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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안철수 탈당사건'이 던진 충격파가 던진 여진이다. 한쪽에선 위기지만 거대 양당 구조의 타파를 외치며 신당을 추진해왔던 이들에겐 기회다. 안 의원은 탈당 직후 곧바로 신당창당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외견상으로 내년 총선은 최대 1여 4야(정의당 포함)구도가 될 수도 있지만 '눈뜨고 코베일 수 없다'는 야권 후보들과 지지자들의 위기감이 조직 통합이나 연대 혹은 후보 단일화에 어떻게 작용할 지가 가장 큰 변수다. '안 탈당'이 총선 4개월을 앞두고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몰고 올 잠재적 파괴력을 갖고 있는 이유다.

야권 지지자들의 최대 소망은 뭐니 뭐니 해도 내년 총선 승리다. 지난 몇 달간 언론사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후보를 찍겠다는 여론이 과반을 넘어서고 있는 걸 보면 그 열망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현재의 야당에게로 눈을 돌려 보면 그런 소망은 산산조각 난다. 총선 4개월을 앞둔 시점에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핵분열을 눈앞에 두고 있고, 안 의원 탈당 직후 중앙일보가 최근 자체 조사한 여론조사에선, '내일 당장 총선을 치른다면 누굴 찍겠느냐'는 설문에 새누리당이 30% 안팎의 지지만으로 서울과 호남을 제외하고 1위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게 현실화된다면 야당 지지자는 물론 중도 부동층을 아우른 박근혜 정부에 실망한 압도적 다수의 국민들로선 절망, 한탄, 분노를 안으로만 조용히 삭혀야 할 운명이다.

안철수 의원의 멘토로 불려지는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언론 기고문에서 "어차피 내년 총선은 틀렸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제1야당을 일단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년 총선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의 독선과 폭주에 종지부를 찍고자 열망하는 서민 중산층들에겐 참으로 실망스럽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총선이 4개월이나 남았는데 아예 총선포기를 기정사실화 한 것도 문제지만 안 의원의 탈당이 총선 승리는 안중에도 없는 행동이 아니었나 의심케 하기 때문이다. 안 의원이 한 교수의 조언을 듣고 탈당을 한 거라면 안 의원의 정치적 미래는 단연코 없다.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말한 문재인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이기지 못하면 정치생명은 끝난다"고 한 것처럼, 안 의원 역시 내년 총선이 새누리당 압승으로 나타난다면 패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신당창당 절차를 밟고 있는 천정배 의원에게도 마찬가지다. 분열 프레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3분의 1의 지지율로 새누리당에 압승을 헌납한다면 세 사람 모두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

왜 총선승리가 정권교체보다 중요한가

총선에서 패배한 야당이 정권교체를 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지만, 만에 하나 성사된다 해도 의회 다수를 점하지 못한 정권교체는 쉽게 말해 '식물정권'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수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 하나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할 것이며 결국 5년 내내 '아무 일도 못한 정권'으로 기록돼 무능한 정부란 오명을 뒤집어 쓰고 조기 퇴장하고 말 것이 자명하다. 총선 승리는 일찌감치 접고 정권 교체를 부르짖는 자는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에 입맛을 다시는 권력의 기생충에 불과하다. 하여 무릇 정치인은 선거 당일까지 의회 다수당을 향한 총선승리 의지를 불태워야 마땅하다. 한데 벌써부터 패배주의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술판에 앉으면 너도 나도 "찍어주고 싶어도 야당이 저 모양이니..." 탄식과 울분이 넘쳐난다. 정말 총선에서 승리할 길은 없는가?

사태가 이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데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문재인 대표의 책임이 크다. 단순히 '대표는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리더십이 왜 문제인지 짚어보자. 우선, 이유야 어찌됐든 천정배가 나가고 정동영이 나가고, 급기야 안철수가 당을 뛰쳐나간 것만 해도 문재인 리더십은 '추종자들이 따르기 힘든 팔로워십'을 보여줄 수 밖에 없음을 증명했다. 다시 말해 리더십의 바닥을 드러냈다고 하는 표현이 옳다. 뛰쳐나간 세 사람이 강한 개성의 소유자인데다 쉽게 복종시킬 수 없는 '적토마'임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지만, 이들을 끌어 안지 못한 것은 누가 뭐래도 문재인 리더십의 한계임은 부인할 수 없다.

문 대표는 올해 4.29 재보선에서 참패 한 지 한참 후에서야 천정배와 정동영의 탈당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했다지만 이미 실기한 뒤였다. 당시에, 설사 탈당을 했더라도 정 전의원이 출마한 '관악을'과, 천 의원이 출마한 '광주 서구을'에 자당의 후보를 내지 않고 배려함으로써 당선 후 재입당을 추진하는 전략을 택했더라면 선거 참패 책임론에 휘말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중진의 동료정치인을 배려하는 결단이 부족했고 정치적 반대자 혹은 경쟁자를 끌어안는 관용의 리더십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필승전략을 구사할 줄도 몰랐다. 보통사람이라면 갖추기 어려운 자질을 가져야 하는 게 정치인이고 더구나 그는 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가 아닌가. 하지만 문대표의 선택은 당을 배신한 이들을 응징하는 '정면승부'였고 결과는 문대표의 참패였다. 대표 취임 두 달 만에 치른 선거라 불가항력이었다고 할지 모르나 리더로서의 자질을 평가하기에도 충분한 시험대였다.

