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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호른 마터호른이 푸른하늘에 우뚝 솟아 있다.
▲ 마터호른 마터호른이 푸른하늘에 우뚝 솟아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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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섯째 날, 간밤에 몰래 비가 내린 모양이다. 창문을 열어보니 길바닥이 흠뻑 젖어 있다. 그러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하다. 참 기분 좋은 날씨다. 지도를 펼쳐 놓고 어디로 올라 갈 것인지 고민을 했다.

마터호른을 보기 위해 오르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산악열차를 타고 고르너그라트로 가는 것과 케이블카를 타고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길, 그리고 지하 산악열차를 타고 수네가로 올라가는 것이다. 고민 끝에 수네가로 결정했다. 수네가는 마터호른에서는 좀 멀리 있지만 알프스를 바라보는 산 풍경이 가장 아름답고, 하이킹코스도 많은 종류의 야생화와 산중 호수를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네가로 올라가는 산악열차 역은 체르마트역에서 100m정도 떨어진 계곡 주변에 있다. 길옆으로 가파른 언덕이 있고, 굴로 들어가는 입구에 매표소가 있다. 언뜻 보면 일반 사무실 같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스위스패스를 내밀면 할인도 받을 수 있다. 약 8000원 정도한다.

지하통로를 따라 백 미터 정도 따라 들어갔다. 긴 소매 옷을 입었는데도 춥다. 정거장은 경사진 곳에 있어 계단을 올라가 타야한다. 열차는 레일을 따라 바퀴로 올라 갈 뿐 내부는 케이블카와 같은 좌석이다. 차를 타고 굴속으로 10여분 올랐을까? 곧 수네가에 도착한다,

마터호른 푸른 하늘을 화폭삼아 마터호른이 산중호수에 빠져 있다.
▲ 마터호른 푸른 하늘을 화폭삼아 마터호른이 산중호수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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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역에서 밖으로 나왔다. 사진에서나 보던 마터호른이 눈앞에 "짱"하고 나타난다. 흰 눈을 살짝 걸치고 있는 마터호른은 마치 산신처럼 신비롭게 우뚝 솟아있다. 차마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물개가 돌아 앉아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독수리가 뒤를 돌아보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이를 시샘이나 한 듯 어디선가 회색 구름이 달려오더니 마테호른의 허리를 두툼히 감싼다.

수네가에는 마테호른을 올려다 볼 수 있는 노천카페가 있고, 그 주변에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나무도 없다. 오로지 바위와 작은 풀만이 산을 뒤덮고 있다. 마터호른 주변 봉우리들은 수시로 피어오르는 구름 속에 숨기를 반복하며 신비스런 산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수네가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산중 호수가 있다. 산속에서 만나는 호수는 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설렌다. 호수로 내려가는 곳에는 케이블카도 있다. 케이블을 타지 않고 걸어서  내려가 보았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물에 비친 마테호른이 거울처럼 비친다. 아이들은 신바람이 나서 배 줄을 당기며 뱃놀이도 하고, 뜰채를 들고 고기를 잡느라 야단이다.

가만히 산 풍경을 바라보았다. 산중 호수는 거울처럼 맑고, 구름은 쉼 없이 산봉우리를 감싸며 피어오른다. 그 구름 위로 마터호른은 고개를 길게 내밀고 산중 호수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호수에 비친 모습이 마치 쌍둥이 같다. 이 멋진 산 풍경을 행여 놓칠세라 셔터를 마구 눌러 본다. 수 십장을 찍었는데도 갈증이 풀리지 않는다. 다만 호수 앞에 세워진 케이블 탑이 자꾸 눈에 거슬릴 뿐이다.

마터호른 야생화가 만발한  수네가에서 마터호른을 바라본 모습
▲ 마터호른 야생화가 만발한 수네가에서 마터호른을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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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네가에서 케이블을 타고 블라우허드로 올라갔다. 케이블 요금은 후불이다. 마터호른은 여전히 눈앞에 우뚝 솟아 있다. 어디서 보아도 신비스러운 모습이다. 하이킹을 위해 산위로 올라갔다.

