미얀마의 불교는 속세와 아주 가까이 있었다.

행사를 마친 아이들은 교실로 우르르 뛰어 들어갔다. 교실 앞에 벗어 놓은 쪼리 슬리퍼를 보니 앙증맞았다. 어릴 적 흙바닥을 뛰어 놀다가 방 문 앞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았던 내 슬리퍼를 보는 것 같아 친근했고 측은했다. 카메라를 본 아이들은 "빙글라마"를 외치면서 찍어달라고 아우성쳤다. 그 순간을 <오마이뉴스>의 모바일 버전 서비스인 10초 동영상 플랫폼 'SOME'에 송고했다. '모이'라는 플랫폼에는 사진과 글을 전송했다. 난 취재기자였다.  

모이 : 미얀마의 아침

▲ 미얀마 수투판 고아원 아이들 미얀마 딴린 수투판 고아원에서 만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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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아이들의 슬리퍼 행사를 마친 아이들이 슬리퍼를 벗어놓고 교실로 들어갔다.
▲ 미얀마 아이들의 슬리퍼 행사를 마친 아이들이 슬리퍼를 벗어놓고 교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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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아이들 서로 사진을 찍겠다고 덤벼대는 아이들.
▲ 미얀마의 아이들 서로 사진을 찍겠다고 덤벼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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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섭', 나눔이 곧 수행이다

둘째 날,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니 미안했다. 취재한답시고 어슬렁거리는 모습이라니.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눈치가 보였다. 아내와 오웰의 경고가 생각났다.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내려놓았다. 붓에 페인트를 왕창 묻혀서 바닥에 뚝뚝 흘리면서 칠하는 얼치기 페인트공의 모습을 보고 영담 스님이 다가와서 내 붓을 가로챘다. 

"아이 참, 처음 해보는 거죠? 너무 많이 묻히지 말고 붓을 위쪽으로 쓸어 올린 뒤에 아래쪽으로 내리면서 다시 쓸어야 골고루 칠해집니다. 자, 이렇게 해봐요~"

바닥이 숭숭 뚫린 2층의 난간 바깥쪽을 칠하다가 팔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햇볕은 내리쬐고 진도는 안 나가고. 옆에서 페인트칠을 했던 왕정찬(53) 시흥장애인 복지관 관장도 나와 같이 초보였지만 노하우가 생겨 진도를 잘 뺐다. 그는 "표정 좋고 순박한 얘들이 막상 사는 것을 보니까 가슴이 아팠다"면서 "이틀 동안 페인트칠 해서 번듯한 건물로 만들었더니 기분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불교의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사섭법(四攝法) 가운데 '동사섭(同事攝)'이라는 게 있습니다. 고락을 같이하면서 진리의 길로 이끌어 들이는 것을 말하죠. 함께 나누면서 수행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2007년에 건물 한 동을 지어줬고, 작년에도 자원봉사를 했는데요,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속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이번에 다시 오니 부끄러움이 좀 줄었습니다. 하-하-하."

사단법인 하얀 코끼리는?
비영리국제구호단체인 사단법인 하얀 코끼리는 2003년부터 미얀마-태국 국경지대 난민촌의 어린이 교육 사업을 시작한 이래 중국 길림성 도문시 일광산 화엄사 조선족 유치원 건립 지원, 스리랑카-미얀마 인도적 지원 사업 등을 해왔다. 착한 하얀 코끼리처럼 국적이나 인종, 사상, 종교 등을 가리지 않고 지구촌 이웃들과 소통하고 나누면서 공생을 추구할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협력기관이다.  

영담 스님은 나누는 것이 수행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의 하얀 코끼리가 미얀마에 온 까닭이기도 했다. 사실 난 그들을 도운 게 아니라 깊은 눈동자에서, 느릿느릿한 발걸음에서, 시끌벅적한 길거리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가난의 늪에서 발버둥 쳤던 대한민국의 40~50여 년 전이 그곳에 있었고, 지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한참 낙후된 그곳에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가 다시 찾고자 하는 나눔의 미래 공동체가 살아 있었다.

하얀코끼리 자원봉사단 이틀동안 수투판 고아원에서 자원봉사를 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 하얀코끼리 자원봉사단 이틀동안 수투판 고아원에서 자원봉사를 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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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하얀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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