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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비시 중공업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9~11일 자신들이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일본 나고야를 찾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양금덕(86)·김성주(85)·이동연(85) 할머니와 김중곤(92, 피해자 오빠·남편) 할아버지는 10일 오후 나고야 소송지원회의 주최로 루부라오잔 호텔에서 열린 '회합, 원고들에게 미소를'에서 한·일 7개 단체와 함께 공동호소안을 발표했다. 행사에 참석한 하라다 요시오씨는 노란 리본이 달린 기타를 든 채 서툰 한국어로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다.
 미쓰비시 중공업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9~11일 자신들이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일본 나고야를 찾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양금덕(86)·김성주(85)·이동연(85) 할머니와 김중곤(92, 피해자 오빠·남편) 할아버지는 10일 오후 나고야 소송지원회의 주최로 루부라오잔 호텔에서 열린 '회합, 원고들에게 미소를'에서 한·일 7개 단체와 함께 공동호소안을 발표했다. 행사에 참석한 하라다 요시오씨는 노란 리본이 달린 기타를 든 채 서툰 한국어로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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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이길 때까지 싸우겠다."

한국과 일본이 '우리'로 묶였다. 다카하시 마코토 '나고야 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아래 나고야 소송지원회)' 공동대표는 10일 일본 나고야에 모인 양국 국민들 앞에서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를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 한복판에서, 일본인의 입으로, 한국과 힘을 모아 "일본 정부 및 전범기업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다.

이어 하라다 요시오씨는 노란 리본이 달린 기타를 든 채 서툰 한국어로 '아침이슬'을 불렀다.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 제작소에 끌려가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마코토씨가 말한 앞으로의 '싸움'을 응원하기 위한 노래였다.

노래가 끝날 즈음, 요시오씨의 입에서 "서러움 모두 버리고"라는 가사가 나오자 근로정신대 피해자 이동연 할머니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양금덕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일본인들 역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꽉 감싸쥐었고, 다른 누구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참던 탄식을 눈물과 함께 뱉어냈다.

한 데 묶인 한국인과 일본인, 아니 '우리'는 모두 울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일본인이 얼굴을 감싸쥔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일본인이 얼굴을 감싸쥔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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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에 참석한 한 일본인이 울음을 참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일본인이 울음을 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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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중공업, 대법원 상고 철회하라"

미쓰비시 중공업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9~11일 자신들이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일본 나고야를 찾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양금덕(86)·김성주(85)·이동연(85) 할머니와 김중곤(92, 피해자 오빠·남편) 할아버지는 10일 오후 나고야 소송지원회의 주최로 루부라오잔 호텔에서 열린 '회합, 원고들에게 미소를'에서 한·일 7개 단체와 함께 공동호소안을 발표했다.

특히 이들은 "(미쓰비시중공업은) 빨리 법원 판결을 받아들여 소송 연기를 중단하고 배상에 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 법원의 1, 2심 모두 근로정신대 할머니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판결에 불복한 미쓰비시중공업은 대법원에 상고한 상황이다.

1999년 일본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에 패소(2008년)한 뒤, 2012년 한국 법원(광주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한 양금덕·김성주·이동연·박해옥 할머니와 김중곤 할아버지는 2013년 11월 1심에서 이긴 데 이어, 2015년 6월 2심에서도 승소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힘을 얻은 또다른 피해자들도 현재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2014년 2월 양영수·김재림·심선애·오철석, 2015년 5월 이경자·김영옥)이다.

하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앞선 일본 법원에서의 재판 결과 등을 이유로 2심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한국에 할 배상은 끝났고, 한국 법원 판결이 일본 법원의 판결과 모순을 이룬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할머니들과 함께 나고야를 찾은 김정희 변호사(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자문위원)는 "한일청구권협정에는 개인의 청구권 포기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포함됐더라도 국가가 개인의 청구권을 포기할 법률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미쓰비시의 주장을 비판했다. 이어 "비록 선행 일본 재판의 판결이 있지만 이 판결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가 정당하다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3·1운동 정신 및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헌법 하에선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행사에 참석한 양금덕 할머니(맨 왼쪽)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양금덕 할머니(맨 왼쪽)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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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에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비롯해 한일 7개 단체 2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에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비롯해 한일 7개 단체 2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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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 문제 청산해야, 한일 관계 정상화"

올해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겐 많은 일들이 찾아왔다. 2심 승소라는 기쁨이 있었던 반면, 미쓰비시중공업의 후생연금 '199엔(약 1800원) 지급'이란 분노를 일으키는 일도 발생했다.

더해 하시마섬 등 강제징용 현장의 유네스코 등록을 앞두고 미쓰비시머티리얼(옛 미쓰비시 광업)이 미국, 중국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만 사과해 할머니들의 속을 뒤집어놨다. 아베 정부의 안보법안 통과 등 일본의 우경화는 한일 관계에 민감한 할머니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이날 양금덕 할머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울분을 토했다.