산 정상에는 만년설이 하얗게 덮여 있다. 스키나 썰매를 타도 될 것 같다. 만년설 아래로는 산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나무가 하나도 없어 여러 갈래의 산길이 지도처럼 펼쳐져 보인다. 산길 주변에는 군데군데 산중 호수도 있다. 멀리서 푸른 물빛이 유혹을 한다. 그 호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무 하나 없는 산길은 춥지도 덮지도 않다. 하이킹하기 딱 좋은 날씨다. 햇볕이 강해 얼굴이  따가울 뿐이다. 바위가 많은 산길에는 지루하지 않게 여러 종류의 야생화가 곱게 피어있다. 하얀색 꽃도 있고 노란색과 분홍색 꽃들도 많다. 그들은 같은 색 끼리 서로 무리지어 피어 있는데, 가끔 꽃밭에 와 있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한국에서 피는 야생화와 별 다를 바 없지만 수수하게 피어 있는 야생화를 볼 때 마다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불어와 가냘픈 몸이라도 흔들어대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지나는 사람마다 그냥 지나지 못 하고 몸을 기울여 사진 찍기에 바쁘다.

체르마트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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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만

산길은 가파르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고향의 뒷동산을 걸어가 듯 편안한 길이다. 호수로 내려 가는 길에 등산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스위스 모녀를 만났다. 그들은 무언가를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무엇이 있냐고 물었더니 손가락을 가리키며 "마못(marmot)"이라고 모녀가 함께 외친다. 그들의 표정을 보니 참 즐거운 모양이다.

바위 색과 똑 같아 금세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바위 옆으로 다람쥐처럼 생긴 것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녀는 전에 한국에 왔었다며 호의를 보인다. 특히 전주 한옥마을이 참 인상적이었다고 귀 뜸을 해준다. 그리고 사진촬영도 기꺼이 응해준다.

마터호른을 등대삼아 오전 내내 걸었다. 나무가 없어 시야도 탁 트이고 마터호른까지 우뚝 서서 산길을 안내해 주니 호수를 찾아 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편안한 소풍길이다. 어느새 목적지 호숫가에 이르렀다. 호수는 푸른빛을 쏟아내고 있다. 큰 나무들도 병풍처럼 서 있다. 게다가 마터호른 봉우리까지 물에 비추고 있으니 비경이 따로 없다. 산중 어느 호수 보다  맑고 시원해 보인다. 호수에 손을 가만히 넣어 보았다. 생각보다 매우 차다. 너무 차가워 오래 담글 수가 없다. 빗물이 아닌 빙하물인 듯싶다.

나무 그늘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마터호른은 여전히 눈앞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제는 흰 구름까지 봉우리에 멋지게 걸쳐 있다. 마터호른은 잠시도 그냥 있지 않고 볼 때 마다 새로운 변신을 꾀 하는 것 같다. 시내에서 사온 빵과 과일로 점심을 먹었다. 산길에서는 무엇을 먹어도 꿀맛이다.

마터호른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마터호른의 모습
▲ 마터호른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마터호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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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홀로 남겨두고 다시 길을 걸었다. 야생화도 길을 따라 쉼 없이 따라온다. 구름은 마테호른을 떠나지 못하고 아직도 붙어 있다. 산길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선남선녀 같다. 산길에 앉아 속삭이는 연인도 아름답고, 산모퉁이를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걸어가는 사람들도 멋있다.

먼 산길을 돌아 수네가에 다시 도착을 했다. 호숫가로 내려가 발을 담그고 마터호른을 쳐다보았다. 하루 종일 햇볕을 받아 많이 그을린 모습이다. 눈이 많이 녹은 걸까? 오늘 같이 청명한 날씨가 계속된다면 마테호른 봉우리에 눈이 남아 있을 것 같지 않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 해가 저물고 있다. 해지는 일몰을 보고 싶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산을 내려가기 전에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다시 둘러본다. 융푸라우요흐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장관이었지만 마터호른을 올려다보며 하루 내내 걷는 산행은 내게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음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다시 찾아와 산길을 오래도록 걷고 싶다. 알프스 대자연이 가져다주는 신비한 매력도 있지만,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언덕 같은 산길은 진정 마음에 아름다운 평화를 가져다주는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체르마트#마터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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