자신이 대선 주자로 나선 2012년 대선 때부터 2015년 대표로서 치른 두 번의 재보궐 선거까지 지난 3년 동안 선거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는 것은 더욱 치명적인 리더십의 약점이다. 대선후보로 결정된 뒤 의원직 사퇴를 하는 배수진을 치거나,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었지만 문 대표는 이를 일축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것을 문대표 측근들은 '승부수'라거나 '와신상담'이라고 할지 모르나 반대편에서는 '무책임'이라고 불렀다. 이런 균열은 어찌 보면, 그의 리더십에 약간의 흠집을 낼 사안은 될지 모르나 치명적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웠다.

문대표에게 지금 필요한 건 정면돌파 아닌 책임의 리더십

정치인를 향한 책임론이 봇물처럼 쏟아질 때는 한두 가지 사건 때문이 아니다. 쌓이고 쌓여 피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몰렸을 때이고 그 순간, 리더에겐 책임과 결단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 순간에 조차 '혁신경쟁'으로 자신의 옮음을 증명해 보이겠다거나 '정면돌파'를 선택하는 것을 책임과 결단이라고 생각한다면 파국은 불가피하다. 이미 여러 번 써 보았음에도 약발이 듣지 않았던 '낡은 카드'를 들고 "나를 따르라"고 하는 것만큼 무책임하고 초라한 것이 없다. '정면돌파'라는 책략도 그 사람의 '정치적 역량'이 출중해서, 밀고 나가면 장차 모든 이들이 그의 진가를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을 때, 비로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문 대표는 진정 그런 역량이 있다고 스스로 자신하는가? 문 대표는 주변의 열렬 지지자들이 문대표의 인간적 면모나 인격을 흠모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스스로 평가해도 자신이 뚜렷한 정치적 비전과 뛰어난 정치적 표현능력을 갖고 있고, 정치적 경쟁자들을 꺾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정치적 자산을 내장하고 있다고 보는가? 정치가는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런 평가가 문 대표 주변에 인의 장막을 친 측근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에 정치가가 책임지는 방법은 무엇보다 자신이 살기 위한 것으로 비쳐지는 행동을 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정치가에게 '책임의 리더십'이란 자신의 역량 부족을 절절히 깨닫는 것이며, 스스로를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내치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이나 조직을 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안철수 탈당까지 초래한 문 대표가 처해 있는 지금 상황이 바로 그렇다. 살고자 하면 더 비참하게 죽게 되고 죽고자 각오한다면 살 수 있는,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의 각오가 필요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이순신'을 발탁해 배를 넘기는 것이 문 대표에게 남겨진 역사적 책무

여전히 야권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핵심 열쇠는 문 대표가 쥐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남겨진 '12척의 배'는 '이순신'에게 주어야지 '원균'이 맡아서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문 대표에게 따라붙는 '야권 대선주자 1위'는 본인의 정치적 역량의 결과가 아닌 친구 노무현을 통해 얻은 자산임을 '냉정하게' 자각해야 한다. 따라서 문 대표가 정치적 성공을 위해 던져야 할 마지막 승부수는 바로 '이순신'을 찾아서 배를 넘기는 것이다. 관건은 '이순신'을 찾는 '방법'에 있다. 안철수 의원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혁신전당대회'를 열어 내부에서 '이순신'을 발탁하자는 주장을 펴다 거부당하자 탈당하였다. 문 대표는 천정배 의원, 정의당까지 포함하는 '통합전당대회'를 열어 지도부를 선출하는 방법이라면 당대표를 내려놓을 수 있다고 응수하였다. 안 의원이 탈당한 현재, 문 대표는 자신이 제안한 방안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할 필연성이 더욱 커졌다.

따라서 문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해산하고 제3지대에서 새로운 정당을 결성해 통합전당대회를 여는 방향으로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천정배 신당파와 탈당한 안철수 의원, 정동영 전 의원, 김성식 전의원 주변의 수도권 신당추진파는 물론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손학규 전대표도 모셔오고, 가능하다면 정의당까지 아우르는 대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와의 결합이다.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문 대표는 대표직을 포함해 기득권을 내려놓을 용의를 표명하고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이 방안을 추진하도록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총선 승리를 바라는 야권 지지자들의 여망에 부응하는 유일한 길이다. 작은 차이는 공존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공통분모는 크게 보는 대통합을 통해 총선 승리의 비전을 보여주는 길만이 제1야당 문 대표에게 남겨진 마지막 역사적 책무다. 자기 주변의 많은 식솔들의 '정치적 미래'를 생각하기 이전에 총선 승리를 바라고, 박근혜 정부의 독선과 폭주가 내년 4월 총선과 함께 끝나기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가슴 절절히 받들어야 한다.

제3지대에서의 '통합전당대회'를 통한 새로운 정당의 출범이 단지 총선 승리만을 겨낭한 것은 아니다. 8년 전의 노무현 정부를 뛰어 넘어 201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뤄 제3기 민주정부를 여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정치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는 커녕 끊임없이 갈등을 양산하고 증폭시켜 온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는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여는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의 혁신에 안철수의 혁신을 보태고, 그 위에 천정배의 혁신까지 더해져 야권의 대대적 혁신을 위한 발걸음에 주춧돌을 놓는다면 그는 명예롭게 퇴장할 수 있다. 하지만 혁신경쟁이란 이름으로 정면승부를 택한다면 총선참패는 불보듯하고 굴욕적인 퇴장만이 남을 뿐이다. 문 대표가 자기희생의 결단을 통해 절망에 빠진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살려줄 것을 기대한다. 이런 방안이 현실 정체세계의 냉혹한 실상을 모르는 소리라고 폄하할지 모르나 국민의 간절한 바람임을 모르지 않으리라 생각되기에 감히 몇 자 적어 고언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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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 연구로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요신문 기자, 고려대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교수,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갈상돈 박사의 뉴스브리핑'을 담당하기도 했다. 현재 사단법인 지방혁신연구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시사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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