"내 마음 속의 눈물과 기쁨과 웃음으로 인사드립니다. 1944년 6월 1일 나고야에 도착해 광복 후 1945년 10월 20일 한국땅에 돌아왔으니 꼬박 70년이 지났습니다. 아시다시피 올해 한국 법원에서 훌륭한 판결을 내려줬습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을 비롯해 나고야의 시민 여러분이 안 계셨다면 우리가 이 자리까지 올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법원에서 재판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 미쓰비시중공업과 아베 총리의 사과를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분과 힘을 합쳐 끝까지 싸우다보면 언젠가 틀림없이 사과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이 오면 다시 나고야에 찾아와 여러분을 뵙고 감사의 말을 올리겠습니다."

높아진 관심 때문인지 이날 행사에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포함해 한일 7개 단체 관계자 200여 명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일본에선 나고야 소송지원회를 비롯해 ▲ 나고야 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변호단(아래 변호단) ▲ 미쓰비시 전 징용공 재외 피폭자 문제 소송단 ▲ 일본제련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제 2차 후지오 강제연행·강제노동 소송을 지원하는 후쿠리쿠 연락회 ▲ 강제노동 피해자 입법을 추구하는 한일공동행동이 행사에 참석했다.

한국에선 시민모임 관계자 및 회원들과 임택·조오섭 광주광역시의원, 우승희 전라남도의원 등이 할머니들과 함께 나고야를 찾았다. 한국 언론 중엔 유일하게 <오마이뉴스>가 동행취재했다.

이날 우치카와 요시카츠 변호단장은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여러 문제와 일본의 우경화 등 비관적인 요소가 많지만, 그럼에도 역사는 반드시 움직인다고 확신한다"며 "한일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선 식민지배 청산 문제가 확실히 해결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환갑 때 처음 이 문제를 알게 돼 이제 77세 할아버지가 됐는데, (이 싸움이) 오래 걸릴 줄은 알았지만 17년 동안 변호단장을 맡고 있을 지 상상도 못했다"면서 "물론 그보다 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은 한국 법원에서 받은 승소 판결"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양금덕·이동연·김성주(오른쪽부터) 할머니가 행사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양금덕·이동연·김성주(오른쪽부터) 할머니가 행사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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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에 참석한 김중곤 할아버지가 단상 위에 올라 발언하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김중곤 할아버지가 단상 위에 올라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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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도 책임 많아"

특히 이날 행사에는 일본 민주당 중의원(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이 참석해 할머니들에게 고개숙였다. "나고야 소송지원회의 회원이기도 하다"고 자신을 소개한 곤도 쇼이치 의원은 "한국 법원에서의 승소에 축하의 마음을 보내면서도 일본 국회의원이자, 일본인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이 전쟁의 기록을 은폐해 그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상황에서, 할머니들은 재판을 통해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기억과 기록을 되새겨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선 한국 정부를 향한 비판도 쏟아졌다. "일본 전역에서 많은 분들이 모여준 것에 매우 감격스럽고 고맙다"고 운을 뗀 이국언 시민모임 상임대표는 "한국 정부의 책임도 고백하려 한다"며 "한국 정부 역시 (일본 법원과 마찬가지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배상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으로 인식하고 싶어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미 (한국) 사법부의 (한일청구권협정이 근로정신대 할머니 배상 문제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 분명한 이상, 한국 정부는 기존 인식을 바꿀 수밖에 업을 것"이라며 "이제 나고야에 더 이상 안 오려고 한다. 서울에서, 광주에서 미쓰비시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의) 화해 조인서에 도장 찍도록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행사가 열리기 전인 10일 오전, 할머니들은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터를 찾아 이곳에 있는 '도난카이 지진 희생자 추모비'에 꽃을 올렸다.

 행사에 참석한 양금덕 할머니가 일본인으로부터 선물받은 15년 전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양금덕 할머니가 일본인으로부터 선물받은 15년 전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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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에 참석한 김성주·이동연·양금덕(오른쪽부터) 할머니가 전부터 안면이 있던 일본인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김성주·이동연·양금덕(오른쪽부터) 할머니가 전부터 안면이 있던 일본인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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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찾은 '70년 전, 눈물의 강제징용 현장' 기사 이어집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 관련기사]
근로정신대 피해자들, 항소심도 승소
"미국 사람만 사람? 속 뒤집어져"
"중국 배우자, 전범기업 제품 안 사"
"미중에만 사과, 한국은 아베와 한편?

○ 편집ㅣ장지혜 기자



#근로정신대#강제징용#나고야#미쓰비시#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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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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